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담담하지만 강렬한 재조명 - 연극 '해피투게더'

글 입력 2015.12.26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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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9일 토요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20일까지 상연했던 연극
'해피투게더'를 보고 왔습니다.


해피투게더_포스터.jpg


 '해피투게더'는 한국 현대사의 문제적 사건 중 하나인
1987년 '형제 복지원' 사건을 재조명한 작품입니다.
지난 프리뷰에서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저는 연극 '해피투게더'를 계기로 이 사건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답니다.


'형제 복지원' 사건이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 고아들을 부산에 위치한 형제 복지원에 불법감금하고 강제 노역을 시킨
대표적인 인권 유린사건입니다.

형제 복지원은 약 3천 명을 수용한, 당시 전국에서 가장 큰 부랑인 수용시설이었습니다.
길거리 등에서 발견한 무연고자들을 끌고 가 불법으로 감금하고
강제노역은 물론 구타 등의 학대와 암매장까지 하는 등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습니다.
실제로 형제 복지원의 운영기간인 12년 동안
2014년 3월까지 확인된 사망자만 551명에 달합니다.

형제 복지원 사건은 1987년 수감자 35명이 탈출을 하고 
그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비로소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하는 복지시설에 억울하게 갇혀 각종 폭력과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551명이 사망하고 사체 일부는 해부 실습용으로 매매까지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시 사회는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만행에도 불구하고
박인근 형제복지원 이사장은 7번의 재판 끝에 1989년 3월,
징역 2년 6개월이라는 가벼운 면죄부만을 받고 사건은 금세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원생들에 대한 불법 감금, 폭행, 사망 등에 대해서는 기소조차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연극 '해피투게더'는 부랑인과 걸인 및 무연고자 등에 대한
대대적인 격리 수용의 과정에서 발생한
상상초월의 폭력, 강제노동, 착취, 살해의 전말과 그 매커니즘을
냉철하고 치밀한 시선으로 극화하고 있었습니다.

이 연극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바로 악당이자 가해자인 복지원장이
논리적이고 확신에 가득찬 1인칭 화자로 등장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연극이 시작되고, 불이 꺼진 조용한 무대 한가운데로 천천히 걸어나와
조곤조곤 이야기를 시작하는 남자에게 관객들은 한껏 집중합니다.

하지만 남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관객들은
이 남자가 바로 복지원장이며, 이 복지원장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나름대로의 뻔뻔한 논리를 들어
자기변호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게 되죠.

이렇게 연극 '해피투게더'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거리낌없는 폭력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심리적 동기와 기제를 냉철하게 드러내기 위해
작품은 '가해자와 피해자', '우리 편과 나쁜 놈'이라는 이분법을 잠시 내려놓는
특별한 시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웹상세_해피투게더2_700.jpg


복지원장과 함께 등장하는 8명의 인물들은
때로는 복지원에 영문을 모르고 끌려온 피해자를 연기하기도,
때로는 그 피해자들에게 무차별적이고 비인간적인 행위를 저지르는 피의자를 연기하기도 합니다.

또 복지원에서 겪은 끔찍한 기억에 대해 피해자들과 그 주변인들이 진술하는 방식은
관객들로 하여금 연극에 더 몰입할 수 있게 해주고 있었어요.

이렇게 '해피투게더'가 가지고 있는 신선한 극적 장치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감상적인 분노와 연민에의 치우침 없이
주체적으로 성찰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를 제공합니다.

피해자에 대한 감성적 동조와 연민에서 거리를 둠으로써
사건의 참혹함 자체에 압도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묻고, 따지고, 생각할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인지 대학로에서 관람했던 여느 흥미로운 연극 작품들보다
더 몰입하면서 볼 수 있었고, 관람 후의 여운도 오래 남았던 것 같습니다.


noname01.jpg
 

'해피투게더'는
도대체 누가, 왜, 어떤 근거와 신념으로 무고한 인간을 감금하고 때려죽일 수 있었는지,
그러고도 아무런 죄의식과 가책을 느끼지 못했던 것인지,
이 끔찍한 범죄의 단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배경은 무엇인지,
멀쩡했던 한 인간이 어떤 식으로 두려움의 노예가 되어가는지,
폭력의 공포에 떨던 피학자가 어떤 과정을 통해 무시무시한 가학자로 변해가는지
담담하고 치우치지 않는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또한 형제복지원 사건은
지난 2014년과 올해에 걸쳐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재조명되기 시작했으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그래서 더욱 잊혀져서는 안될 사건이라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연극이기도 했어요.


'해피투게더'는 저에게 연극으로서의 재미뿐만 아니라
관람하고 나서의 무겁고 진한 여운 또한 남겨준 뜻깊은 작품이었습니다.
상연 기간이 더욱 길었으면 좋았겠지만
지난 12월 20일을 마지막으로 연극이 막을 내리게 되어 많이 아쉬웠답니다.
하지만 여러모로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작품인 만큼,
다음 기회에 또 대학로에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쪼록 이번 연극 '해피투게더'를 계기로
저처럼 더욱 많은 이들이 형제 복지원 사건에 대해 기억하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사건에 대해 더욱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대통령 취임사에도, 국회의원 당선소감에도, 각부 장관의 취임인사에도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국민 모두가 잘사는 세상, 국민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 만들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외친 ‘해피투게더’가 현실 속에서 실현된 적이 있었을까요? 
 <해피투게더>는 
그들이 외친 ‘해피투게더’가 과연 누구를 위한 해피투게더였는지,
진정한 ‘해피투게더’를 위해서는 과연 무엇이 필요한지, 속 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라는 작품의 기획 의도처럼 말입니다.





참고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 형제복지원 사건
연극 '해피투게더' 보도자료



서포터즈6기_양수진(2).jpg
 

[양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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