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레버넌트] 자연과 인간 사이, 운명과 의지 사이

글 입력 2016.02.23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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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에 담겨 있는 스포를 주의하세요!


레버넌트.jpg


영화 [레버넌트]를 보고 남은 기억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인생연기도 아니었고 톰 하디의 멋진 악역도 아닌 운명과 의지 사이에서 고민하는 자연 속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얼핏 보면 제목대로 죽음에서 살아온 자, 휴 글래스를 떠올리면 영화는 자연과 인간의 대립 구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자연 속에서 어떻게 나약한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전하려고 하는 메세지가 분명 담겨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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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화에서 초점을 두고 있는 건 결국은 사람과 사람의 대립입니다. 여러 대립구도가 있겠지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미국 모피회사 동료들과 글래스의 대립입니다. 레버넌트라는 제목처럼 글래스를 배신한 동료들은 그를 죽음에서 돌아오게 만든 장본인들입니다.배신도 배신이지만 결정적으로 글래스와 동료들 사이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돈독한 믿음이 존재하지 않는데 이는 그 둘 사이의 성향 차이때문이라고도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휴 글래스는 인디언과 미국인의 이해관계와 생각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면서도 그래서인지 아웃사이더 같은 인물입니다. 글래스는 굳이 인디언들을 먼저 공격하려는 대신 그들의 영역을  피하면서 가능한 공격하지도 공격받지 않고 그가 좋아하는 조용한 자연처럼 지내길 바랍니다. 그는 미국인임에도 인디언 여자를 사랑했고 그녀를 닮은 아들이 있습니다.  그에게 미국인 혹은 인디언이냐는 인종적인 정체성도 이해관계도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저 그의 가족, 아내와 아들을 사랑하고 그 가족을 다치게 사람들에게 화가 나는 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런 그에게 동료들은 잊을 만하면 그의 과거를 물어봅니다.
"정말 미국인을 죽였나요?"
그들에겐 같은 미국인이 인디언 여자 때문에 미국인을 죽였다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 말에 침묵으로 답하는 글래스를 보는 '동료들'의 눈에 글래스는 내 편도 적의 편도 아닌 애매모호한 존재입니다.  미국인이지만 미국인이 아닌 느낌 때문에 신뢰가 제대로 쌓이지 않은 상황에서 그가 길잡이로서 추운 겨울 동료들의 발길을 이끌어가니 동료들도 내심 저 길이 최선인가 회의나 불만도 내심 많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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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래스가 회색곰에게 심하게 다쳐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 동료들은 결국 딜레마에 빠집니다. 유일하게 길을 다 알고 있는 글래스가 필요하면서도 추운 겨울에 혼자 몸 가두기도 힘든데 위중한 환자를 챙기는 것에 자신없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물론 글래스가 쓸모없어지면 버려도 충분한 그저 그런 정도의 존재였다기보다는 극한 상황에서 다 죽어가는 가망없는 환자와 함께 지내는 것보다 외면하는 것이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보다 나은 선택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글래스가 살든 죽든 그의 마지막까지 동료들이 챙기자 이야기할 때는 우물쭈물하더니 돈을 보상으로 걸자 일사천리로 너도나도 자원했던 동료들의 모습이 매우 씁쓸합니다. 
