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들리는가, 들린다면 응답하라." [문화전반]

그립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
글 입력 2016.08.22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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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은 항상 엄마의 물뿌리개로 시작한다. 원체 아침잠이 많은(게으른) 나는 누군가가 꼭 깨워줘야 일어나곤 했다. 일어난 뒤 대충 머리를 감고 샤워도 한다. 그 다음에는 머리를 말리며 밥을 먹다가 엄마에게 잔소리를 한바가지 듣고나서야 대문을 나설 수 있게 된다. 학교로 향하는 버스정류장에는 매일 보는 아이들 얼굴이 늘어서있다. 매일 보는 아이들이지만 마냥 반갑게 인사한 뒤에 버스에 오른다. 버스에 타자마자 1000원을 내면 동전들이 촤르륵 소리를 내며 나온다. 등굣길 버스는 언제나 만원이었다. 만원버스에서 내린 뒤에는 곧장 학교 앞 문구점으로 향한다. 문구점에서는 온갖 100원짜리 먹거리들이 즐비해있다. 한참 고민 후, 먹거리 쇼핑을 마친 뒤에야 신발가방을 흔들며 학교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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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실에 들어서면 구석구석 모여 어김없이 공기놀이를 하고 있다. 딱지, 학종이, 카드 등 수 많은 놀이들이 유행을 휩쓸었지만 공기놀이는 꾸준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공기놀이를 하다 보면 수업 종이 치고 선생님께서 들어오신다. 아침조회시간과 수업시간은 언제나 졸린 시간이었다. 수업도 듣고, 우유에 제티도 타먹고, 쉬는시간 틈틈히 공기놀이도 하다보면 어느새 집에 갈 시간이 된다.

기쁜 마음으로 학교를 나선 나는 곧장 만화방으로 향했다. 동네 곳곳에 생기기 시작한 만화방. 그 곳엔 온갖 종류의 만화책이 줄비해있었으며 인기가 많은 만화책의 신간은 2~3권씩 비치되어 있었고, 연체료는 하루 당 100원. 이 매력넘치는 장소는 하교하는 학생들의 발길을 끌어당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주말에는 3000원을 들고가 10권을 한꺼번에 빌려와 밤을 꼴딱 새워가며 읽었던 때도 있었다. 가장 인기가 많았던 만화책은 당연히 원피스, 나투토, 블리치(이하 원나블) 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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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책이 두세권 담긴 비닐봉지를 휘두르며 향할 곳은 분식집이다. 용돈이 부족한 날이면 바로 집으로 향하지만 오늘은 지갑이 좀 넉넉한가보다. 컵떡볶이, 떡꼬치, 피카츄, 순대꼬치 등 많은 분식들 속에서 내가 항상 고르는 것은 튀김 가루 얹은 컵떡볶이다. 가장 맛있기 때문이다.(요즘 먹는 컵떡볶이들에서는 당시 느꼈던 맛이 안나는 듯 하다.) 컵떡볶이까지 사들고나서야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을 수 있게 된다. 

 버스에서 내려 집에 들어가기도 전에 동네 마당에는 아침에 만났던 친구들이 모여 히히덕거리고 있다. 나는 곧장 마당으로 향해 땅바닥에 가방과 만화책 봉다리를 던져놓고 아이들과 같이 놀 준비를 한다. 친구들과는 땅따먹기도 하고 나이먹기도 하고 와리가리도 하다가 가끔은 축구를 하기도 한다.(누군가 주인모를 공을 가져오는 날이다.) 이렇게 놀다보면 어느새 해가 진다. 해가 지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각자의 부모님이 저녁상을 차리고 있는 연립주택의 문 안으로 쏜살같이 들어간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만화책을 보다가 매일의 숙제인 일기를 작성하고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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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늦게 응답하라 시리즈에 빠져버린, 지나가버린 나의 어린시절을 그리워하는, 누군가에게 이 글이 시간여행의 도화선이 되기를 바라며, "들리는가, 들린다면 응답하라."


[최태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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