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평생의 동반자가 들려주는 백남준의 삶, 도서 < 나의 사랑 백남준 >

글 입력 2016.09.09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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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www.artinsight.co.kr)를 통해 도서 <나의 사랑 백남준>을 읽었다. 시종일관 반란자의 삶을 살았던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되는 올해를 기념하여, 이제는 백남준의 곁으로 떠나버린 아내 구보타 시게코가 남긴 글이다. 백남준 그리고 그를 열렬히 사랑했던 동료, 스승이자 아내였던 구보타 시게코의 삶이 생생하게 담겨있는 책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삶이자 사랑이자 뮤즈였던
예술가 커플의 치열한 삶과 사랑, 예술

같은 분야의 예술을 함께하는 예술가 커플이 말년까지 함께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미술사의 많은 사례들을 통해 충분히 알고 있다. 백남준은 놀라운 창의력과 실행력으로 비디오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조했고 그 이후로도 끊임없이 예술의 지평을 넓혀갔다. 구보타 시게코 또한 백남준처럼 비디오조각을 선보이며 나름의 예술세계를 구축했고, 때로 백남준의 질투를 받을 만큼 뛰어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삶과 사랑, 예술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동반자를 만난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큰 축복일 것이다. 시게코가 곁에 있었기에 백남준은 전 세계를 유랑하며 자신의 예술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고, 동시에 든든한 피난처에서 지친 마음을 달래고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자신에 대해 미처 기록하지 못하고 떠난 백남준의 생각과 말들을 그를 가장 사랑스럽게 지켜보며 평생을 함께했던 아내 구보타 시게코의 생생한 증언이다. ‘추상’으로 머물던 백남준의 작품세계에 살을 붙이고 온기를 불어넣는, 사랑이 담긴 회고담이다. “남준과 함께 사는 것 자체가 내게는 ‘아트’였다”는 고백처럼, 이 책은 백남준과 시게코의 삺의 이야기 자체로 하나의 아트가 되는 기록이다. 더욱이 구보타 시게코 여사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백남준과 재회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난 지금, 이보다 솔직담백하고 은밀한 이야기는 앞으로도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나의 사랑 백남준>은 예술가 백남준과 조우하는 젊은 플럭서스 예술가 구보타 시게코의 시각에서부터 시작한다. 조용하고 순한, 보편적인 일본 여성의 특징들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던 구보타 시게코. 자유롭고 반항적인 그녀의​ 성격은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에 투영되었고, 그렇게 반항적이고 자유분방한 그녀에게 백남준은 예술적 이상향 그 자체였다. 희대의 문화테러리스트였던 그를 비중있게 다룬 신문기사를 보고 그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그녀는 실제로 1964년 5월 29일 백남준의 공연을 보면서, 그 광기와 도발적인 에너지에 압도당했다. 완전히 그에게 빠져버린 것이다.


구보타 시게코는 자신의 전시 <연애편지Make a Floor of Love Letters>를 본 후 창의적이고 독특해서 좋았다는 백남준의 칭찬으로 세상이 뒤흔들리는 기분을 느낀다. 보수적인 일본 미술계에서는 그녀의 예술을 알아보고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백남준의 인정으로부터 그 답답하고 옥죄는 기분을 역설적으로 생생히 느낀 그녀는 뉴욕에서 날아온 친구 조지 마키우나스의 초대장으로 인해 도미를 결심했다. 뉴욕에 있는 플럭서스 본부로 날아간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곳에서 백남준과 다시금 만난다. 이미 독일과 일본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예술계의 이단아에게도, 당시 현대미술의 메카로 성장하고 있던 뉴욕이 매력적인 땅이었던 것이다.


