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1년여 만에 대학로를 찾았다. 바로 연극을 보기 위해서. 아트인사이트 활동을 하면서 하는 첫 문화초대! 간만의 문화생활로 기쁘기도 했지만 리뷰를 써야한다는 임무감 때문에 한편으로는 부담도 살짝 있었다. 연극 시작 시간은 여덟시. 조밀하게 몰려있는 건물들 덕에 길을 금방 찾아 생각보다 더 여유롭게 도착했다. 일단 티켓을 받고 마냥 기다리기는 그래서 비가 덜 마른 대학로 거리를 걸었다. 평상시에는 보기 힘든 독특한 이름과 디자인의 가게들과 건물모양들이 여기가 왜 대학로인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30분을 넘게 걸었어도 남는 시간에 조금 대기하다가 10분 전 입장하였고, 난생 처음으로 연극의 맨 앞자리에 앉았다. 대략 7번쯤 연극을 보았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런 지 살짝 낯설기도 했지만 이내 적응했다.
이번 염쟁이는 ‘신현종’ 님 이었다.

1. 연극의 묘미
너무나도 오랜만에 연극을 봐서 그런 지 바로 눈앞에서 어떤 사람이 혼자 하는 과장스런 몸짓에 잠깐 동안은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정말 잠깐뿐이었다. 유씨를 연기한 연기자분의 능력이 컸다. 사실 내가 잠깐이나마 거부감이 들었던 건 여태 내가 겪었던 문화생활들은 무엇인가를 거쳐서 내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연극처럼 직접적으로 바로 닿지 않았다. 영화가 그랬다. 내용 상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영화와 내 사이엔 꽤 먼 거리와 그리고 우리는 다른 세계에 있는 거라고 단적으로 보여주는 스크린이 있었다. 하지만 염쟁이 유씨는 무대와 관객석 사이에 그 흔한 턱조차 없었다. 같은 눈높이로 연기자의 흐르는 땀이며 튀는 침 도 볼 수 있다. 늘 매개체로 전해져왔던 나날을 겪다가 오늘 나는 문화충격을 잠깐 받은 거다. 충격은 잠깐일 뿐 곧 익숙해지고 좋았다. 음원보다 콘서트에서의 울림에 열광하는 것처럼 연극의 묘미란 이런 것이다. 연기자의 호흡을 실제 현장에서 느낄 수 있다. 염쟁이 유씨는 그 묘미가 더욱 잘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2. 삶은 죽음까지 포함한다.
스포가 될까 구체적으로 쓰진 못하겠지만 줄거리는 이렇다. 유씨가 마지막 염을 치루면서 그가 관객에게 전하는 이야기다. 각양각색의 염 경험, 염을 하게 된 계기, 염의 과정. 이렇게 한 시간 반 정도를 쉴 틈 없이 달려간다. 물론 연기자는 관객을 제외하면 유씨 한 명뿐. 정말 대단하다. 빠르고 엄청난 대사분량 하며 연기가 아닌 듯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염 과정. 10년간의 내공을 감안할 수 있겠지만 놀라운 건 사실이다.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지켜본 유씨는 우리에게 죽음에 대해, 삶에 대해 말해준다. 사람의 인생을 따지자면 잘 차린 음식 후에 완벽한 설거지가 필요하듯이 죽음도 잘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도 삶의 한 부분이기에 염의 과정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뜻이 담겨있고 경건하다. 수시, 칠성판, 소렴, 대렴. 난생 처음 듣고 알게 된 염의 용어들이었다. 그 뜻에서 죽음이란 것에 느꼈던 막연한 공포도 전보단 조금 더 고결하게 보였고, 또 사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시체보다 산 것이 무섭다고, 죽는 것 보다 잘 사는 것이 더 어렵다는 그의 말에 시간이 얼마나 지나면 그 말에 완전히 공감될까 생각도 들며 조금이나마 공감하는 스스로에게 씁쓸했다.

3. 관객이 만드는 연극 염쟁이유씨
연극 관객의 미덕은 영화관에서처럼 그저 조용히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극과 현실을 넘나드는 연기자에게 우리는 꽤 능동적이어야 한다. 연극을 많이 보진 않았지만 내가 봤던 여태 모든 연극이 그랬다. 중간에 퀴즈를 내거나 중간 중간 말을 걸기도 하고. 염쟁이 유씨도 중반까진 똑같았다. 하지만 굳이 진하게 관객이 만드는 염쟁이 연극 유씨라고 쓴 것은 단순 웃음 선사용으로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선을 넘어선다. 다른 회차도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미리 심어둔 X맨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관객석의 ‘김선생’과 ‘박형사’는 장난 아니었다. 그분들이 참여할 때 제일 크게 웃었던 것 같다. 염쟁이 유씨의 관객은 극의 끝까지 참여한다. 정말 끝까지다. 서로 처음 보는 4명의 관객이 무대에 나와 연기하는 모습을 볼 줄 야. 향을 피우고 절을 하는 것 까지 볼 줄 야. 정말 상상도 못했다.

4.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은 것.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남의 억울한 죽음을 구경거리로 삼는 사람은 그들의 죽음도 억울할 것이다‘ 라고 대염 전 유씨가 말한 장면이었다. 요즘 우리 사회의 모습에 너무나도 딱 들어맞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타인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우리는 위로하지 않을 자격도 있지만 비난할 자격도 없다. 어떤 누군가들이 깨달았으면 하는 부분이었다.
또한 염쟁이 유씨는 내가 보았던 연극 중 가장 무대 장치가 적었던 듯하다. 그 만큼 연기자의 역할이 크단 것이다. 같은 한 사람이 별다른 큰 액션 없이 말만 하는데도 질리지가 않는다.
유씨는 시종일관 유쾌하게 관객을 웃겨줬지만 유씨가 전하고자 하는 부분에서는 어떤 순간보다 진지하고 경건했다. 작고 덤덤하게 뱉는 그 말이 하나도 부자연스럽지 않고 더욱 집중하도록 했다. 일전에 보았던 어떤 연극과 달리 전혀 어설프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지만 그럴 수 있는 연극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성공적인 첫 문화초대였다. 퀴즈를 못 맞춰서 좀 아쉽긴 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좋았던 연극에 대해 곱씹어 생각해보고 왜 나는 인천에 살까 한탄도 했다. 좋은 영화, 좋은 책을 접하고 난 후 느끼는 감정을 느꼈다. 뭔가 뿌듯하고 긍정적이게 까지 하는 기운. 염쟁이 유씨는 그 기분을 꽤 크게 느끼게 해주는 좋은 연극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