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원미술관 :: 이상원 회화 : 버려진 것들에 대한 경의 For Things Abandoned

글 입력 2014.12.0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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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그림에 미친 40년의 여정”. 다소 저급한 표현일수는 있으나 이상원 화백의 삶에 대한 묘사를 짧게 해야 한다면 알맞은 표현이 아닐까 한다. 

이상원 화백은 1935년에 강원도 춘천시 유포리에서 태어나 평범한 시골 농촌의 학생으로 지내던 중 한국 전쟁이 발발하여 학도병으로 참전하여 전장을 겪고 포탄의 흔적을 몸에 지니게 되었다. 

20세가 되기 전 화가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홀로 서울인 타지로 상경하였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그림을 그리겠다는 일념으로 극장 간판장이와 상업초상화를 그리며 청년기를 보냈다. 

초상화가로 활동하던 중 1970년에 건립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의 영정초상화를 그린 것을 계기로 상업초상화가로서 입지는 더욱 굳어졌다. 

그 당시 이화백은 박정희 전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초상화를 비롯하여 해외국빈을 위한 선물용 초상화를 도맡아 하다시피 하였다. 

국내외에서 초상화 의뢰가 빗발치며 경제적 상승 가도를 달리고 있던 70년대 중반, 이상원 화백은 돌연 모든 상업 초상화 주문을 고사하고 공방의 문을 닫았다. 그때부터 화백은 순수미술 작업을 위한 새로운 출발을 하였다.
 
그 이후 1970년대 후반에 소위 국전(대한민국 미술대전)과 대비되는 민전(동아미술제, 중앙미술대전)에 출품한 작품(‘시간과 공간’)이 연이어 수상하게 되면서 이화백은 “입지전적인 독학 화가”, “극장 간판장이에서 순수 화가로 성공한 인물”등으로 불렸다. 

그러나 이제는 ‘입지전적’, ‘독학’등의 단어는 수 십 년 동안의 창작의 시간을 설명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반세기 가까이 ‘그림’ 하나에만 몰두해 창작한 작품들은 수 천 점으로 쌓여 일일이 헤아리기가 어렵다. 

多作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작품의 면면에 배어있는 삶에 대한 진지한 탐색을 열정적으로 그려나간 궤적을 살펴본다면 ‘예술’에 대한 그의 처절한 노력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공모전에 거듭 입상한 일과는 별개로 1986년, 순수미술 작업을 시작한지 10여 년이 지나 이화백은 첫 번째 개인전을 통해 비로소 10여 년 간의 순수화가로서의 탐색의 결과를 대중에게 선보였다. 

수차례의 공모전에서의 수상을 통해 이미 화가로서 공증을 받았다고 할 수 있지만 첫 개인전 이후 지금까지 이화백은 마치 어린아이가 시간을 잊고 놀이에만 몰두하는 모습으로 여전히 창작에 목말라 하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상원 화백은 상업초상화가 시절 수없이 그림을 팔았던 시기를 지나고 나서 순수미술을 시작하면서는 작품을 판매하지 않기로 결심하였고 그대로 실행하였다. 

해외 및 국내 국공립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들을 제외하고 고스란히 남아있는 작품들은 40년 동안의 화백의 화업을 온전히 되돌아 볼 수 있도록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이상원 미술관 건립의 초석이 된 것이다. 
이상원 화백은 1990년 후반과 2000년 초반사이에 러시아, 중국, 프랑스 등지의 미술관에서 연달아 초대전을 열게 된다. 
특히, 1999년 생존 작가로는 최초로 국립러시안 뮤지움에서 전시를 성황리에 마쳤고 2005년 이어진 모스크바 국립 트레차코프 미술관 초대전시에서도 많은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작품이 지닌 한국적인 소재와 표현은 그의 작품이 가진 특수성으로 여겨졌다. 반면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내용은 모든 고귀한 예술이 지향하고 있는 보편적인 인간애를 담고 있기에 국적을 불문하여 공감을 이끌어냈다. 

이상원 화백의 작품은 변화무쌍한 현대미술의 유행 속에서 전략을 모르는 순수한 예술의 가치를 드러내준다. 

이상원 화백의 40년의 화업. 아무런 가식이 없는 노동의 결정체인 수많은 작품을 통해 우리는 무엇보다도 ‘예술’ 그 자체를 향해 쉼 없이 달려온 진정한 한 인간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전시소개
이상원 미술관의 개관전으로 열리는 <버려진 것들에 대한 경의 For Things Abandoned>展은 1977년 공모전에서 입상했던 이화백의 초기작에서부터 미발표된 근작까지 총 60여 점을 전시한다.

