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중경삼림', 당연한 이별 후의 모습들 [시각예술]

글 입력 2016.07.15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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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경삼림. 당연한 이별 후의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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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영화의 백미이자 필수적인 지침서가 되어버린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 그의 작품 중 최고의 영화 세 편을 꼽아보라고 말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화양연화>, <해피투게더> 그리고 <중경삼림>을 고를 것이다. 특히 필자의 밤잠을 설치게 만든 영화는 매혹적인 담배 연기가 떠오르는 화양연화도 아니고, 헤어질 듯 헤어지지 못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속 보영과 아휘도 아니었다. 새벽 해가 넘실거리며 만개하기 전까지 만 년의 유통기한이라는 가진 사랑을 원하는 남자와 방의 흔적들과 대화하는 남자, 두 명의 사내들이 길고 길었던 밤의 꼬리를 붙잡았다. 더불어 California dreamin'이 아직도 홍콩의 한 테이크 아웃 가게에서 울려퍼지고 있을까하는 같잖은 기대심은 감히 필자의 기억 속 중경삼림을 왕가위의 수작 중 수작으로 판단하게끔 만들곤 했다.

 이 영화는 영화 속 아미가 일하는 포장 음식점이 주인공들의 주요 배경이 된다는 점 이외엔 전혀 관계가 없을 법한 두 남자, 금성무와 양조위의 이야기를 다룬다. 둘은 모두 실연을 겪은 남자들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들의 이별 후의 모습들에 대해 다룬다. 이번 글은 첫 번째 금성무가 연기한 경찰 223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경찰 223(금성무)는 매일 Chungking Express에서 헤어진 옛 애인 메이에게 전화를 건다. 그녀가 좋아했던 파인애플 통조림을 하나씩 사며 자신의 생일이자 이별한지 한 달째 날인 1994년 5월 1일까지 그녀에게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으면 그녀를 잊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4월 30일이 되는 날까지 그녀에겐 연락이 없었고, 편의점엔 더 이상 5월 1일자 유통기한이 찍힌 통조림이 진열되지 않는다. 그는 신선한 제품만을 진열해놓는다는 편의점 직원의 말에 발끈한다. 통조림 한 캔에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지는 아느냐부터 기르고 수확하고 썰기까지의 노력에 대해 열변을 토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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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인애플 통조림 같은 사랑. 기르기부터 판매대에 진열되기까지 겪어왔던 지난 시간 동안의 메이와의 연애는 끝이 났으며 당장 내일이면 신선함과는 거리가 멀다고 판단되어 폐기 처분되어 5월 1일자의 마침표를 찍는, 그런 사랑. 223에게 사랑은 무수한 노력의 산물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쏟아왔던 사랑과 노력이 메이의 간접적인 이별 통보에 끝나지 않길 바란다. 하지만 폐기가 되어버린 통조림처럼 그의 사랑은 편의점 직원의 말처럼 기한이 끝났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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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더 자세히 덧붙이자면 경찰 223의 이야기는 시간에 대해 다룬 이야기다. 그녀와 자신이 함께한 시간을 빌미로 메이가 말 대신 행동으로 내뱉었던 잔인한 이별에 대해 그는 부정의 태도로 일관한다. ‘단순히 그너는 화가 난 것이다. 이전에도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이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녀와 연애해왔던 시간들에서 알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점점 그는 웃어넘길법한 부정에서 믿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바꾼다. 아니야 그녀가 이별을 내게 말했을리 없어. 기다리면 올거야. 그러니까 그때까지 메이가 좋아하는 파인애플 통조림을 먹으면서 그녀를 기다려야지. 하지만 223은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이렇게 연락이 없다는 것은 정말로 이별을 말하는 것임을 말이다. 그렇기에 그는 믿음에 기한을 둔다. 5월 1일. 자신의 생일이자 메이가 떠나고 난 이후의 1달. 자신에게 이별을 부정할 수 있는 한 달이라는 시간을 준다. 그리고 4월 30일. 연락 없는 그녀를 받아들이면서 그는 의심한다. 과연 사랑을 함에 있어 유통기한이 있는 것일까? 라고 말이다.