엉뚱하고 기발하면서 재치 넘치는 플럭서스 패거리로 함께 활동했던 백남준과 구보타 시게코. 그들은 같은 집단활동을 하며 싹튼 애정으로 연인이 된 것은 아니었다. 마치 예측할 수 없는 바람의 향방처럼, <오리기날레> 공연이 끝나고 귀가하는 그 늦여름 밤에 그들은 불같은 사랑에 휩싸였다. 구보타 시게코의 오랜 짝사랑이 결실을 맺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백남준은 너무도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그는 정말 천재적이었다. 사실상 그가 예술을 시작한 지점은 음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전적인 음악에 그친 것이 아니라 쇤베르그의 영향을 받아 전위예술 쪽으로 자신의 영역을 발전시켰고 이는 음악에 기반한 퍼포먼스 뿐만이 아니라 비디오아트, 종래에는 레이저아트에까지 확장되어 갔기 때문이다. 그만큼 열정적으로 예술활동을 했던 백남준이, 과연 사랑과 안정에 얽매이는 사람이었을까. 그렇지 않았다는 게 구보타 시게코의 시각에서 아주 명확해보인다. 그는 구보타 시게코를 사랑했지만 결혼하자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다. 구보타 시게코가 자신의 친구에게서 청혼을 받았을 때에도, 그와 결혼하는 것이 좋겠다며 그녀를 떠나보낼 뿐이었다. 물론 그 결혼생활이 3년 만에 파국을 맞아 시게코가 다시금 백남준의 곁으로 돌아오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 두 사람이, 결혼으로 묶이게 되는 것은 사실 정말 비극적인 순간이었다. 백남준이 구보타 시게코에게 청혼한 그 순간을 회고하면서, 시게코는 '슬픈 결혼식'이라고 표현했다.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그녀의 마음이 절절하게 와닿았다. 과연 이 결혼이 사랑에 기반한 것이 정말 맞을까, 단순한 연민은 아닐까 생각으로 머리가 터져나갈 것만 같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결혼은 결국 백남준이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구보타 시게코가 그와 함께 삶을 살게 되는 연결고리가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 부분에 있어, 구보타 시게코가 자신의 삶이 백남준과 함께 했기에 그 자체로 아트였다고 표현하기도 했으니 결국 청혼받은 그 순간이 어떠했더라도 그녀는 이 결혼생활로 행복했을 것이다.


그렇게 부부가 된 두 사람은, 둘 모두가 비디오 아트를 하는, 동료이자 경쟁자였다. 사실상 구보타 시게코보다 백남준이 세계적으로 더 유명한 듯해보였고, 한국인들에게는 더군다나 시게코가 '백남준의 아내'로밖에 비추어지지 않지만 백남준이 성장하는 데 그 누구보다도 영향을 미친 것이 그녀였고, 또 그런 백남준을 보며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나간 것이 그녀였다. 같은 분야의 예술가들이 부부 혹은 연인이 되어 오랫동안 행복하게 지내는 경우가 정말 드문데, 이 커플은 정말로 대단했다. 솔직히 말하면 백남준의 영향보다는 구보타 시게코의 사랑과 헌신이 정말 컸다고 생각한다. 먼저 사랑하는 사람이 진다는 말처럼, 구보타 시게코는 백남준을 먼저 사랑했기에 그를 이해하고 그를 도왔으며 그가 성장하는 데 누구보다도 발 벗고 나섰다.


백남준이 뇌졸중으로 인해 몸에 마비가 온 그 순간부터 사실상 시게코 자신의 예술을 할 시간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와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백남준이 직접 준비한 마지막 전시였던 구겐하임 전시에서, 그녀는 레이저아트로 세상을 다시금 놀라게 한 자신의 남편에게 전율을 느낀다. 특히 <야곱의 사다리Jacob's Ladder>에서 그가 자신을 두고 어디론가 더 높은, 더 먼 곳으로 떠나버릴 것이라는 예감을 느낀다. 그렇게 전율적인 구겐하임 전시를 끝내고, 백남준은 자신의 74번째 생일을 얼마 남기지 않고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버렸다. 아내 구보타 시게코가 해 준 밥을 맛있게 먹은 채, 마지막 말 한 마디 남기지 못하고.




백남준의 여러 명작들이 탄생하게 된 계기, 세간에 알려졌던 백남준의 기행들에 대한 비화. 그 모든 것들이 담겨있는 <나의 사랑 백남준>에서 일관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평생의 동반자로서 그를 지켜보았던 구보타 시게코의 사랑이었다. 그 누구보다 백남준을 열렬히 사랑하고, 그를 존경했으며 그와 같은 길을 걷기 위해 분투했던 그녀가 그린 백남준과 그녀의 삶. 급작스럽게 떠나느라 마지막 말 한 마디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해 글로 풀어서 남기지 못했던 백남준의 삶을 이렇게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는 책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작년, 2015년에 구보타 시게코도 백남준을 만나러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세계인으로 살았지만, 그 누구보다도 한국적인 것을 추구했던 예술가. 불같은 사랑을 하며 인생을 살았던 바람같은 남자. 그리고 언어, 음악과 미술을 넘어 테크놀로지까지 섭렵했던 천재적인 재능의 소유자. 그런 다양한 모습으로 인생을 꽃피웠던 백남준이, <나의 사랑 백남준> 속에 담겨 있었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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