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에서 익명이란 [예술철학]

당당하지 않다는 말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들
글 입력 2016.04.23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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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서 익명이란
당당하지 않다는 말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들



 
작년 가을 즈음, 난 페이스 북에서 익명으로 글을 쓰고는 했다. 별 건 없었다. 본명이 아닌 게 빤한 이름을 건 계정에다 가끔 글을 썼던 것 뿐이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친구 신청이 들어오면 받았고, 원래 아는 사람들에게 친구 신청이 들어오면 거절했다.
 
그런데 그렇게 글을 쓰다 보면 가끔 댓글이나 메시지로 이상한 뉘앙스의 말이 들렸다. 돌려 말하는 사람도,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쨌든 골자는 ‘실명 걸고 쓰지 왜 익명으로 쓰느냐’는 이야기였다. 내가 익명으로 글을 쓴다는 것을 알고 있던 지인에게 ‘익명이라는 벽 뒤에 숨어 자신의 글과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공개저격을 받은 적도 있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생각보다 익명을 ‘당당하지 않다’로 단정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끄럽다는 건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인데, 자신이 쓰는 것들이 부끄러우면 쓰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면서 익명성을 비판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흔했다. 그렇게까지 이야기하지는 않더라도 익명인 작가와 실명인 작가 중에서는 실명인 작가를 더 높게 보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익명으로 글을 쓰던 사람으로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익명을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예술 작품에는 어떤 방향으로든 필자가 묻어나기 마련이다. 그것이 논리든, 감정이든, 상처든, 결국 예술이란 자신의 세계를 글으로든 그림으로든 표현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중 어떠한 부분들은 사회적 맥락 안에서 특정 함의들을 동반한다. A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으니 B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편견, 그리고 A라는 속성에 대한 옳지 않은 부정적 평가들이 넘쳐난다. 성소수자가 커밍아웃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성정체성이 부끄러워서도, 부끄러워할 만한 것이어서도 아니다. 성소수자라는 것이 비난과 차별을 받아야 할 이유가 아님에도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많다. 그래서 성소수자들은 이렇듯 차별적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을 ‘선별’하여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힌다. 이들에게 ‘당당하지 않다’고 비난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일수록 문제가 커진다.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보통 몇 가지 핵심 키워드로 명명해버린다. 그 순간 그 외의 다른 속성들은 말소된다. 오로지 단어 하나로 사람이 압축되고 요약된다. 그 순간 왜곡과 소외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해진다. 그 키워드가 가난, 이혼가정, 우울 등이 되면 문제가 커진다. 당당하게 글을 쓰라는 말은 ‘쟤네 부모님 이혼했대,’ ‘쟤 자살시도 했다더라’하는 속삭임을 감수할 용기가 없으면 상처에 대해 침묵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익명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왜곡과 불합리한 ‘평가질’을 피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보다 진하고 솔직하게 펼쳐놓는 방법이다.
 
이 모든 것을 극복하더라도, 가장 큰 문제가 남아있다. ‘나’라는 존재는 내 주변 사람들의 삶과 많은 교집합을 지닌다. 내 삶에 대한 이야기는, 동시에 내 주변인들의 삶에 대한 폭로와 다름없다. 내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를 한 이상 난 내 이름을 밝힘으로써 어머니가 밝히고 싶지 않아했을 수많은 비밀들을 들추게 된다. 어머니가 여기 페북의 사람들과 평생 만날 일이 없더라도 마찬가지다. 비밀을 공개할 것인가는 오로지 어머니와 그 페북 사람 사이의 관계다. 그 안에 나는 낄 수도, 끼어들어서도 안 된다. 내 이름을 밝히는 순간 난 그 권리를 침해해버린다.
 
많은 사람들은 익명으로 글을 쓴다는 게 단순히 부끄러워 가면 뒤에 숨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익명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마지막 방패이고 자신의 상처를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라는 거다. 그러니 익명성을 당당하지 않다는 단어로 일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당사자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단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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