  큰 틀에서 보면 동료 모두가 글래스를 크고 작게나마 배신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가장 큰 배신자는 분명 피츠제럴드일 것입니다. 그가가 특히 고의적으로 노력도 해보지 않고서 살아있던 글래스를 땅 속에 묻어버린 것과 우발적이라 해도 글래스의 소중한 아들을 죽인 것 역시 명백한 잘못입니다. 그러나 그의 말에 속아 넘어가서 얼떨결에 공범이 되어 이도저도 못하고 불안함에 휩싸인 브리저의 모습이나 피츠제럴드와 브리저에게 글래스를 맡기고서 그 대가로 돈을 보상하면서 복잡한 표정을 짓는 제독을 보다 보면 피츠제럴드만큼은 아니더라도 배신으로 인한 죄책감의 무게는 모두에게서 조금씩은 느껴집니다. 제3자 입장에서야 도덕교과서 같은 답을 들면서 이들 각각을 비난할 수 있겠지만 이런 극한 상황에서 똑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우리는 다를 것이라고 고민 없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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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편 19세기 이전 아메리카 대륙을 배경으로 한 만큼 다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건 인디언들과 서양인들(프랑스인과 미국인들)의 대립입니다. 영화 초반부터 인디언과 휴 글래스가 몸담은 미국의 모피회사 사람들과는 아주 격렬한 전투가 벌어집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인디언들이 잔인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인디언들의 땅을 빼앗고 전쟁의 도화선이 된 건 서양인들이니까요. 영화에선 언급되지 않지만 실제로 미국에서는 자유롭게 살고 있던 인디언들을 제한된 구역으로 이주시키고  넓은 땅을 얻었고 이주 도중에 수많은 인디언들이 목숨을 잃고 소수만 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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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기하게도 영화는 오히려 이렇게 안타까운 상황에 처한 인디언들이 자연과 세상을 보는 시선으로 글래스의 이 험난한 복수를 끝냅니다. 글래스에게 이런 면에서 도움을 준 인디언은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글래스가 복수심에 불타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칠 때 무심한 듯 그를 챙겨주었던 생명의 은인입니다. 그는 상실감과 우울함에 빠져있는 글래스에게 든든한 양식은 물론 웃음을 찾아주었고 얼어죽지 않도록 따뜻한 움막을 지어주고 떠나다가 결국 이웃 프랑스 모피회사 직원들에게 목숨을 잃고 맙니다. 
  그 또한 전쟁으로 소중한 부족 사람들을 잃었지만 그는 아들을 잃은 복수심에 불타는 글래스와는 달리 복수는 자신이 몫이 아닌 하늘의 몫이라며 그저 흐르는 대로 두기로 합니다. 글래스는 당시에는 이런 인디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막상 피츠제럴드를 만나 담판을 지으면서 그 의미를 새삼 깨닫습니다. 그의 말을 떠올리면서 그는 물가에 다친 피츠제럴드를 떠내려 보내고 강 건너의 한 인디언들이 피츠제럴드를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다른 한 사람은 영화 속에서 한 인디언 추장이 찾아 헤매던 납치된 딸입니다. 글래스는 우연찮게 프랑스 모피회사 직원들이 그녀를 성노예로 학대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의 탈출을 도와줍니다. 피츠제럴드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인디언들은 강을 건너 다친 글래스에게도 다가오고 글래스는 그들의 처분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이릅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글래스를 공격하지 않았는데 그가 구해주었던 추장의 딸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유유히 글래스와 눈을 맞추고 사라져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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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삶에 대한 무궁한 의지를 보았다고 하지만 저는 오히려 삶의 마음가짐과 운명에 대한 생각이 못지 않게 들었습니다.  글래스가 소중한 아들을 잃은 분노에 가득차 피츠제럴드에게 복수하기 위해 버틴 것은 글래스의 엄청난 의지가 토대가 되어 가능했던 일이지만 땅에 묻혔다가 다시 살아남았을 때 만난 생명의 은인과  복수를 마치게 해 준 또다른 인디언 두 명을 만나 복수에 대한 생각을 바꿔 모든 걸 내려놓고 복수를 끝내는 그 과정에는 운명같은 우연이 너무나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글래스처럼 죽음에서 돌아온 자도 아니지만 그와 비슷하게 현실 속에서 의지와 운명에 대한 고민을 하곤 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의지와 바꾸고 나아갈 수 있는 면이 분명 존재하지만 때로는 설명할수 없는 운명 안에 우리 자신을 맡겨야 할 때도 있을테니까요. 우리는 그 때 과연 어떤 선택은 내리게 될까요? 많은 생각을 들게 했던 영화 [레버넌트]였습니다.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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