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왕과 나 리뷰 - 뚜렷한 색깔을 가진 연극

글 입력 2016.08.15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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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나122.JPG

 
연극 <왕과 나>를 보기 위해 대학로로 향했다. 길어진 낮 덕분에 7시가 훌쩍 넘어간 시간임에도 그리 어둡지 않았다. 도착한 극장에는 이미 앉아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고 나도 그들과 함께 공연장에 들어갈 시간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극장 안으로 들어갔고,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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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릴 동안 무대를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무대 소품들은 단출 했다. 가운데 커다란 쇼파와 주변에 있던 의자들과 의자 아래에 있던 부채들. 왼쪽 끝에는 사물놀이를 할 때 쓰이는 북과 기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소품들을 보니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펼쳐 나갈지 기대되었다. 잠시 후 불이 꺼지고 알 수 없는 외국 음악과 함께 다시 불이 켜지며 두 줄로 선 배우들이 천천히 무대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앞 줄은 한복을 입은 여자 배우들이었고, 뒤 쪽은 정장을 입고 허리엔 각대(허리띠)를 두른 남자 배우들이었다. 복장에서부터 퓨전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극은 어린 18살의 장옥정이 숙종의 대왕대비 조씨에게 인사를 올리는 장면부터 시작하였다. 그전에, 맨 처음 판소리의 도창처럼 이 이야기는 모두 사실을 바탕으로 하며 대부분이 거짓이라는 재밌는 말을 시작으로 극이 진행되었다. 그 후의 이야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숙종과 장옥정의 이야기였다. 서인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옥정을 이용하여 숙종의 마음을 차지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나이를 먹은 옥정의 역할이 다른 배우에게로 넘어가며 극의 재미를 더해준다. 숙종을 제외한 모든 배우들은 공연 내내 서로의 역할을 계속 바꿔가며 연기함으로서 보는 이들에게 새롭고 신선한 느낌이 들도록 해주었다. 심지어 배우들은 연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무대 위에 준비된 의자에 앉아 다른 배우가 앞에 나와 연기할 때에 중간 중간 판소리의 추임새처럼 대사를 받아치고, 끼어들거나, 직접 노래를 부르고 하모니카, 멜로디언 같은 악기를 연주하면서 배경 음악의 역할까지 하는 멀티 플레이를 선보이며 지루할 틈이 없이 촘촘하게 극을 이끌어 나간다. 음란 치정 가무극이라는 설명답게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묘사하는 노골적인 대사 또한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 어떤 대사들은 극에 몰입하려는 감정에 찬 물을 붓는 것 마냥 과하고 노골적인 대사들이 몇 부분 있었다. 

연극 <왕과 나>는 독특한 색깔과 매력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장점과 단점이 뚜렷하게 느껴지는 공연이기도 했다. 먼저 연출 면에서는 굉장히 새롭고 독특했다. 배우들이 쉬지 않고 역할을 바꿔가며 연기하며 악기를 사용하고 노래한 것과 옛날 대중가요의 느낌이나 트로트풍의 가요, 외국 노래, 권력을 잃어버린 서인이 다시 등장할 때는 호루라기와 사이렌 소리를 사용해 긴박함을 더한 것, 사극이라는 색깔을 잃지 않기 위해 한국무용과 북, 부채 등을 이용한 것까지. 전통 사극 이야기 속에 현대적 감성과 느낌을 절묘하게 섞어 보는 내내 재미를 더해주었다. 거기에 더해 우리가 평소 쓰는 말투와 사극의 말투를 가벼운 분위기나 진지하고 긴박한 분위기에 따라 자유자재로 연출해 조화를 이루던 모습 또한 퓨전의 장점을 확실하게 보여준 연출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 한 가지는 한 번에 많은 것을 보여주다 보니 어느 부분에 집중하고 몰입해야 하는지 보는 사람의 입장으로서 알 수 없었던 점이다. 이런 장면이 몇 부분 있었는데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짧은 시간 안에 숙종과 옥정이의 스토리를 이어나가야 했기 때문인지 배우가 해설자의 역할을 하며 스토리를 빠르게 축약하고 설명하는 부분이 있었다. 해설과 동시에 다른 배우들은 노래를 하고 연기를 하며 춤을 추고 한 쪽에선 북까지 둥둥거려 사운드가 몰리니 조금 산만한 느낌이 들었다.

스토리 부분에서도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느껴졌다. 숙종과 장옥정의 이야기를 흔치 않은 연출과 함께 가벼우면서도 가볍지 않은 사랑과 권력에 관한 이야기로 그려낸 것은 좋았지만 나의 개인적인 입장에선 과한 사랑 표현과 여성만을 성적대상화한 부분이 아쉬움으로 느껴졌다. 덧붙여 동성끼리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표현한 행위도 있었는데 조금 뜬금없는 부분이었고 동성애를 단순히 재미와 신선한 충격만을 위해서 도구로 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옥정이의 감정선 또한 조금 아쉬웠다. 표독스러운 장희빈이나 요부처럼 해석하지 않은 것은 진부하지 않고 좋았지만 이상하게도 주인공이라기보다 주변 인물 또는 제3자의 시선으로 옥정이의 캐릭터를 쓴 것처럼 느껴져 옥정이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며, 정말 숙종을 사랑하는지 아닌지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숙종은 1인칭 주인공의 시점으로 숙종만의 감정을 가지고 연극 내내 행동하지만 옥정은 연극이 끝나갈 무렵 행해지는 그녀의 마지막 독무와 해설자가 실제 장옥정이 남긴 연서를 읽어주는 장면 속에만 그녀의 시점으로 느낀, 숙종을 향한 사랑, 원망, 미움의 감정을 모두 집어넣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그녀와 함께 숙종을 향한 애증과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그 감정으로 가는 과정이 조금 생략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오히려 대왕대비 조씨나 숙빈 최씨의 캐릭터들이 매력적이었고 더 쉽게 몰입이 가능했다. 

조금 아쉬운 부분들이 있긴 했지만 바뀌는 역할마다 순식간에 몰입하여 울고 웃으며 멀티 플레이를 보여준 배우들의 연기와 과거의 사건, 인물들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세련되게 풀어낸 시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런 식으로도 어울리는구나‘ 라고 생각할 만큼 다른 장르끼리의 조합이 굉장히 신선해서 나에게 퓨전이란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였고 가만히 앉아서 보기만 한 나에게도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힐 만큼 열기 가득한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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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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