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바우 - 네이버에서 연재중인 컷툰. 서니, 티컵 등 동물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삶을 흑백의 그림체로 그려낸다. 등장인물은 같으나 옴니버스 형식으로 다른 이야기가 이어진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우울을 품고 산다. 평소에는 낙천적으로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문득 불청객처럼 고개를 드는 우울한 밤들이 있다. 그리고 벗어나려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 우울이 나를 집어삼키고 놓아주지 않는 순간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즐거운 이야기, 따뜻한 이야기, 긍정적으로 사는 방법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우리는 행복해지고 싶으니까, 굳이 내가 선택해서 보는 만화나 TV에서까지 우울을 보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비관적이고 우울한 이야기를 보면서 다시금 그 구렁텅이 속으로 떨어지고 싶지도 않을게다. 그래서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멋있는 남자와 사랑을 이루고, 만화의 용사는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 괴물을 무찌른다. 이런 이야기에서 우울이란 이후 성공을 빛나게 만들어 줄 유용한 도구에 불과하다.
그래서 우리의 우울은, 갈 곳을 잃는다. 누구나 있는 줄 알면서도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그것’이 되어 외면당한다. 그렇게 우울은 맞서 싸워서 물리쳐야 할 것, 점점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이 되어간다.
<우바우, 우리가 바라는 우리>는 이러한 긍정의 홍수 속에서 굳이 우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웹툰이다. 첫 화에서 동물들은 ‘우리가 무엇을 바라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톰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자고 싶다는 대답하고, 째깐이는 그건 죽는거야 언니, 라고 토를 단다. 그 말에 등장동물들은 돈 없어서 초라해질 일도 없고 알바나 학교도 가지 않아도 되니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아프지 않게 죽는 방법이 없으니, 내일도 살아야 될 것 같다며 다시금 욕을 뱉는다. 첫 화부터 죽고 싶다니, 암울하기 짝이 없다. 심지어는 그 뒤에 ‘그래도 살아야 할 이유가 있어’ 따위의 결말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젊음은 살 수 없다는 앞니의 말에 아프기만 한 거 가져서 뭐 하냐며 고개를 돌릴 뿐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 더 밝아지는 경향이 있지만, 어쨌든 우바우는 이렇게 동물들의 우울을 담담하게 그린다. 이 웹툰에서 우울은 ‘중2병’이라는 조롱적 뉘앙스에서도, 자극적인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신파’의 틀에서도 자유롭다. 오히려 오랜 시간 자신의 우울을 조용히 들여다본 자가 읊조리는 고백에 가깝다. 과장도 치장도 없어서인지 우바우를 읽다 보면 내 이야기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내 우울이 그 안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바우의 우울은 무겁거나 질질 끌리지 않는다. 우울을 서사가 아니라 관념을 통해 드러낸 덕이다. 우바우는 외로움의 귀신이 나와 우울에 대해 대화하는 모습을 그리지, 지친 하루를 보낸 누군가가 침대에 앉아 우는 모습을 그리지 않는다. 상황에 대한 정보를 생략하고 감정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관념적으로 풀어놓으면서 우바우는 이입을 피하고 공감을 얻는다. 자신이 우울 했던 때를 떠올리면서, ‘맞아, 그 때 감정이 저랬어’라고 회상할 수 있지만 힘든 상황에 자기 자신을 위치시키고 새로운 우울을 얻어가지는 않는다.
이러한 관념적 서술방식은 우바우가 가진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우울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우울에 대한 통찰을 담담히 풀어놓는다. 그 통찰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디딤돌을 마련해준다. 우리는 많은 경우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휩쓸려 간다. 우바우는 그렇게 우리가 경험하고 흘려버리는 감각들을 언어로 정리하고 그 이유를 정리해낸다. ‘인정받고픈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데, 남들의 시선을 무시하는 게 가능하긴 할까,’ ‘사랑받기가 힘들다. 다른 이들이 내게 섣불리 기대를 갖게 될까봐 두렵다’ (우바우 40화, 중이-2편) 와 같은 대사들은 인간관계가 끔찍하게 힘들어 도망치면서도 사람이 그리워 SNS를 찾는 우리의 모습을 푹푹 찌른다.
그래서 우바우를 읽다 보면 묘하게 내 안이 차분차분하게 정리되는 기분이 든다. 귀여운 동물들과 잇선 작가 특유의 농담코드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울은 싸워 몰아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냥 우리 삶의 언저리에 항상 앉아 있는 생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우리의 삶에서 우울이 없어지지는 않을 거라는 체념이며, 체념을 통한 위로다. 우울해도 괜찮다. 우울한 자신을 내가 끌어안지 못하면 그 누가 끌어안겠는가. 그렇게 우바우는 우리에게 우울과 인사하는 법을 알려준다. 그러니 어딘가 모르게 가라앉는 밤이면 혼자 침대에 앉아 이 동물들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도 괜찮겠다. 안녕, 우울아, 하고 말을 걸면 우울도 대답을 해 올지 모르니까. 너처럼 나도 외로웠다고, 그러니 끌어안아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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