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림 앞에서 울어본 사람들의 이야기, 그림과 눈물 [문학]

글 입력 2015.01.29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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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는가?
 
나는 그림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라고 말할만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눈물’이 되어 흐른 적은 없었다. 또한, 그때 느꼈던 감동이라는 것은 단지 그림의 의미를 알고 나서 ‘이런 의미가 있는 그림이었다니…’라는 의미의 감동이었지, 그 작품 자체를 마주하자마자 감동을 받은 적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간간히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을 보면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느껴보지 않는 감정의 영역을 그 사람은 경험해 보았다는 일종의 부러움과 같은 것이었다.
 
저자는 들어가는 글에서 우리가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유는 그림을 집중해서 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그림에 집중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왜 작품을 좀 더 자세히, 오랫동안 보려고 하지 않을까? 저자의 생각을 따르자면, 우리가 영화나 책을 볼 때의 집중력과 그림을 볼 때의 집중력이 같지는 않다. 또한, 그림을 감상할 때 영화나 책을 볼 때만큼의 집중력을 발휘하지 않는 현대인들에게 그렇게 그림을 보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그림에는 어떠한 장치도 동반되지 않는다. 청각이 개입하는 영화나 장면을 독자 스스로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있는 책과는 다르게, 우리는 오롯이 ‘시각’만을 이용해서 그림을 응시한다. 영화나 책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여전히 많지만, 그림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흔치 않다. 하지만 영화나 책을 감상하는 것과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사람들이 영화나 책을 더 오래보는 것은 그것이 그러한 시간을 소비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어야 내용을 알 수 있고, 영화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한 장의 그림은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진다. 그리고 그 완결성을 넘어서 ‘그 자체’로 우리에게 무언가를 느끼게 할 수 있다. 이것이 그림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영화나 책의 모든 장면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장면들 중에서 인상이 깊은 장면만을 기억하지만, 그림은 그 자체만으로 우리에게 어떠한 감정을 이끌어 내줄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작가들은 한 장의 그림 안에 자신이 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많은 것을 보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하나의 멈춰진 장면에는 쉽게 실증을 느낀다. 사람들은 장면이 결말을 향해 빨리 넘어가기를 원한다. 하나의 장면만 보기에는 너무 지루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멈춰있는 그림 한 장만을 가지고 눈물을 흘리는 행위에 대해 메말라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장면을 건성으로 보고, 그 대장정의 ‘결말’을 향해 가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결말에 집착한다. 영화나 책은 수많은 장면을 통해 ‘…그래서 결국 그렇게 끝났다.’라는 인과관계를 일일이 이해시켜준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나 책을 보고 더 쉽게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이다.
 
앞의 부분에서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 다른 장르에 비해 쉽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그림을 보고 울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보았다. 첫째, 그림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득 차 있고, 복잡하고, 압도적이거나, 어떤 식으로든 제대로 바라보기에 너무 가까이 있어서 운 경우가 있다. 둘째, 그림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텅 비어 있고, 어둡고, 고통스러울 만큼 광대하며, 차갑고, 어떤 식으로든 이해하기에 너무 멀게 느껴져서 눈물을 흘린 경우가 있다. 즉, 그림 자체의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서 그 그림에서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에 운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림은 그림 그 자체의 크기든, 그림에 사용된 색감이든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무게감’이 존재한다. 그러한 느낌을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미술학자들은 ‘숭고 the sumblime’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숭고는 보통 좁은 의미의 ‘미’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쓰인다. 대상이 인간을 압도하는 크기 또는 힘을 갖는 경우, 소위 미적 형식은 상실된다. 처음에는 그 형식과 내용의 대립으로 인해 불쾌감을 느끼지만 곧 그런 느낌이 사라지면 오히려 인간의 생명 감정이 자극되고 대상에 대한 경외, 정서적인 경악이나 황홀경, 즉 넓은 의미로의 ‘미’의 감정을 낳게 된다고 한다.
 
이것이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그림을 집중해서 보다보면 느낄 수 있는, 그림과의 정서적인 교감이 아닐까? 여기서 집중해서 본다는 것은 그림을 단지 오랫동안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찬찬히 살펴본다는 의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복제본은 숭고함을 느낄 수 있는 물리적인 크기도 짐작되지 않을뿐더러, 원본만이 가지고 있는 독자성을 느끼기에 충분치 않음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원본을 접했을 때(접하고 나서야) 눈물을 흘렸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이 다수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에, 언뜻 보면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려야 할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작가는 우리에게 눈물을 흘릴 것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에게 그림을 좀 더 주의 깊게 보아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최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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