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모네, 빛을 그리다

모네의 눈으로
글 입력 2016.04.05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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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아름다움에 예민한 사람들이 있다. 매일 보는 풍경에 무뎌지거나 익숙해지지 않고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매일같이 보는 하늘에 새로이 경탄하고, 그 빛깔에 감동한다. 봄에 난 새순의 색깔을, 잎사귀의 곡선을 보면서 그 누구보다도 행복해하는 사람들이니 참 축복받았다고도 하겠다.
'모네, 빛을 그리다' 전시를 보면서 모네가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전시는 내내 관람자에게 ‘모네의 그림’이 아니라 ‘모네의 눈에 비춰진 세상’을 보여주었다. 그의 눈에 비쳐진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공간이었을지, 그 아름다움을 잡아놓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 지가 보이는 듯 했다. 결국 예술가들은 익숙함에 매몰된 아름다움을 캐내어 보이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예술가가 만들어 놓은 작품만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한 예술가의 세계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간접적으로나마 나 자신이 예술가가 되어보는 체험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모네 빛을 그리다'는 관람자가 아니라 예술가의 눈을 체험할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관람을 유도하는 전시라 할 수 있겠다.

 이는 전시의 미디어아트적 성격 때문이 크다. 작은 액자 안에 갇혀 있던 그림을 벽 한 가득 펼쳐진 스크린 위에 풀어 놓고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크기가 커졌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우리가 실제와 실제가 아닌 것을 구분하는 가장 큰 기준은 ‘프레임’의 존재다. 프레임에 의해 비실제는 실제로부터 구분된다. 그래서 프레임의 구속이 적을수록 우리는 매체를 더 ‘사실적’이라고 느낀다. 핸드폰으로 볼 수 있는 영화를 굳이 영화관에 가서 보는 이유다.

 모네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그 크기가 벽을 뒤덮는 크기로 커지는 순간, 모네의 그림은 ‘전시회에 전시된 작품’의 전형적인 전시 방식을 벗어나면서 새롭게 다가온다. ‘작품’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고 프레임의 구속에서 한결 자유로워지면서 그림은 어느 정도의 사실성을 획득한다. 그 사실성 때문에 관람자는 그림이 아니라 풍경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스크린을 통해 부여된 움직임들도 비슷한 효과를 낸다. 전시는 자칫해서 어색하거나 유치하게 보일 수 있는 애니메이션 효과를 과감하게 도입했다. 대신 바람에 풀숲이 흔들리거나 사람 한 명이 걸어가는 정도의 부분적 모션만 첨가하고 그 움직임이 붓질의 결과 어울리게끔 신경을 썼다. 이러한 사소한 움직임들은 전체 그림이 풍경으로 다가오게끔 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자연에서는 모든 것이 조금씩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는 완전한 정지상태에 이질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미디어아트는 그러한 이질감을 탁월하게 지워준다. 결국 관람자는 모네가 그린 그림 뿐 아니라 그가 보았을 풍경을 그의 붓질로, 그의 눈으로 감상할 수 있게 된다.
 
 모네의 눈은 색깔을 주목했다. 그는 “색은 하루 종일 나를 집착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그리고 고통스럽게 만든다”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 색깔과 빛에 주목한 화가였다. 그의 그림은 인상주의의 거장이라는 그의 이름답게, 형태선이 아니라 다른 색깔을 가진 무수한 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자연의 빛깔을 화폭 안에 잡아두는 데 골몰했다. 전시는 이러한 모네의 색깔에 대한 열정을 미디어 아트의 특성을 통해 관람자에게 전달한다. 흑백의 그림 위에 색깔이 빠르게 번져나가는 애니메이션 효과를 추가한 것이다. 이로써 흑백에서 컬러로 넘어가는 ‘드라마틱한 시점’을 만들어내는데, 이 시점에서 색채의 아름다움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끔 한다. 거대한 벽면에 색깔이 피어나는 장면은 마치 그 색깔들이 폭포가 되어 나에게 쏟아지는 것만 같은 감동을 준다. 모네가 자연을 보면서 느꼈을 그 숨막히는 美가 시간을 넘어 나에게도 와 닿는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전시장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앉아서 200년 전 모네의 삶의 풍경들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언덕 위에 하얀 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 까미유와, 그가 거닐기 좋아하던 바닷가, 눈이 덮인 오두막, 까미유의 죽음, 그리고 그의 노년을 수놓았던 수련 연못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모네가 그랬던 것처럼 그 아름다움에 숨 막혀 했고, 눈물겨워했고, 가슴 벅차했다. 새로운 시도는 항상 엉성한 부분이 있고, 또 그리하여 비난받기 마련이다. 스크린으로 재현한 작품은 진품의 아우라를 전달하지는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모네, 빛을 그리다’ 전시를 보면서 경험한 건 분명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이었고 예술적 체험이었다. 나는 전시에서 모네의 세상을 보았고, 그건 그 어떤 전시도 주기 어려운 경험이다. 그가 보았던 세상이 궁금한 이들에게, 이 전시를 추천한다. 
 
 
[이단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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