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광주유스퀘어터미널, 만남의 첫 인상 [문화 공간]

글 입력 2015.03.25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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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광주 유스퀘어 터미널

GwangJu U-Squre: 만남의 첫인상은 두려움인지 떨림인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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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right 유스퀘어터미널


 


 A는 옷장 앞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좋은 첫인상을 심어줄 복장을 옷장에서 건져내 보려 했지만 사실 그다지 좋다고는 못할 패션센스에 이거든 저거든 매한가지로 보였다. A는 최대한 깔끔한 차림을 하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여동생이 남자는 깔끔하기만 하면 90%는 먹고 들어가는 거야.라고 버릇처럼 한 말을 믿기로 한 것이다. 적어도 이런 면에서는 스스로보다 동생이 훨씬 나았다.




며칠 전 삼촌에게서 연락이 왔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삼촌은 대뜸 시간 좀 내줘, 하고 말했다.
이번에 학교 간 교류활동으로 상대방 학교의 학생이 내려오기로 했는데 날짜를 헷갈리는 바람에 답사 일정과 시간이 꼬여버렸다고 한다. 이틀만 데리고 다니면서 광주 구경만 시켜주면 된다고 하는 삼촌에게 말은 쉽네. 하고 거절하려고 했다. 사실 스무 해를 넘게 살아온 광주라지만, 광주 구경이라는 말에 어디를 데리고 가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든 것이다. 그렇게 전화를 막 끊으려는데

"용돈!...줄게 조카님."
".....얼마?"
"일당 20! 아...아니 30! 대신 이틀간 교통비랑 식비는 네가 전담하고."

30이면 2일에 60이었다. 아무리 교통비와 식비가 든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는 금액이었다.

"콜!  그래서, 그쪽 번호가 뭐라고?"
"톡으로 날려주마. 고~마운 조카님아."
"응응 사랑한다고? 나도 사랑해요 삼촌."

A는 전화를 끊고 톡으로 날아온 번호를 확인했다. 방학 중 아르바이트를 쉬는 바람에 돈이 궁했는데 잘 됐다 싶었다.
'이참에 제 고향에 어떤 곳이 있었는지 되새기는 것도 나쁘지 않지.' 걱정은 어느새 타협이 되어 있었다.




슬슬 나가볼까 하고 운동화를 구겨신는 A를 보고 거실 소파에 퍼질러져 있던 동생이 건들거리며 말을 걸었다.
"허얼~ 그 묘령의 여인 분 만나러 가쒜여~? 꽃 단장 하셨세요~?"
건달 같은 말투 보게. 가끔 자신 보다 더 아저씨 같은 여동생을 보며 A는 저 녀석이 예승씨 절반만 좀 닮았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래, 번호를 받아 코코아 톡을 통해 이야기를 나눈 상대방은 말투도 사근사근한 게 꼭 예쁘고 지적인 여자 일 것 같아 솔직히 기대가 좀 됐다. 흑심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A다.
"여자는 다~ 똑같아요. 문자로는 파악할 수 없다니까?"
동생은 현관까지 쫓아 나와 끝까지 깐족거렸다.
"아오 시끄러. 갔다 온다."
A는 늘상 신던 운동화를 구겨신었다. 그때 동생이 툭 던지듯 말했다.
"그거 말고 그 옆에 거 신어."
"왜?"
"밖에 비올 거 같아."
손으로 뒤를 가리키는 동생의 어깨너머 베란다로 흐려진 하늘이 보였다.



A는 버스 창으로 내릴 정류장을 확인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정류장답게 버스도 사람도 많이 모여있었다.
광주는 버스 노선이 잘 되어 있어서 구석구석 버스가 가지 않는 곳이 없었고 특히 터미널은 대부분의 버스가 지나는 정류장이라 오기가 편했다. 우르르 내리는 사람들에 섞여 막 버스에서 내리는 A의 위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신발은 바꿔 신었으면서 우산은 왜 안 챙겼는지. 멍청한 짓을 했다며, A는 유스퀘어 광장을 향해 뛰었다.

'편의점에서 비닐우산이라도 사야겠다.'​
건물 내 편의점으로 향하는 방향을 트는 A의 옆으로 막 야외무대를 준비 중이던 사람들이 급히 음향기기와 전자기기들에 천을 덧씌우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비는 그치지 않을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비로 행사 시간이 조정되었다는 방송이 나왔다.
편의점에서 우산을 사고도 시간이 넉넉하게 남아 A는 대합실 의자에 걸터앉았다.
'예전에는 이런 의자도 없었던 것 같은데.'

지금이야 국내 최대 규모의 단일 터미널이라던지, 이런저런 문화시설에 쇼핑몰까지 연결된 멀티플랙스라고 하지만 그가 기억하는 터미널의 첫 기억은 꼭 오늘 같이 비 오는 날의 낡은 승하차 장이었다. 당시 A의 외할머니는 서울에 살고 계셨고 여름방학이면 할머니 집에 한 달 정도 지내러 갔다. 말하자면 역 귀성이었는데 여름이다 보니 비가 자주 왔었다.

