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정복수 展 - 화가의 자궁 Jung Boc Su's "Hand-Vagina" [시각예술]

글 입력 2015.11.3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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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2학년 때 사비나미술관에서 하는 정복수 작가의 개인전 <존재의 비망록>을 보러갔었다. 마치 인체 해부 부검 현장에 온 듯한 느낌의 작품들이 당시에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알 수없는 당혹감과 비슷한 감정들이 휘발되기 전에 급하게 글로 남겼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무슨 자신감인지 작가분께 그 글을 메일로 보냈었다. 지금이라면 절대 그러지 못할텐데, 무식이 용감하다고 그 인연으로 작가님과 계속 연락이 닿고 있다.
  중간중간 개인전을 하실 때마다 가야지가야지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오늘에서야 가게 되었다. 오랜만이라 하기에도 무색할만큼의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작가님께서는 "지금 대학교 3학년이지?" 라며 반겨주시고 2011년의 만남을 온전히 기억해주셨다. 진로에 대한 고민 때문에 예전만큼 미술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는데도 차분하게 들어주시고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다. 국문과라고 하니 미대에 진학한 줄 알았다면서 조금 놀라신 것 같았지만 뭐 난 지금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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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내 무의식에서 억압되어 있는 사유의 영역을 들여다보게 만들고, 독특한 철학으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설명하려는 그런 그림들 이었다. 뱀들에 휩싸여 있는 사람의 손가락이 왜 절단되어 있냐는 내 물음에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뭐, 저기에서 또 뱀이 나올 수도 있겠지?" 라고 대답하시는 작가님도 나도 4년 전과 여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꿈꾸던, 아무것도 몰랐지만 가장 열정적이었던 고등학생 때로 잠시 돌아간 기분이었다. 당돌했던 여고생에서 대학생이 되었지만 여전히 철없는 나를 과연 어떻게 보실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작가님은 좋은 멘토와 같은 분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지금도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지만, 4년 전 고등학생 때 썼던 글을 다시 보니 민망하기도 하지만, 그때의 기억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다소 감상적인 글이 되었지만, 나의 추억이 곁들어 있는 풋풋했던 여고생의 글을 덧붙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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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나 미술관 정복수 개인전 <존재의 비망록>을 다녀와서
정복수 작가와의 만남
 
용인 죽전고등학교 2학년 김정연
 
 
  “그림이라는 것은 살아서 움직여야 한다. 춤도 추고, 고함도 지르고, 말도 하고, 사랑도 하고, 증오도 하고, 술도 마시고, 미워도 하고, 사람이 살아가듯 살아 있어야 그림이다. 그리기란 잘 포장된 도로 위를 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없는 길을 다시 만드는 것이다. 그것도 맨몸으로”
 
