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레이먼 사비냑, 스토리텔링과 웃음의 코드[시각예술]

20세기 거장 시리즈 - < 비주얼 스캔들 >
글 입력 2015.08.22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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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 사비냑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포스터 아티스트이다.
현재 홍대 상상마당에서는
20세기 거장 시리즈 - <비주얼 스캔들>이란 제목으로 그의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유희의 맥락’을 중심으로 그의 작품세계, 전시에 대한 주관적인 감상평을 써보고자 한다.

 


레이먼 사비냑의 주목할 만한 점은
그가 기업체의 요청 이전에 자신이 먼저 포스터 작업을 하였으며, 따라서 광고주와의 타협 없이 자기만의 독특한 해학과 철학을 담은 포스터를 선보였다는 점이다. 상품과 예술의 경계 위에서 교묘히 줄을 타는 유희를 통해 오롯이 자기 세계를 담아낸 그의 작품세계를 살펴보자!
   



#. 장르의 경계, 순진함의 가장에서부터 찌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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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정보지"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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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항 광고


 사비냑의 작품은 상업적인 포스터와 순수예술의 경계 위에 있다. 그는 그 위에서 마치 줄타기를 하며 관객을 보고 즐기는 어릿광대와도 같다.
 그가 포스터를 만드는 주요한 기법 중 하나가 ‘석판화’ 기법이다. 석판화는 크레용 자국, 농담의 변화와 붓 터치가 그대로 재현되어 회화적인 느낌을 가장 잘 표현해내는 기법이다. 크레용 위에 수채를 덧바른 느낌이나 잉크 색이 번지는 듯한 샤갈 그림을 상상해보면 좋을 것이다. 이와 같이 샤비낙의 그림에서도 꽉 채워진 색면과 함께 붓칠이 남은 자국이 드러난다. 이 붓 자국과 칠에 따라 변하는 농담은 묘한 손맛을 남긴다. 이는 관람객에게 ‘순진함’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것, 순수성에 대한 노스텔지어를 안긴다. 이 향수는 후에 그림 속에 펄쳐지는 상황적 맥락, 유희의 맥락 속에서 흔히 말하는 ‘통수 치기’를 당하며 묘한 쾌감과 유쾌한 익살 속에 어우러진다.
 

  
#. 유희의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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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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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노동자의 셔츠"(셔츠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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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던로필로우"(메트릭스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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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인들은 광고를 사랑하지 않는다"


 회화적인 느낌이 ‘순수’에 대한 향수를 부른다면 만화적인 그림은 ‘동심’에 대한 향수를 부른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희화화 되어 나타난다. 사물과 동물들은 의인화되거나 사람이 반인반수의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들 중엔 풍자적인 그림 뿐 아니라 순전히 동심에 어울리는 해맑은 그림들도 있다. 그럼에도 이들 모두 사비냑의 유희의 맥락 속에 놓임으로서 엄청난 해학과 익살을 구성하게 된다. 만화적인 그림은 이러한 해학과 풍자를 유발시키는 주요한 장치이다. 이는 단순하고도 유쾌한 맥락을 구성한다. 뿐만 아니라 향수를 불러일으킴으로서 이것이 깨트러져 유발되는 익살의 효과를 증대시킨다. 작품 속 인물들의 만화적인 순진함과 동심 어린 이미지는 그들 가운데 전면에 놓인 상품 이미지로 인해 순식간에 해학적인 이미지가 된다. 그들이 감추는 속내와 어설픔이 모두 신랄하고도 우스꽝스럽게 까발려지는 것이다. 그의 풍자는 소비자와 생산자 쌍방향을 향해 모두 열려있다.
 
