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400번의 포옹이 필요한 소년 [시각예술]

글 입력 2015.04.3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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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는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려면 400번의 구타를 당해야 한다는 속담이 있다. 구타라는 문맥 그대로의 말은 잔인하게 들려온다. 마치 어린아이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 하는 의미처럼 느껴진다. 채찍질도 필요하겠지만 진정으로 성장하는 어린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400번의 사랑과 관심이 아닐까. 여기 400번의 포옹이 필요한 소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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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번의 구타> (1959)
감독 프랑수아 트뤼포
출연 장 피에르 레오, 클레어 모리어, 알베르 레미
• 1959년 칸 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
• 1959년 뉴욕영화비평가협회 최우수외국어영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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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학교 그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드와넬은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이기적인 엄마와 새 아빠 밑에서 살아가고 있는 초등학생이다. 드와넬에 관련한 부모님의 대화는 드와넬이 그들에게 귀찮고 쓸모없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드와넬은 집에서 매일 식탁을 차리고, 밤마다 쓰레기를 버리며 화장실 통로에서 잠을 잔다. 학교에서 반항적이고 장난스러운 행동과 달리 집에서는 부모님의 말을 잘 따르는 드와넬의 모습은 마치 부모님이 아닌 모르는 사람들의 집에 얹혀사는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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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도 마찬가지다. 학교는 교사들의 폭력과 권위주의로 가득 차 있다. 드와넬은 학교에 지각하자, 친구 르네의 꼬드김으로 그 날 하루를 극장과 오락실, 놀이기구를 오가며 신나게 놀게 된다. 그리고 다음 날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엄마가 돌아가셔서 학교를 나오지 못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이 거짓말은 금방 들통이 나게 되고 드와넬은 친구들 앞에서 새 아빠에게 뺨을 맞게 된다. 집에서 부모님과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드와넬은 가출을 결심한다.

"지겨워 난 내 인생을 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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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소에서 잠을 자거나 거리에서 몰래 우유를 훔쳐 먹으며 하루를 보낸 드와넬은 걱정으로 가득한 엄마와 다시 학교에서 조우하게 되고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엄마는 드와넬에게 관심을 보이며, 일을 하고 싶어 하는 드와넬에게 공부의 중요성을 깨우치고, 불어 작문 시험에서 5등 안에 들면 1000프랑을 주겠다는 약속도 한다. 드와넬은 발자크에게 감명 받게 되고, 존경하는 마음에 그를 위해 촛불을 켠다. 감수성 가득한 어린 아이같은 드와넬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드와넬은 불어 작문 시험에서 발자크를 표절했다고 선생님에게 혼이 나게 되고, 드와넬을 두둔하던 르네와 함께 학교와 집을 나온다. 돈이 필요했던 르네와 드와넬은 새 아빠의 회사에서 타자기를 훔쳤다가 가져다 놓으면서 경비에게 적발되고, 드와넬은 경찰서와 감화원으로 가게 된다. 새 아빠는 경찰서에서 폭력을 쓰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위선적인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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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화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작은 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드와넬이 흘리는 두려움의 눈물은 시종일관 그 어떤 일에도 어른처럼 담담히 무표정을 유지했던 드와넬의 깊은 내면 속 어린아이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또한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회에 대한 원망도 느껴진다. 감화원은 밖의 사회보다 더욱 억압적이고 폭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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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와넬은 감화원에서 상담을 받는데, 이 장면은 카메라 정면에서 인터뷰를 하는 느낌으로 다큐멘터리적 표현을 보여주며 고백적이다. 상담의 내용에서 드와넬의 심리변화와 살아온 인생을 알 수 있는데, 아픈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히 대답하는 모습은 마치 초등학생이 아닌 80년을 살아온 늙은 노인이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하는 듯하다. 어린 시절의 불행한 기억들이 드와넬을 그렇게 성장시킨 것이다. 드와넬은 면회 온 엄마를 만나고, 엄마는 자신의 외도사실을 드와넬이 사람들에게 말했다고 생각하며 드와넬에게 절망만 준다. 드와넬에게는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어진 것이다. 

