[Review] '나의 사랑 백남준' 아내 구보타 시게코가 들려주는 백남준의 삶과 사랑, 예술

글 입력 2016.09.17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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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 109번째 문화초대
: 도서 ‘나의 사랑 백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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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예술가의 일생에 대하여


기억을 더듬어가며 찾아간 그녀의 기억 도서관에는 ‘백남준’이란 사람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그의 아내, 혹은 아내이기 이전에 한 비디오 아트 예술가로서 삶을 살아온 구보타 시게코는 그렇게 담담하면서도 솔직담백하게 ‘백남준’과 함께했던 시간들을 이야기 한다. ‘나의 사랑 백남준’은 어느 한 예술가의 개인 회고록이 아닌 타인의 시각에서 비춰진 그의 삶이 기록되어 있는 책이다. 반평생을 옆에서 함께한 이가 기록했던 까닭에서 일까, 그간 알려지지 못했던 그의 인생과 예술을 이 책을 통해서 야금야금 맛볼 수 있다.

운명과 인연의 순간을 잘 엮어 나간다면, 그것은 곧 삶이 된다. 구보타 시게코에게 있어서도 운명의 순간과 그 운명이 인연이 되는 순간이 있었다. 1964년의 어느 5월, 그녀는 기사로만 접했던 아티스트 백남준의 공연을 난생 처음으로 보게 된 것이다. 그녀는 책에서 그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늘 그렇듯 클라이맥스는 마지막에 왔다. 그는 자신이 신고 있던 가죽 구두를 벗어 들었다. 그러더니 그 안에 물을 콸콸 따르고는 단숨에 마셔버렸다. 신발의 고린내가 객석까지 날아오는 듯했다. 보기만 해도 참을 수 없는 욕지기가 목구멍을 타고 스멀스멀 치밀어 올라왔다. 빨아먹듯 구정물을 마셔버린 그는 갑자기 무대 뒤로 사라졌다. 십여 분이나 지났을까. 어디선가 적막을 찢는 듯한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공연은 끝났다”고 알리는, 공연장 외부에서 걸려온 느닷없는 전화였다.

1964년 5월 29일, 그날은 내가 기사로만 접했던 남준의 공연을 처음 본 날이었다. 마치 폭풍이 휩쓸고 간 것처럼 파괴적인 공연이었다. 보는 내내 숨이 멎는 것처럼 긴장이 되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한참이 지나도록 광기 어린 몇몇 장면들이 공포영화의 잔상처럼 남아 머릿속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 <나의 예술적 이상향, 반항아 백남준> 중에서



 구보타 시게코에게 있어서 백남준은 예술적 이상향이자 동경의 대상 그 자체로 다가왔다. 그가 그녀에게 미친 예술에 대한 광기는 그녀가 그를 사모하게 되는 계기, 그리고 40여년을 예술적 동반자로 함께 할 수 있으리란 확신을 주는 순간이었다. 이들의 첫 만남은 금방이라도 끊어져 버릴 것 같았지만 ‘예술’이란 키워드 아래서 그들은 일본을 떠나, 미국에서도 인연을 이어나가 서로의 예술 파트너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까. 구보타 시게코는 백남준을 처음 만난 순간에서부터, 그가 생을 맞이하고 나서 그를 기억하기까지의 모든 시간들이 이 책에 담아냈다. 어쩌면 이 책은 그녀가 그에게 전하는 헌정시일지도 모르겠다. 예술가 백남준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백남준의 모습, 또는 연인으로서 백남준의 모습이 가감 없이 드러나 있다. 그런 면에서, ‘나의 사랑’이라는 수식어는 참 많은 것을 의미하고 있는 듯하다. 백남준과 맺은 인연을 통해서 구보타 시게코는 예술가로서 더 큰 발걸음을 걸어나갈 수 있었다. 백남준 또한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예술가가 될 수 있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걸어 나간 이들의 삶은, 현대미술의 발전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미술사의 산증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단순히 젊은 예술가의 사랑이야기 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예술 풍조라던가 예술가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뉴욕, 독일, 일본 장소를 불문하고 예술에 대한 열정을 마음껏 피워 나갔던 이들의 시간은 이미 흘러 없어졌지만 예술혼만은 아직도 불타오르는 듯한 느낌을 가져다주곤 한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아티스트 백남준’이라는 타이틀만 알고 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한 번 접해보길 바란다. 그와 그녀가 살아온 삶을 모두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빛나던 순간들은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적인 것을 사랑하고 추구했던 예술가 백남준의 치열했던 예술의 순간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했던 백남준. ‘나의 사랑 백남준’이라는 그의 아내의 회고를 통해서 1 더하기 1은 2가 아닌 ∞(무한대)임을 가능케 했던 예술가 백남준의 삶의 세계로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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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백남준>


구보타 시게코 ․ 남정호 지음
· 분량: 384쪽 · 사양: 135*190/무선 · 가격: 18,000원 · 분야: 예술>에세이
· 발행일: 2016년 8월 1일 · 아르테 펴냄 · ISBN 978-89-509-6607-2 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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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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