 포스터 속 인물들이 벌이는 웃음의 색은 다양하다. 사비냑이 자신의 맥락 속에 세우는 기업체와 사람들은 그의 세계를 구성하는 부분들이 된다. 따라서 이들을 향해서는 냉소가 아닌 연민과 애정이 결부된 비판을 행한다. 그가 관객들에게서 이끌고자 하는 웃음도 이와 같다. ‘모두가 소시민이다’라는 공통 이념 하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날카로운 비판을 행함과 함께 동질감을 느끼며 이로서 관심과 인정의 끈을 놓지 않게 되는 것이다. 풍자의 맥락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마주함의 기회를 주면서 자신과 상대, 서로에게 공정한 마음을 주게끔 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포스터는 대중을 비추는 거울이다.
 


#. '클래식'과 스토리텔링
 

 20세기 저명한 예술가들은 현재 ‘고전’의 반열에 올라있다. 맥락을 구성함으로서 풍자적 거리아트의 ‘클래식’으로 자리잡으며 현재에도 끊임없는 혁신을 시도하는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와 같이, 레이먼 사비냑도 포스터 아트에 있어 클래식의 반열에 있다. 그의 만화적이고 풍자적인 콘티나 문구는 프랑스 상품광고의 브랜드로 자리 잡으며 현재도 곳곳에서 보여진다.
 
 지금껏 봐온 것처럼 사비냑의 포스터가 유희적 맥락을 구성하며 스토리텔링의 힘을 발휘한다면 21세기의 포스터 아트는 단발적인, 하나의 시각적 인상 속에 메시지를 응축시켜 담아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포스터에서 뿐 아니라 모든 현대 예술의 경향에서도 나타난다. 하나의 단면에 모든 감각을 응축시키고자 하는 힘은 충격의 강도가 큰 만큼 정신적 피로감도 크다. 눈앞에서 쉴 새 없이 점멸하는 빛, 터트려지는 자극과 같다. 이러한 충격 요법은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심리적 요법과 통한다. 우리는 자신을 제한된 경험 속에 몰아넣고 가두는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어 결국엔 마비와 무기력 상태에 놓이게 된다. 지금의 예술은 현대인의 무기력과 소외를 재현함으로서 이를 극복하기 보다는 환기와 반복, 트라우마를 겪게 하는 것이다.
 이를 완화시키는 것이 바로 ‘맥락의 창출’과 ‘스토리텔링’이다. 생각의 회로와 구조를 쌓는 것은 사고와 감각이 능동적으로 진행하도록 하여 여백을 갖고 경험과의 거리를 조절할 수 있게끔 한다. 맥락의 제공을 통해 관객에게 수용과 비판 모두를 포괄하는 주체적인 맥락을 창출하게끔 하는 것이다. 현대인에게는 이러한 과정의 훈련이 필요하다. 이는 레이먼 사비냑이 구성한 맥락과 같이 우리에게 향수를 일으키고 일종의 치유를 행한다.
 


#. 닭과 투르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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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끗한 프랑스를 유지해라!"


 사비냑의 그림에는 ‘닭’이 자주 등장한다. 닭은 포스터 전면에서 프랑스의 국기 색으로 칠해진 주인공으로 등장할 뿐 아니라 구석 곳곳에도 닭벼슬과 작은 몸체가 튀어나와 있다. 닭은 프랑스 민족의 상징이다. 새벽을 알리며 태양을 맞는 닭은 유럽에서 길한 존재로 여겨진다. 특히 프랑스인들은 라틴어 ‘갈루스’가 닭과 갈리아인을 동시에 의미하기에 더욱 애착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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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주 등장하는 또하나의 소재는 프랑스의 항구도시 ‘투르빌’이다. 투르빌은 사비냑이 은퇴 후 머무른 도시로서, ‘사비냑의 도시’라 불릴 정도로 그의 작품의 주요한 원천이자 전시장이 되었다. 투르빌의 해변가와 갈매기, 상점가는 사비냑이 그린 축제 포스터의 단골 소재였다. 그는 자신의 작품들을 트루빌 몬테벨로 시립 미술관에 기증했으며, 트루빌의 거리, 가게와 집들 곳곳에 그의 포스터가 걸려있다.





이미지 출처- 구글
 
[최인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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