70-80년대에 지어진 듯한 건물은 여기저기 낡고 갈라져 회색의 벽이 어두침침한 인상이었다. 버스가 들어와 정차하는 바로 그 앞까지 빼곡히 차지한 식당들에서는 훈김과 함께 음식 냄새가 섞여 나왔었다. 그 안에 가만히 서 있으면 순식간에 시간이 몇십 년쯤 뒷걸음친 것 같은 느낌에 휩싸일 수 있었는데, 말 그대로 아주 먼 곳에 도착한 기분. 혹은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밀려 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터미널의 인상은 A에게 곧 여행의 인상이 되었다. 두려움인지 설렘인지 구분이 안되는 기분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렇게 터미널은 고즈넉하고 먹먹한 인상이었던 까닭에 낡은 터미널이 이렇게 크고 깨끗하게 변했을 땐 깜짝 놀랐던 것 같다. 전혀 다른 곳인 것 같았다. 물론 비가 오면 언제든 낡고 칙칙한 벽으로 돌아가지만 말이다.
기억은 감각에 담기는 모양이다. 비 냄새, 소리, 뿌연 시야의 그 묘한 감각. 그리고 그 감각을 아우른 공간은 어린 시절의 느낌을 그대로 불러일으킨다. 비 냄새도 빗소리도 풍경도 모두 한데 포함되어 있다.




그때, 두려움인지 설렘인지 구분되지 않는 떨림으로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을 때, 어머니가 해주셨던 이야기가 있다. 아마 제 아들이 터미널에 무서운 인상을 받았다 생각하신 모양이다. 옛날이야기를 하듯 풀어낸 말에 따르면 유스퀘어를 단장한 금호고속의 전신이 광주택시였다고 한다. 당시에 검은 자동차는 아주 희귀한 대상이었고, 광주의 젊은 신혼부부가 결혼식을 치르고 그 검은 택시를 타고 광주를 한 바퀴 행진하는 건 반가운 볼거리이자 신혼부부의 로망이었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신혼이라. 시작의 설렘, 흥분, 두려움, 기쁨을 책임졌다는 점에서 여행과 많이 닮아있지 않은가.
광주택시가 여행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고속버스 회사로 성장한 것은 우연인지 모르지만 꽤 어울리는 일이다.

버스 시간이 가까워졌다.
코코아 톡에서 10분 뒤 도착이라는 답이 왔다. 

A는 막 정차장에 들어오는 버스를 보았다. 서울 11시 25분 출발. 오늘의 일행이 타고 있는 버스다.
그동안 코코아 톡만 주야장천 하다 직접 만날 생각을 하니 지금껏 조용하던 심장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기대를 많이 하면 실망한다 실망한다 외워봐도 이미 기대는 잔뜩 하고 있다.

'진짜 첫 만남이라는 기분이 팍팍 드는 구만.'
A는 땀이 찬 손바닥을 바지에 비볐다. 멀리서 보스턴 백을 매고 모자를 눌러쓴 여자가 A를 향해 아는 척을 하였다.
"A씨?"

"........아, 네!"

보고 있나 동생아?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A의 기대가 보답을 받는 순간이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예승 씨죠?"
A는 조금 흥분하여, 활기차게 대답했다. 모자를 쓴 여자는 살짝 놀란 듯하다가 웃었다.
장난스러운 표정에 A는 제가 뭔갈 잘 못했나? 주춤했다.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윤지수라고 해요."
"네?"
"안녕하세요"

얼떨떨한 A에게 불쑥, 어떤 키가 큰 남자가 인사를 건넸다.
예승, 아니 지수 씨의 한 걸음 뒤에 쫓아오던 남자였는데 방금 전까지 전혀 인식을 못하고 있던 상대의 인사에 A는 당황했다.

"네? 아... 네 안녕하세요. 누구...?"

"코코아 톡으로 이야기 나눴던 서예승입니다."

키도 크고 얼굴도 훈훈한 남자를 보고 갑자기 A는 심장이 벌렁벌렁 떨려오는 걸 느꼈다.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A의 머릿속에 그동안 조심스럽게 날렸던 톡들이 스쳐 지나갔다.
여자를 상대로 상냥하다거나 친절한 말은 별로 해본 적 없던 그가 신경 써가며 보냈던 나름 다리달달한 문장들 말이다.

A가 두근거리며 보냈던 문자를 눈앞의 멀대 같은 남자가 받았다.

부끄러움인지 당혹감인지 분노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이내 억울함으로까지 번졌다.
그래, 첫 만남은 누가 뭐라고 해도 떨림이 어울리는 법인 모양이다.



어떤 것이든 시작과 끝이 있다.
이 단순한 진리는 어떤 형태로든 누구에게나, 어느 것에나 반드시 찾아온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또 시작과 끝은 아주 강렬한 경험이라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는데 내 경우에는 특히 '시작'이라는 것에 상당히 강한 떨림을 인상으로 지닌다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위의 이야기는 그런 개인적인 감상이 들어간 짧은 이야기로 터미널에 대한 정보와 섞어서 풀이해보려 한 것이다. 의도한 대로 표현이 됐는지는 모르겠다.


