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피티(Graffiti)>
도보로 이동하다보면 종종 그래피티(Graffiti)를 마주하게 될 때가 있다. 당신은 이러한 그래피티를 마주하였을 때 불쾌한 감정을 떠올렸는가, 아니면 하나의 예술로 간주하였는가? 필자는 평소에 그래피티 아트에 굉장히 관심이 많아 유명 그래피티가 있는 전세계의 길거리를 모두 탐방하는 것이 버켓리스트일 정도다. 그래피티의 역사과 상징성은 그래피티를예술로 간주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한다. 과거에 그래피티는 소외계층들의 반항심 표출의 수단으로 여겨지며 거리의 낙서 따위로 치부되었지만, 예술의 다양성이 확대되면서 그 예술성을 점차 인정받게 되었다.
<그래피티의 주 도구, 분무 페인트(spray can)>
그래피티(graffiti)는 '긁다, 긁어서 새기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graffito'와 그리스어 'sgraffito'가 어원이 되었다. 분무(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려진 낙서 같은 문자나 그림을 뜻하는 말로 'spraycan art', 'aerosol art'라고도 한다. 유럽에서는 '거리의 예술(street art)'로서 자리를 잡았다.
그래피티의 기원은 고대의 동굴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당시 사람들은 동굴 벽에 낙서를 함으로써 자신들의 일상을 기록하거나 감정을 표현하였다. 이 그래피티가 예술로서 등장하게 된 것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이다. 미국의 추상주의 화가 사이 톰블리(Cy Twombly)와 액션 페인팅을 선보인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등은 그림과 낙서를 결합하는 독창적인 표현 양식을 선보였고 장 뒤뷔페(Jean Dubuffet)는 낙서의 의미에 관심을 두어 그래피티를 예술로 발전시켰다.
<뉴욕의 브롱크스(Bronx)거리>
현대의 그래피티는 어떻게 발전하게 되었을까?
1960년대 말 미국의 필라델피아에서 콘브래드(Cornbread)와 쿨 얼(Cool Earl)이라는 서명을 남긴 인물들이 그래피티의 포문을 열었다.
이후 뉴욕의 브롱크스 거리에서 낙서가 범람하면서 현대의 그래피티가 본격화되었다. 초반에 이 그래피티 문화를 주도한 것은 흑인, 반항적 청소년, 푸에르토리코인과 같은 소수계층들이었다. 분무 페인트(spray can)를 이용해 다채로운 색감으로, 속도감을 벽 위에 나타내며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내었다. 이들의 표현력은 제한되어있는 것 같지 않았다. 적극적이며 충동적이고 원색적인 그림과 문자들이 표현되지 못하는 곳은 없었다. 굴다리, 야구장, 주차장, 지하철역 등 그들이 분무 페인트를 꺼내 드는 곳이 바로 그들의 캔버스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그래피티는 도시의 경관을 해치고, 공공기물파손 우려와 사회반항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는 점 때문에 사회의 문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래피티는 어떻게 거리의 낙서에서 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을까?
이 거대한 전환의 중심에는 장 미셀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와 미스 해링(Keith Harring)이 있다.
<장 미셀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장 미셀 바스키아는 푸에르토리코 혈통으로, 낙서화가 알 디아즈(Al Diaz)를 만나 낙서그룹 'SAMO'을 조직하고 그래피티를 시작하였다. 뉴욕현대미술관 앞에서 옆서와 티셔츠 위에 그림을 그려 팔았지만 1984년에는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게 된다. 주로 흑인영웅, 해부학, 만화, 자전적 이야기, 죽음 등을 주제로 충격적인 작품을 남기며 팝아트 계열의 천재적 자유구상화가로서 인정받게 된다.
키스 해링은 아이콘화된 사물을 그리는 그래피티를 선보이며 주목받게 되었다. 검은 종이 위에 흰 분필로 그림을 그렸는데, 에이즈 퇴치, 인종차별 반대, 핵전쟁에 대한 공포 등의 사회적인 메시지를 강하게 담은 그래피티를 남겼다.
< 시드니의 뉴타운(New Town)>
그렇다면 제대로된 그래피티 아트를 감상하려면 어디로 떠나야 할까?
호주의 시드니 뉴타운(New Town)이 적소이다. 우리나라의 홍대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타운은 시티 센터에서 약 4km정도 떨어져 있다. 다 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양의 그래피티가 뉴타운 전역에 퍼져 있다고 한다. 이곳에 사는 시민들 또한 이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으로 나뉜다고 한다.
<멜버른의 호시어 레인(Hosier Lane)>
다음의 추천 장소도 공교롭게도 호주에 있다. 멜버른의 호시어 레인(Hosier Lane)은 한국 관광객들에게는 ‘미사 거리’라는 명칭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06년 방영된 KBS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해외 로케이션 촬영이 바로 이곳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임수정이 알록달록한 니트를 입고 그래피티 밑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그림을 기억할 것이다. 멜버른에서는 신진 아티스트는 물론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의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그래피티를 완성하고 있는 작가를 마주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래피티가 예술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예술 형식의 파괴이다. 예술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이 곧 예술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그래피티의 주요 철학인 것이다. 주관성을 가지고 미학을 바라보고, 내가 보는 예술과 남이 보는 예술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그래피티 아트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래피티는 예술과 사회의 충돌을 보여준다. 예술은 사회로부터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술이 사회를 반영함을 넘어서 비판이나 반항의 의도를 띄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예술의 특성이 또 다시 사회의 발전에의 기여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예술의 자율성은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규제를 통해 사회 질서를 흐리지 않는 정도로 예술의 표현을 유지해아 할 것이다.
출처: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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