  정복수는 몸을 주제로 작업하는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작가이다. 그는 ‘탐욕과 배설의 인간사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물체’라고 말하며 얼굴 부위와 몸의 안과 밖 부분을 도구처럼 절단하고 조합하여 인간의 이야기를 그려 왔다.
그의 예술세계에 대해 충분히 조사하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사비나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절단된 인체와 훤히 들여다보이는 내장과 장기들, 표정이 없는 민머리와 알몸의 인간들...... 마치 인체 해부 부검 현장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유럽 우피치 미술관의 카라바조 그림을 보았을 때의 당혹감과 비슷했다. 카라바조는 내가 마치 현장의 목격자가 되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독특한 작가이다.
1층과 2층에는 정복수 작가의 초기작이, 지하 1층에는 최근작이 전시되어 있었다. 제일 먼저 만난 것은 판넬 위에 골판지를 붙여 작업한 <사람1>이라는 작품이었다. 일상생활에도 흔히 쓰이는 재료를 사용했다는 점이 더 작품에 쉽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들었다. <사람1>은 팔과 다리가 절단되고 뱃속에는 염소, 곤충과 같은 동물 모양의 오브제가 놓여 있는 작품이었다. 끊임없이 탐욕스러운 식욕을 가진 인간으로 벌레만도 못한 짐승 같은 인간을 상징한다고 한다. 윤리 시간에 배웠던 불교의 윤회사상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정말 내가 먹었던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다음은 <사람의 머리, 여기(女氣) 남기(男氣) 소녀기(少女氣)>라는 물감과 목탄, 연필 등으로 그려진 벽면 드로잉 앞에 설치된 인체 형상 작품이었다. 사람들의 몸에는 마치 침을 뜨는 위치를 표현한 경혈도처럼 생긴 선들로 가득했다. 도슨트 언니에게 물어 보니 경혈도가 아니라 기쁨, 슬픔, 사랑 등의 인간의 감정적 기운이 전달되는 작가의 상상에 따른 노선도라고 말해 주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잔혹하고 징그러워 보였던 작품들이 오히려 경쾌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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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밖에도 다양한 작품들이 있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낙원에서 온 편지>였다. 꽃밭 위에 알몸으로 누워 있는 남녀의 그림으로 신화 ‘아담과 이브’를 연상케 했다. 그러나 아담과 이브처럼 선악과를 따먹는 유혹에 빠지지 않는 순수하고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1차원적 평면의 남녀 그림 앞에 3차원의 입체인 나무가 세워져 있었다. 이 나무는 실제 뽕나무라고 했다. 하지만 나무에 붙어 있는 꽃이 조화라는 점이 이상했다. 독특한 점은 다양한 오브제와 조명으로 현장감있는 분위기를 연출하여 마치 하나의 연극무대를 보듯이 전시해 놓은 것이었다.
정복수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간의 형상에는 민머리와 나체, 피부에 그려진 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는 옷이나 자동차와 같은 겉치레가 아닌 알몸을 통해 작가만의 독특한 철학과 표현기법으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설명하려고 한다. 또 피부의 눈은 본연의 모습을 감춘 인간의 또 다른 모습들을 상징한다. 눈들이 정면으로 나를 응시하는 것 같아 오싹하리만큼 섬뜩하기도 했다.
  운이 좋게도 직접 정복수 작가를 만날 수가 있었다. 정복수 작가는 생각보다 과묵하시고 낯을 많이 가리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작가와 대화를 하고 싶어 하였다. 나도 질세라 얼른 작가한테 질문을 던졌다. 나는 민머리의 나체 형상에서 왜 최근작에는 흔히 옷과 같은 겉치레를 위주로 작품을 만드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선생님은 작품을 만들게 된 동기나 의도와 같은 질문에 곧잘 대답하시다가 내가 질문했을 때 잠깐 생각을 하시는 듯했다. 예상 외로 돌아온 답은 간단하였다. 일단 현대 문명의 급속한 발전에 염증을 느껴 오히려 역발상으로 제작을 하게 되었고, 한 주제를 가지고만 작업하지 않고 다양한 부분을 접하시고 싶으셨다고 하셨다.
  작가와의 대화가 끝나고 사람들은 모두 빠져 나갔다. 하지만 나는 정복수 작가와 더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그냥 관람객 중 하나로만 지나치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갈 채비를 하시는 정복수 작가 선생님께 다시 가서 명함도 받고 장차 예술계에서 활동하고 싶은 나의 포부를 밝혔다. 선생님께서는 웃으시면서 훌륭한 예술인이 되라고 조언을 해주셨다.
  정복수 작가의 개인전을 보고 진정 나의 본연의 모습이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21세기 디지털의 세상 속에 더 고립되어가는 인간의 내면을 껴안을 수 있는 예술의 세계를 꿈꾸어 보는 하루였다.
 
 

 
 
  수정하고 싶은 마음이 역력했으나 그때의 감정을 훼손시키기 싫어 그대로 복사해왔다. 마치 방청소를 하다가 어릴 적에 썼던 일기장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왜 쪽팔림은 한 번이지만 남는 것은 평생 간다 하지 않는가.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이렇게 글도 쓰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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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복수 작가의 개인전 ‘화가의 자궁’은 트렁크갤러리 (http://www.trunkgallery.com/) 에서 12월 1일까지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아트사이드갤러리 (http://www.artside.org/) 에서도 12월 4일까지 ‘HAPPY EROS & ETERNITY’ 라는 공동 전시에서도 정복수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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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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