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피보다 진한 두 형제의 휴먼코미디, < 형제의 밤 >

가족을 엮어주는 것은 피가 아니라 정일지도 모른다는 것.
글 입력 2016.04.11 13:5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서울로 올라와서 내가 학교 다음으로 많이 갔던 곳을 뽑으라면 바로 대학로라고 말할 것이다. 그만큼 나는 대학로를 좋아한다. 내가 사는 곳과 가깝기도 하지만 그곳에서는 사람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발그레 한 얼굴로 손을 꼭 잡고 길거리를 걷는 커플들, 그 자체만으로도 꽃과 같은 어린 학생들, 그 속에 자연스럽게 섞여 자신만의 무대를 펼치는 길거리 공연자들. 지난 일요일,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사람구경에, 그 냄새를 맡는 재미에 즐거워지는 대학로라는 공간과 정말 잘 어울리는 연극을 보았다. 바로 사람 냄새 그득한 대학로 한 편에서 펼쳐지는 슬프지만 웃긴, 사람 냄새나는 휴먼 코미디 <형제의 밤>이다.





DSC00375.JPG
 

 공연장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눈에 들어왔던 것은 아담하지만 깔끔하게 꾸며진 무대였다. <옥탑방고양이> 같은 경우는 무대 위에 방 내부 공간을 만들어놓고 그 공간을 펼쳤다 닫았다 하며 극이 진행된다. <극적인 하룻밤>의 경우도 칸막이로 집과 그 외의 공간을 나누고 연기를 펼친다. 하지만 <형제의 밤>같은 경우는 딱히 칸막이를 치거나 따로 공간을 만들어놓지 않았다. 주방, 거실, 방 등 여러 공간이 등장하지만 그 공간들을 시각적으로 구분해주는 것은 오로지 문틀과 몇 가지 소품들뿐. 무대는 열 발자국만 걸어도 거실에서 화장실에서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묘한 경계선들로 가득했다. 비록 내가 연극을 많이 봤던 것은 아니지만 좁은 무대 위에서 한정된 소품들만을 가지고 극을 위해 필요한 모든 공간을 충분히 만들어내고 활용하는 모습에 새삼 놀라웠다. 

 
noname03.jpg
 
 
  하지만 더욱 인상 깊었던 것은 그 위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연기였다. 극의 절반 정도는 연소와 수동이 세상에 둘도 없는 원수 같이 싸워댔는데 사실 그 상황은 굉장히 심각할 수도 있었다. 부모님이 장례식 당일 밤이었고 보험금이니 보증금이니 하는 무거운 이야기들이 오고갔으며 어린 시절부터 쌓인 응어리들은 너무나 견고했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귀청이 떨어질 듯 소리를 지르고 쌍욕을 하고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배우들은 우리에게 슬퍼하거나 심각해질 만한 틈을 별로 주지 않았다. 몸싸움을 하는 와중에도 존댓말로 용서를 빌라며 닦달하지 않나, 사소하게 속옷을 가지고 싸우지를 않나, 어떻게 보면 33살 남자들의 싸움이 아닌 어린아이들의 싸움인 것만 같았다. 한편으로는 진지하고 심각할 수밖에 없으면서도 그 속에 유쾌하고 재치 있는 요소를 잘 버무려 보여주는 그들의 맛깔 나는 연기에 나는 2시간 내내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배우들과 함께 울고 웃는 사이에 1981년, 핀란드, 수연. 공통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단서들은 극이 흘러갈수록 어떤 하나의 사실로 귀결된다. 그리고 베일에 감추어진 비밀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연소와 수동은 서로의 비밀에 대해서 고백하게 되고, 죽일 듯이 싸웠던 과거와는 달리 점점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연소와 수동 그 두 사람이 화해하리라는 것은 아마 모두가 예상했던 바였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그렇다면 그 두 사람의 응어리를 풀어내버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형제의 밤>이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다. 피를 나눈 가족끼리는 그 정이 깊다는 뜻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딱히 맞는 말 같지는 않다. 피를 나눈 형제끼리 재산이나 지위를 놓고 싸우는 일은 오랜 과거부터 비일비재했으며 친부모가 자녀를 폭행하는 일은 안타깝지만 꽤 자주 일어나고 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보통의 가족이 ‘피’를 나누어왔기 때문에 혈연, 혈육이라는 말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피’가 가족을 엮어주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싸우던 동생과 화해하고, 때로는 밉기도 한 부모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마도 그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 속에 알게 모르게 쌓여온 정 때문이 아닐까. 피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이처럼 연소와 수동이 결국 마음의 문을 열고 손을 맞잡을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정에 있을지도 모른다. 서로를 미워하기 바빠 알아채지 못했지만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버린 우주 고아 두 사람이 세상 속에서 서로의 손을 놓아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테니까 말이다.
 가족을 엮어주는 것은 피가 아니라 정일지도 모른다는 것. 내 곁을 지켜주는 가족들은 피가 아니라 정을 나눴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라는 것. 아마도 그것이 <형제의 밤>이 우리에게 건네고 싶었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반채은.jpg


[반채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