 부정-믿음-의심을 거친 223의 사고는 그로 하여금 새로운 여자를 찾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흘러간다. 5월 1일자 유통기한인 통조림 수십 개를 모조리 먹어치우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초등학교 4학년 짝꿍 여자아이에게 전화를 해보기도 하면서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무모하고 무식하게 새로운 인연을 찾으려 한다. 그러다 그가 우연히 들어간 바에서 사연 있어 보이는 금발의 여인(임청하)를 만나게 된다. 이 바에서 처음 들어온 여자와 사랑에 빠질 것이라고 다짐한 223은 첫 번째로 들어온 금발의 여인과 사랑할 것이라 다짐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가가 묻는다. 혹시 파인애플 좋아하세요?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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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인은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밤 늦게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모습을 보며 223은 여인에게 쓸쓸해 보인다며 당신도 나처럼 이별을 겪었냐며 말을 건다. 그 말을 무시한 여인의 생각은 보이스 오버 나레이션으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사람을 이해한다해도 그게 다는 아니다. 사람은 변하므로, 오늘은 파인애플을 좋아하는 사람이 내일은 다른 것을 좋아하게 될 수도 있다.’ 이 내레이션은 결국 이 에피소드의 전체 주제를 관통한다. 만취한 여인과 223은 한 호텔 방에 들어가게 된다. 그 곳에서 여인과 223은 단 한 마디도 주고 받지 않는다. 단지 바에서 잠깐 여인이 내뱉은 이야기들이 어떠한 의미인지 잠든 그녀를 보면서 하나 둘 씩 이해해가는 223의 모습만 보여질 뿐이다.

 나눈 대화라고는 바에서 나눈 찰나의 시간뿐. 그렇지만 그 시간 속에서 휴식이 필요하다던 그녀의 말을 기억하고 그는 여인의 더러워진 구두를 발견하곤 조심스레 벗겨 구두를 넥타이로 닦아준다. 이 여인이 어떤 일을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진 못한다. 다만 그가 했던 구두를 닦는 행위가 그녀를 이해할 수 있는 전부의 행위일 따름이다. 그리고 동이 트자 방을 조심스레 나가는 223의 모습을 잠든 척 보던 여인은 그가 떠나는 모습을 창을 통해 바라본다. 그리고 5월 1일의 새벽녘, 그녀는 223에게 생일을 축하한다고 메시지를 남긴다. 그리고 223은 말한다. 단순히 이 한 마디에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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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이별을 함에 있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확인하고 상대방과 그 감정을 교류하는 데 있어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는 것이고 그런 상대와 헤어진다는 것은 많은 후유증의 시간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간에 얽매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223처럼 연애를 하면서 쏟아왔던 노력과 사랑을 나누는 시간들, 그 속에서 봐왔던 상대의 모습들을 줄곧 생각하면서 정작 받아들여야할 관계의 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관계의 끝을 받아들이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단지 이별이 힘든 것과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추억을 추억으로 남기는 것과 추억이라는 과거를 현재라고 믿고 있는 것이 다르듯 말이다. 그렇기에 223의 말처럼 사랑의 기억이 통조림에 들었다면 영영 기한이 지나지 않길 바라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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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사랑의 기억은 영원하도록 바라되, 사랑의 관계의 영원성을 바라진 않아야 한다. 상호 간의 감정을 면밀히 그리고 진득히 볼 수 있는 연인의 관계, 그러나 이 진득함은 어느 한 쪽이 닫아버리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끝나고 마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이기적이며 잔인한 것이다. 상대를 알아왔던 시간의 길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여인을 보며 긴 말하지 않아도 그녀에게 사랑을 했다고 확신할 수 있던 마지막 223의 모습처럼 말이다. 찰나의 시간에도 상대를 알아가며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상대와 함께 했던 시간에 얽매이며 이별을 부정하고 지나간 상대에 대해 추억하고 그 흘러가는 추억의 발목을 잡지 말자. 당신이 했던 모든 사랑의 기한은 영원하다. 지나간 사랑의 기억도 영원하며 새로이 찾아온 인연도 당신에겐 영원한 사랑의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니 만약 당신이 이별을 겪는다면 떠나간 사랑과 찰나에 찾아올 사랑에 대한 정리의 자세가 필요하다. 4월 30일자 통조림의 마지막을 해치우고야 마는 223의 모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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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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