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트인사이트(www.artinsight.co.kr)의 초대로 <앤서니 브라운> 전을 다녀왔다. 6월 25일부터 시작한, 아주 따끈따끈한 전시인 데다가 그림체를 보고 정말 기대가 컸는데, 실제로 보니 앤서니 브라운이 말하고자 하는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름대로 오전에 일찍 갔는데도, 아무래도 동화책 작가의 전시여서 그런지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단위의 관람객들이 많았다. 특히 이 전시는 플래시를 켜지 않으면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전시이기 때문에 더더욱 관람객들이 좋아할 만한 전시인 것 같다.

전시 초반에 보면 앤서니 브라운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는지에 대해 간략하게 안내가 되어 있다. 어렸을 때부터 한 살 위의 형과 셰이프 게임을 하면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법과 그림을 그리는 법을 동시에 단련해왔던 그는 의학용 그림을 그리는 일을 거치고, 인사카드 삽화를 그리는 일을 하면서 아주 자세하고 세밀하게 그리는 훈련을 지속했다. 그 모든 경험을 바탕으로 앤서니 브라운은 동화책 작가로 발돋움하기 시작한다.
전시 초반에 앤서니 브라운이 자신의 아들, 딸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사진이 있었다. 사진만으로도 그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아주 가정적이고 다정한 모습이었다.

전시의 시작을 알리는 그림은 윌리였다. 파란 색감이 아주 산뜻한 책상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윌리의 모습. 책상에 그려진 색색깔의 세모 문양, 윌리의 조끼에 그려진 알록달록한 무늬가 아주 앙증맞았고 색 조합까지 따뜻하고 귀여웠다.
아마도 앤서니 브라운 자신이 작업하는 모습 역시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자신을 투영한 윌리. 화폭 속의 모습이 앤서니 브라운 본인인 것을 보면서 윌리라는 작은 고릴라 캐릭터에 앤서니 브라운 자신을 투영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윌리라는 캐릭터가 거의 항상 싱긋이 웃고 있기 때문에 어느 작품에서 보아도 귀여웠지만 개인적으로는 유독 전시 초반에 있었던 이 작품, 자화상을 그리는 윌리의 모습에서 보이는 미소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밀로의 비너스 상을 모방하여 윌리상을 만든 윌리. 그리고 윌리상과 윌리의 뒷편으로 여러 그림들이 보이는 이 작품은, 전시 측에서 실제로 윌리상을 바로 이 작품 앞에 두어서 관람객들이 실제 윌리가 된 것처럼 붓과 물감을 들고 포즈를 취해볼 수 있는 포토존이었다. 그림 속의 사진보다 실제로 놓여 있는 윌리상의 두상이 굉장히 동글동글해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몽글몽글해지는 듯했다.

앤서니 브라운은 자신이 존경하는 선배 화가들의 작품을 패러디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깊게 와닿았던 것은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을 모티브로 한 윌리의 자화상이었다.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을 실제로 봤을 때는 굉장히 마음이 무거웠다. 그 그림 속에서 보이는 프리다 칼로의 모습은 정말, 행복해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에고 리베라 때문에 마음 고생이 많았던 그녀가, 그렇게 힘들면서도 그를 놓지 못했던 그 복잡한 심경이 얼굴 표정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었다.
그에 반해, 처음에 프리다 칼로를 본뜬 윌리의 모습은 조금 생소했다. 윌리라는 캐릭터 자체가 너무 사랑스러워서인지 모르겠는데, 자꾸만 윌리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마치 이전의 작품들에서 계속 미소짓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 작품은 그렇게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이 아닌데...
그러나 윌리의 자화상을 확대한 버전이 바로 옆에 있었다. 그것을 보니, 윌리가 마냥 즐거운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게 새삼 보였다. 처연한 느낌이 그제서야 와닿았다. 오히려 담담하게 미소지으려 애쓰는 듯한 모습인 것을 몰라보아서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학교에서, 집에서 할 일이 많아 걱정인 윌리. 쌓여있는 바나나가 마치 윌리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감당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설령 그게 내가 좋아하는 어떤 것(이 작품의 경우 윌리가 좋아하는 바나나)일지라도 그게 엄청나게 쌓여있다면 그 무게감은 우리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윌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일상 속에서 직장, 학교, 가정 등 곳곳에서 이런 상황에 직면한다.
앤서니 브라운은 이런 와중에도, 우리가 행복을 찾아가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만의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이야기 하는 가운데 항상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일상 속에서 발휘하는 작은 상상력(그가 말하는 셰이프 게임)처럼 그 사소한 작은 것에서 발상의 전환을 함으로써 우리가 새로운 행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행복이 굳이 거창한 무언가일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축구공을 걷어찼더니 그 공이 알이 되고, 또 알이 깨어져 새가 되어 날아가는 이 작품은 나에게 데미안을 상기시켰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사실 완전히 데미안의 구절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앤서니 브라운이 담아낸 것은 새 스스로가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분투했던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소년의 발차기를 통해 하나의 세계가 파괴되고,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알 속에서 새가 나오고, 그가 비상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한 작품 속에 시퀀스를 담아내어 이야기를 전달하는 앤서니 브라운의 방식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마지막에 위치했던 마술 연필을 가진 작은 곰의 모습. 작은 곰이 길을 떠나면서 여러 동물들을 마주할 때마다 자신이 가진 연필로 동물들에게 여러가지를 그려주는데, 고릴라에게는 곰돌이 인형을 그려주고 악어에게는 트럼펫을 선물했으며 사자에게는 왕관을 그려주었던 귀여운 아기곰이 전시회의 대미를 장식하며 손을 뻗어 인사하듯 서있는 이 작품이 참 따뜻하게 와닿았다. 유일하게 작은 곰의 정면 모습이 그려진 작품이기도 했는데, 뒤편의 담벼락이 따뜻한 색감인 것과 아기곰의 미소가 어우러져서 전시회를 나오는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이 따뜻하게 충전되는 기분이었다.
이번 <앤서니 브라운>전을 보면 앤서니 브라운이 얼마나 사물을 유의 깊게 관찰하는지, 그가 말하는 셰이프 게임을 통해 작품 곳곳에 어떤 유머러스한 코드들을 숨겨두었는지, 또 어린이와 어른들에게 세상을 보는 눈에 대해 얼마나 따뜻하게 전달하고 있는지를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전시회 내부에 마음껏 앤서니 브라운의 동화책들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또 정해진 시간마다 전시관 내부에서 노래 공연과 함께 체험 교실이 운영되고 있어서 조금 번잡하기는 하지만, <앤서니 브라운>전은 '행복한 미술관'이라는 부제처럼 우리에게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의 요소들을 초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한 방식으로 소개하고 있기에 정말 포근한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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