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발칙한 상상력전 애니메이션 특집 [시각예술]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2016, KOFA 상영회에 대하여
글 입력 2016.05.16 06:04
-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2016, 발칙한 상상력전 애니메이션 특집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같은 영상이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이해도가 천차만별이다. 어떤 영화들은 너무 어렵고 깊어서 이해력이 높은 사람만 즐길 수 있다. 반면에 어떤 영화들은 너무 단순해서 은유적인 의미들을 이해해나가는 것을 즐기는 이들에게 외면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각각의 영화들은 특정한 관람층을 가진다.그러나 간혹 덕후가 보아도, 머글이 보아도, 비평가가 보아도, 일반 대중이 보아도 즐길 수 있는 영화들이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아는 만큼 보이는’ 영화들이다. 이런 영화들은 대부분의 난해한 영화가 그러하듯 100의 이해력을 가지고 있으면 100을 이해할 수 있지만, 동시에 90의 이해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90만큼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10만큼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도 마치 90이 그 영화의 온전한 내용인 것처럼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도록 서사가 구성되어 있다. 이렇듯 대중적인 관람이 가능하다는 것은 대중예술로서의 영화에게 굉장히 중요한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2016, 발칙한 상상력전 애니메이션 특집’은 이러한 면에서 다소 불친절한 상영회였다고 할 수 있다. 상영은 총 여덟 편의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빅호러’는 기본적인 서사가 어떤 내용인지 따라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난해한 영상이었다. ‘빅 호러’는 각 캐릭터가 어떤 캐릭터인지 알아보기도 어려울 작은 크기로 나와 서로를 죽이는 것이 전부였다. 각 사건을 설명할 수 있는 상황 설명도, 서사의 기승전결도 부재했다.‘저 길 아래 어딘가’, ‘발 가는 대로’ 또한 서사를 이해할 수 있었을 뿐 그 주제와 의미를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저 길 아래 어딘가’의 경우 주인공의 여정이 삶을 의미한다는 것까지는 쉽게 유추 가능하지만 결말이 전체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았다. 심지어 과반수가 넘는 애니메이션(빅호러, 먹이, 드라이빙, 미안 바빠, 발 가는 대로)이 고어 코드를 사용하면서 다시 한 번 관람객으로부터 멀어지는 효과를 냈다. 고어 코드, 난해한 내용, 복잡한 의미부여는 각각으로는 영상의 매력을 돋울 수 있는 특징임에도 불구하고 세 속성이 중첩되면서 전체적으로 대중이 다가가기 어려운 상영이 되었다.그러나 이러한 불친절함은 ‘단편 애니메이션 상영’이라는 형식 덕분에 어느 정도 그 단점이 보완되기도 했다. 영상들이 분절적으로 상영되고, 각 영상 사이에는 크레딧이 올라가는 시간과 잠시의 블랙아웃이 존재한다. 따라서 관람객들은 영상에 떠밀려가던 자신을 정비하고 잠시 쉬어갈 시간을 갖게 된다. 그 시간에 관람객은 이해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고민할 여유를 갖게 되고, 이로써 애니메이션 상영회는 수동적인 관람에서 능동적인 사고 경험으로 탈바꿈한다.애니메이션 특유의 다양한 그림체와 연출 또한 의미론적 관람의 협소함을 보완하고 있다. 각 애니메이션은 각자 나름의 작화 방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작화의 다양함은 서사적으로 미비했던 즐거움을 효과적으로 보충해낸다. 쉽게 말해, 굳이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다양한 작화와 색감, 움직임의 연출 방식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상영회였다는 의미다. 7번째 상영작 ‘미안, 바빠’는 강박적으로 바쁜 직장인들의 생활을 모노톤, 그리고 신경질적인 연필의 끄적거림처럼 보이는 그림체를 통해 잘 드러내고 있다. 이렇듯 낮은 채도와 드라이한 작화는 주인공의 삶이 황폐하고 각박함을 보다 직관적으로 관람자에게 전달한다. 반면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하게 만드는 법’은 강렬한 색감들을 사용해 자기검열의 단계들을 명확하게 구분해낸다. 매 단계마다 테마 색깔이 파랑, 하양, 빨강, 검정으로 바뀌면서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영상에 변화를 줄 뿐 아니라 검열의 다층성과 집요함을 강조한다. 또한 그림이 아니라 대상의 사진 자체를 뜯고 찢어 붙임으로써 그 잔인성과 결과물의 부자연스러움을 직접적으로 전시한다.이처럼 비교가 가능한 여러 단편 애니메이션을 연이어 보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도 스타일의 차이를 부각하고, 관람자는 그 차이에서 표출되는 개성과 특유의 분위기를 극명하게 느끼면서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만이 가지는 자유도를 흠뻑 만끽할 수 있게 된다.애니메이션은 영화와는 다른 색깔과 다른 감각경험을 가져다준다. ‘발칙한 상상력전 애니메이션 특집’은 그 장르의 특성을 매우 잘 끌어내는 상영회다. 조금 어렵고 불친절하다는 것만 빼면 꽤 매력적인 애니메이션으로의 초대, 라고 할 수 있겠다.시네마테크 KOFADMC에 위치해 있으며, 영화관에서 다양한 영상 자료물을 상영한다.현장 발권 시 영상 자료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이단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위로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