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성 문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문화 전반]

미국의 대표적 여성 시인 실비아 플라스, 그녀의 삶.
글 입력 2015.07.16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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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lvia Plath
1932년 10월 27일 - 1963년 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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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비아 플라스와 그녀의 남편 테드 휴즈


그녀는 1960년 '거대한 조각상'으로 데뷔하였으며
1982년 퓰리처상을 수상하였다. 
1963년 2월 11일 삼십대라는 젊은 나이에
오븐 속에 머리를 넣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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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이란 무엇일까. 영화가 끝나고 내게 가장 먼저 다가온 질문이다. 문학이 무엇이기에 실비아가 죽음을 택하고, 젊은 시인들이 잠도 자지 않고 모여 시를 읊고, 절망하고 좌절하는 걸까. 영화는 실비아라는 젊은 여성 시인의 일대기를 따르고 있다. 『토탈 이클립스』, 『로윙 윈드』등 남성시인의 전기를 다룬 영화만 봤던 나에게는 같은 여성 문인의 일생을 다룬 영화가 흥미롭고 새롭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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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비아』는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점에서부터 다른 작품들과 확연히 달랐다. 대체적으로 환경적, 가정적, 내면적 요인으로 인해 갈등을 겪는 남성 문학가들과 달리 실비아는 그녀 자신이 가진 여성이라는 성 때문에 작품 내내 갈등에 휩싸인다. 여자는 가정과 육아에만 전념해야하고, 자신의 분노나 욕구를 표출하지 말아야한다는 당시의 억압적인 풍조 속에서 실비아는 다른 여자들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지만 결국 사회적인 강요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운의 결말을 맺는다. 이런 결말을 맺기까지 그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그녀의 남편이자 뛰어난 실력을 가진 남성시인 테드다. 잡지에 실린 그의 시를 처음 접한 실비아는 실물로 만난 테드의 매력적인 외모와 언변에 첫눈에 반해 정열적인 사랑을 시작하고, 둘은 서로 시를 읊고 함께 고뇌하며 연인으로서의 생활을 이어나간다. 둘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과거에는 요즈음보다 문학이 가지는 낭만적인 면모가 많이 부각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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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전반적으로 실비아는 성공한 여성으로서 당당하고 자신의 일에 뛰어난 열정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중간 중간 글이 잘 써지지 않아 고뇌하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연인인 테드가 있어 그렇게 절망적으로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테드는 달랐다. 그의 바람기가 다분한 모습은 신혼초반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실비아가 글이 잘 써지지 않아 스트레스가 쌓여감에 따라 테드가 밖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육아와 가사를 전부 도맡아 해야 했던 실비아의 스트레스는 매우 심각했을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실비아의 선택에 의문이 들고 안타까운 점도 있었다. 테드와 이혼한 실비아가 시간이 흘러 결국 다시 테드를 용서하고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실비아 자신을 파국으로 치닫게 만든 그 선택이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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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테드와 이혼을 하고, 혼자 두 아이를 키웠을 때 그녀가 쓴 뛰어난 작품들을 보며 결국 예술의 원천은 고통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실비아의 복잡하고 섬세한 감정을 고통을 통해 문학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소재가 없어 고민하던 실비아에게 테드가 너 자신에 대해서 쓰면 되지 않느냐 라고 한 말이 깊게 와 닿았던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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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에 대해 반복적으로 나오는 얘기, 영화 『실비아』가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는 얘기, 즉 모든 것은 나 자신에게서 시작된다는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글을 마친다.   

 


아빠


실비아 플라스


이젠 안돼요, 더 이상은
안될 거예요. 검은 구두
전 그걸 삼십 년간이나 발처럼
신고 다녔어요. 초라하고 창백한 얼굴로.
감히 숨 한 번 쉬지도 재채기조차 못하며.