오늘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누구나 다른 느낌을 가지겠지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시작과 끝. 그것들을 품은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두들 설레었던 첫 여행의 기억을 떠올렸다면 좋겠다.

이야기의 배경으로 삼은 터미널은 광주광역시. 그러니까 빛고을(광주는 빛 光을 쓴다)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상당수 시작과 끝을 맞이하였을 유스퀘어 터미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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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right유스퀘어터미널 

 

 

유스퀘어는 당신의 광장, 젊음의 광장 U-Square 라는 캐치프래이즈로 당신(you)과 젊음(youth)를 한데 합쳐 만들어진 이름이다. 단일 규모로는 국내 최대인 터미널인데, 이름에서 엿 볼 수 있듯 복합 문화 공간을 의도했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 시설이 있다.
연면적 2만 5천121.6㎡에 6층 규모로 금호아트홀과 동산아트홀, CGV 터미널점(9개관)을 갖추었으며 야외 공연장도 있다.

​그리하여 확실히 이전보다 터미널의 용도가 넓어졌다. 야외 공연장에서는 이벤트나 공연도 종종 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유스퀘어를 이용하기 위해 모이고 있다. 사람들은 데이트를 하러, 여행을 떠나러, 반가운 이를 맞이하러 유스퀘어로 온다. 사람들의 만남과 이별을 책임지는 장소로서 '문화'를 제공하겠다는 유스퀘어의 노력은 긍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스퀘어 건물은 광주의 랜드마크이자, 문화복합시설로 완전히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광주 시내버스노선 대부분이 지나는 요지라고 하더라도, 당장 유스퀘어 건물 외엔 주변에 연계하여 즐길만한 시설이 보이지 않는 점이 아쉽다.


만약 주변 일대까지도 연계가 되어 독특한 문화 구역이 형성되면 터미널이 가진 의미가 다른 경험들과 덧붙어 증폭될 수 있지 않을까. 터미널 자체가 어떤 문화 거리로서 작용하는 것이다. 우리가 '문화 거리'(이를테면 우리가 북촌 한옥마을거리라던지 이태원 골목길같이  특색 있다고 여기는 '거리의 독특한 문화 구역'을 의미 한다.)를 명명할 때에는 랜드마크 격인 장소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일대까지 하나의 느낌으로 묶어서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고속도로로 나가야 하는 대형 도로가 필요하니 그 주변에 어떤 문화 시설들을 확충하는 건 어불성설인지 모른다.


그런데 굳이 유스퀘어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광주 시설물들은 한 곳에 밀집되어 있지 않고 지역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터미널은 도로의 필요성 때문이라고 하지만, 다른 시설은 왜 드문드문 한 것인지 아쉬울 따름이다. 이것이 어떤 문화시설이 자리한 장소가 특색 있는 문화 구역으로써 폭발력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의도된 목적에 따라 한 곳에 모아두면 시너지 효과가 좋겠지만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은 절대 아닐 테니 우리는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서 광주를 돌아다녀야 한다.

한 가지 반가운 사실은 광주는 버스노선이 매우 잘 되어 있어서 버스를 이용한 광주투어가 까다롭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버스 환승 한번 (많으면  두번) 이면 못 가는 데가 없을지 모른다.(그래선지 광주 지하철 수익률이 매우 좋지 않다.)
그러니 우리는 생각을 전환하여 버스로 광주 구석구석을 도는 버스 '투어'를 즐길 수 있을 거라, 그것이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라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기로 하자.

애써 위안하는 듯한 마무리에다 너무 멀리 가버렸다. 다시 유스퀘어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아무리 주변 연계 시설이 잘 꾸며져 있지 않더라도 분명 유스퀘어터미널은 '터미널'로서 모두에게 충분히 여정의 시작과 끝을 다채롭게 선물할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이다. 더더군다나 자체적으로 문화의 제공, 진흥을 위해 노력하며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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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광주택시로 이용되었던 포드자동차다 copyright유스퀘어터미널

 


시작과 끝을 동시에 품고 있다는 점에서 터미널은 아주 흥미로운 장소이다. 끊임없이 오고 가는 사람의 삶에서 새로운 경험을 시작하는 장소이자 돌아올 장소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도달할 곳 (나아가야 할 곳), 혹은 돌아가야 할 곳이라고 부르는 종착역에 가지는 묘한 감상을 터미널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런 복합적인 공간은 그야말로 '문화'와 어울리는 장소 일 것이다. 여행은 종종 사람의 삶에 비유가 되고, 그 여행을 책임지는 것이 터미널 아닌가. 사람의 삶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터미널은 문화를 창출하는 공간이 된다. 유스퀘어터미널이 지금도 광주를 오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설렘이자 추억의 얼굴이 되듯 앞으로도 많은 기억의 장소가 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내 경우처럼 누군가의 시작과 끝이 되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금호고속터미널(유스퀘어터미널) 홈페이지 주소

http://www.usquare.co.kr/index.asp





[이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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