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미언 허스트는 영국의 현대예술가로, 토막낸 동물의 시체를 유리상자 안에 넣어서 전시하는 그로테스크한 작품들을 주로 선보이고 있다. 그는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현대미술 작가다. 발표한 작품마다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면서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데, 그의 작품들을 보면 가히 충격적이다. 영국 브리스틀 출생으로 리즈에서 성장하며 1986년 ~ 1989년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 졸업 후 골드스미스 대학 학생들과 함께 기획한 프리즈 전시회를 기획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젊은 데미안 허스트는 전시를 위해 골머리를 앓는다. 분명 우리들의 전시는 좋은데 돈이 없어 전시를 할 공간을 찾을 수도 없고 전시를 한다해도 사람들이 방문할지도 미지수였다. 그는 예술계의 저명한 인사들의 전화번호를 닥치는 대로 모으고 수화기를 든다. 싼 가격에 전시를 할 수 있는 부두 창고를 찾는다. 이것이
골드 스미스 컬리지의 2학년 학생이었던 데미안 허스트는 같은 대학교의 작가들을 모아 전시회를 기획한다.1998년 열리고 전설이 된
터닝 포인트 찰스 사치
이 전시에서 데미안 허스트는 자신의 운명을 뒤바꿀 찰스 사치를 만난다. 전시를 관람한 찰스 사치는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들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 뿐만 아니라 3명의 작가를 후원하기로 한다. 찰스 사치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고 그가 발굴해낸 4명의 작가들은 현대 미술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찰스 사치의 후원으로 그는 < 천년 > , < 살아있는 누군가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육체적 불가능성 >을 제작하고 찰스 사치의 후원을 받게된 나머지 작가들과 함께 1997년에

끊임없이 집착하는 열정

단일 작가로 역대 최고 경매수익 올려

그가 실제로 보고 싶었던 것, 인간의 죽음
두개로 나눠진 유리상자에 각각 피 흘리는 소의 머리와 파리가 있고 그 사이에는 관으로 연결된 작품이다. 죽은 소의 머리를 감지하고 접근하는 파리들은 소가 있는 칸에 설치된 전기장치에 의해 죽는다. 죽은 소의 머리가 썩어가는 과정과 계속해서 죽는 파리, 바로 죽음의 이미지인 것이다. 제목인 “천년”이라는 단어를 듣고 관객들은 추상적인 개념을 떠올리지만 이것은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닌데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시간의 한계는 대략 100년 정도로 천년이라는 시간이 어떠한 의미인지를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데미안 허스트는 죽음이란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개념을 표현한 것이다.
가축의 시체를 포르말린에 담아 ‘죽음’에 대해 인식하는 작품을 만들었던 허스트는 가축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간의 정서적인 문제보다는 인간의 죽음 자체에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현대 미술이라 할지라도 의학적 목적이 아닌 전시의 목적으로 인간의 신체를 이용해 작업을 한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였기에 작품을 만들 수 없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데미안 허스트는 인간의 신체의 모형이나 두개골과 같은 인간을 나타낼 수 있는 뉘앙스의 오브제를 이용한 작업을 시작한다.

신의 사랑을 위하여
데미안 허스트는 다시 사람을 모델로 삼은 작품을 제작한다. 이 작품은 네덜란드 소년의 두개골에 값비싼 다이아몬드를 가득 담은 작품으로 자체의 가격으로 국내외의 매스컴에서 시끌벅적했었던 작품이다. 인체해부모형에서 드러내지 못했던 메시지들을 극복하려는 뉘앙스로 보이는 이 작품은 메멘토 모리로 대표되는 해골의 이미지와 현대의 사치의 상징인 다이아몬드를 이용해 욕망과 죽음에 대한 메시지를 구성하려는 목적이 있다.
가끔씩 우리가 알 수 없는 경험에 대한 공포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어떠한 것이 우리에게 좋은 것인지, 그것을 느끼는 이유와 구조, 그것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공포는 비단 죽음뿐만이 아닐 것이다. 인간관계, 진로 ,죽음과 같이 시간과 관련이 있는 미래의 공포들에 대해 데미안 허스트를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어디까지가 예술인가, 예술이라면 모든 것이 허용되는 이유가 되는가?

예술작품이 근사함과 연결되는 것은 옛날이야기이다. 아름답고 있는 그대로를 재현해 내는 예술보다는 이제는 작품으로 무엇을 느끼게 하는가가 목적이 되며 의도가 중요해진다. 허스트의 작품은 그런 부분에서 시기적절하게 등장하였고 파격적인 생각과 관점으로 찬사를 받게된 것이다. 그러나 동물을 사랑하는 나의 시각에서 그의 작품이 마냥 천재적이고 획기적이여 보이지만은 않았다. 아무리 주제가 죽음에 관한 것이라고 해도 생명이 깃들어 있던 가축들의 시체를 보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저 외국사람들의 밑도 끝도 없는 예술적 개방함이 놀라웠고 세계가 인정하는 예술가이기에 호기심이 생겼을 뿐이었던 것 같다. 그의 작품은 예술의 경계는 과연 어디까지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어쩌면 나의 이런 고민이 그가 의도하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왜 많은 사람들이 의문도 갖지 않은 채, 약은 완전히 믿으면서 예술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지 이해할 수 없다.”-데미안 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