아빠, 전 아빠를 죽여야만 했었습니다.
그래볼 새도 없이 돌아가셨기 때문에요-
대리석처럼 무겁고, 神으로 가득찬 푸대자루,
샌프란시스코의 물개와
아름다운 노오쎄트 앞바다로

강낭콩 같은 초록빛을 쏟아내는
변덕스러운 대서양의 갑처럼 커다란
잿빛 발가락을 하나 가진 무시무시한 조상.

전 아빠를 되찾으려고 기도드리곤 했답니다.
아, 아빠.

전쟁, 전쟁, 전쟁의
롤러로 납작하게 밀린
폴란드의 도시에서, 독일어로.
하지만 그런 이름의 도시는 흔하더군요.
제 폴란드 친구는

그런 도시가 일이십 개는 있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전 아빠가 어디에 발을 디디고,
뿌리를 내렸는지 말할 수가 없었어요.
전 결코 아빠에게 말할 수가 없었어요.
혀가 턱에 붙어 버렸거든요.

혀는 가시철조망의 덫에 달라붙어 버렸어요.
전, 전, 전, 전,
전 말할 수가 없었어요.
전 독일 사람은 죄다 아빤 줄 알았어요.
그리고 독일어를 음탕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를 유태인처럼 칙칙폭폭 실어가는
기관차, 기관차.
유태인처럼 다카우, 아우슈비츠, 벨젠으로.
전 유태인처럼 말하기 시작했어요.
전 유태인인지도 모르겠어요.

티롤의 눈, 비엔나의 맑은 맥주는
아주 순수한 것도, 진짜도 아니에요.
제 집시系의 선조 할머니와 저의 섬뜩한 운명
그리고 저의 타로 카드 한 벌, 타로 카드 한 벌로 봐서
전 조금은 유태인일 거예요.

전 언제나 아빠를 두려워했어요
아빠의 독일 空軍, 아빠의 딱딱한 말투,
그리고 아빠의 말쑥한 콧수염
또 아리안족의 밝은 하늘색 눈,
기갑부대원, 기갑부대원, 아, 아빠-

神이 아니라, 너무 검은색이어서
어떤 하늘도 비걱거리며 뚫고 들어올 수 없는 十字章
어떤 여자든 파시스트를 숭배한답니다.
얼굴을 짓밟은 장화, 이 짐승
아빠 같은 짐승의 야수 같은 마음을.

아빠, 제가 가진 사진 속에선
黑板 앞에 서 계시는군요.
발 대신 턱이 갈라져 있지만
그렇다고 악마가 아닌 건 아니에요, 아니,
내 예쁜 빠알간 심장을 둘로 쪼개버린

새까만 남자가 아닌 건 아니에요.
그들이 아빠를 묻었을 때 전 열 살이었어요.
스무 살 땐 죽어서
아빠께 돌아가려고, 돌아가려고, 돌아가 보려고 했어요.
전 뼈라도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저를 침낭에서 끌어내
떨어지지 않게 아교로 붙여버렸어요.
그리고 나니 전 제가 해야 할 일을 알게 되었어요.
전 아빠를 본받기 시작했어요.
고문대와 나사못을 사랑하고

'나의 투쟁'의 표정을 지닌 검은 곳의 남자를.
그리고 저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말했어요.
그래서, 아빠, 이제 겨우 끝났어요.
검은 전화기가 뿌리째 뽑혀져
목소리가 기어나오질 못하는군요.

만일 제가 한 남자를 죽였다면, 전 둘을 죽인 셈이에요.
자기가 아빠라고 하며, 내 피를
일년 동안 빨아마신 흡혈귀.
아니, 사실은 칠년만이지만요.
아빠, 이젠 누우셔도 돼요.

아빠의 살찐 검은 심장에 말뚝이 박혔어요.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조금도 아빠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춤추면서 아빠를 짓밟고 있어요.
그들은 그것이 아빠라는 걸 언제나 알고 있었어요.
아빠, 아빠, 이 개자식. 이제 끝났어.

 

 


[김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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