"가끔은 거짓말을 하죠. 제가 진실을 말해도 믿지 않으실 거예요. 그러니까 거짓말하는 게 낫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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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갈 곳 없는, 사랑에 굶주린 외로운 소년 앙뜨완 드와넬
드와넬은 결국 감화원을 탈출해 그토록 보고 싶었던 바다를 향해 달려간다. 카메라는 수평적으로 달리는 드와넬의 모습을 좇아가는데, 이러한 카메라의 움직임은 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관객에게 불안감을 준다. 영화는 바다에 당도한 드와넬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한 채 스톱모션으로 끝이 나는데, 이러한 열린 결말은 관객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마지막 드와넬의 눈빛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바다까지 왔으니, 자신이 가야할 곳을 알려달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자신은 이러한 삶을 이해해주길 바라며 당신들은 어떠하냐고 반문하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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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와 트뤼포,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400번의 구타>를 연출한 프랑수와 트뤼포는 미혼모 밑에서 태어나 엄마의 사랑을 별로 받지 못하며 자랐다. 그는 매우 반항적이고 문제 많은 청소년기를 보냈는데, 어린 나이에 가출해 거리를 떠돌기도 하고 미성년자 범죄센터에 들어가기도 했다. 트뤼포는 이러한 외로운 어린 시절을 영화를 통해 극복했다. 그는 집에서 매일 영화3편을 보고 책을 미친 듯이 읽었다. 그러다 트뤼포는 자신에게 있어 삶의 정신적 문화적 스승이며 아버지 같은 존재인 앙드레 바쟁을 만나 영화계에 들어오게 된다. <400번의 구타>는 트뤼포의 자전적 색채가 짙은 것으로 유명한데, 영화 속 주인공 드와넬은 이런 트뤼포의 어린 시절을 자화상처럼 매우 닮아있다. 그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방황하며 도둑질, 가출, 비행을 일삼는 극 중 드와넬의 모습은 “학교에서보다 거리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라는 트뤼포의 말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또한 트뤼포는 어린아이의 시각을 통해 순수한 어린아이를 이렇게 사회 밖으로 내몰 수밖에 없었던 어른들의 부정적인 면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했으며, 일부러 주인공에게 무표정을 유지하게 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주인공과 동일시되는 것을 막고 관객들을 관찰자로 남게 하여 비판적 시선을 견지하도록 했다. 이렇게 거짓과 작의적인 묘사 없이 사실적인 섬세한 접근을 통해 주제를 들어내고자 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에펠탑의 부분들이 계속해서 보이며 파리의 거리를 부드럽게 따라가는 트레킹 숏은 파리에 특별한 애정을 가졌던 트뤼포의 삶을 나타낸다.
마지막으로 <400번의 구타>에서 드와넬의 가족이 고몽극장에서 ‘파리는 우리의 것’을 관람하고는 대사들을 따라하며 즐거워하는 장면들이 있는데, 영화가 가족들에게 행복과 평화를 잠시 동안이라도 가져온다는 점에서 트뤼포가 생각한 영화의 긍정적인 면과 트뤼포의 영화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단계는 같은 영화를 두번 보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영화평을 쓰는 것이고,
세 번째는 영화를 직접 만드는 것이다. 그 이상은 없다.

<400번의 구타> Trailer
 

<400번의 구타> 드와넬의 상담 장면, 드와넬의 심리를 보여준다.

감독 프랑수와 트뤼포의 삶을 닮은 혹은 담은 앙투안 드와넬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아래의 순서에 따라 영화를 감상해보길 추천한다. <400번의 구타> 속 감독의 페르소나인 장 피에르 레오가 계속해서 주연하며 시간의 흐름 속 그의 변화도 볼 수 있다. 

<앙투안과 콜레트> (1962)
<스무살의 사랑> (1962)
<훔친 키스> (1968)
<부부의 거처> (1970)
<사랑의 도피>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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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김호영,『프랑스 영화의 이해』, 연극과 인간,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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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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