이상원 화백의 작품은 대체로 연작의 형태로 되어있다. 

이상원 화백은 초기부터 <시간과 공간>, <동해인> 등 10종류가 넘는 연작으로 작품을 발표하였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대표 연작 <시간과 공간>, <동해인>, <영원의 초상>, <투鬪>, <마대麻袋의 얼굴>, <막膜>과 초기작, 그리고 미발표작인 최근작 <대자연>이 선보인다.

대표적인 연작들 중 선별한 50여 점은 모두 100호(약 160×130㎠)가 넘는 크기의 대작이다. 새롭게 개관한 이상원 미술관의 1,500㎡의 전시장에 펼쳐진 50여 점의 회화작품은 한 예술가의 40년 동안의 고뇌와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작품 설명
 
이상원 화백의 초기 작품은 극사실적인 기법의 대작이 대부분이다. 
많은 평론가들에 의해 언급된 그의 작품의 특징은 ‘폐기처분 된 것들을 세밀하게 재구성한 그림’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산업사회의 이면에 드리운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한 것으로 읽히기도 하고 버려지고 잊힌 것들에 대한 작가의 각별한 애정이 드러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작가 자신의 유년기와 청년기에 겪은 고난과 어려움은 20세기를 살아낸 한국사회의 민중들이 한 몸으로 경험한 시대적인 공통분모였다. 

이상원 화백은 그의 몸에 새겨진 전쟁의 상처와 같이 숨기고 외면하고픈 존재의 아픔이 묻어나는 대상에 초점을 맞춘다. 
자동차 바퀴자국으로 무심히 파헤쳐진 길의 표면과 유통기한이 지나 버려진 폐허와 같은 잔해인 바닷가 그물들, 헤어진 마대 천, 노년을 맞이한 동해바닷가의 어민들을 그렸다. 늘 대한민국의 가장 후미지고 낙후된 곳을 찾아다녔고 도시화의 손길이 미처 닿지 않아 시대에 뒤떨어진 듯, 이제는 존재하지 않아 보이는 곳을 그림에 옮겼다. 

그러나 그의 대상들은 엄연히 현실에 존재하였고, 그에 의해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재탄생되곤 하였다. 버려진 대상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을 그는 섬세한 필치로 큰 화면에 가득 매웠고, 그러한 우직한 노동과 인내의 시간이 드러나는 작품은 보는 사람들을 묵직한 감정으로 감싸 안는다. 

쉽게 시작하지 못한 순수회화의 길이어서였을까? 이상원 화백은 그림 그리는 행위에 자신과의 비장한 약속을 실천하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깊은 열정과 순수함과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예술은 죽었다.’ ‘예술은 사기다.’ ‘예술은 비즈니스며 아틀리에는 공장이다.’ 등의 현대미술의 구호는 이상원의 회화 앞에서는 왠지 그 빛이 바래는 것 같다. 

이상원 화백의 작품은 이성의 빛 아래에서보다는 삶의 현장에 있는 생생한 체험의 느낌과 감성의 빛 아래에서 그 의미를 깊이 헤아릴 수 있는 회화일 것이다. 

이상원 회화의 독특한 측면은 초기 천위에 유화와 먹을 사용한 짧은 시기를 지나 삼합장지(수공으로 만든 한지를 세 겹 겹친 질기고 강한 한지)에 먹과 유화물감을 함께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보통 수용성인 수묵과 지용성인 유화물감은 복합해 쓰는 재료가 아니었으나 이상원 화백은 애초에 한지와 수묵의 재료가 가진 정서를 귀히 여기면서도 치열하고 공격적인 묘사와 표현방법에 대한 시도를 놓치지 않으려 하였다. 

화백의 감성은 자연 친화적이다. 또한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갈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사실에 입각하며 삶에 입각한 예술을 추구하고자 실증주의자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다. 이는 동서양 예술이 가진 각각의 특성이며, 이상원 화백은 창작의 과정에 있어서 정반합의 과정을 거쳐 변증법적인 통합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초기 한국화가로 불리던 화백은 동양화와 서양화의 어느 한쪽 범주에서만 다룰 수 없는 독특한 자리에 위치하게 되었다. 이상원 화백은 한사람의 ‘화가’이며 그의 작품은 ‘회화’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말은 단순하나 묵직하며 강렬하다. 

격변기의 근대화를 서구화 과정을 통해 겪어온 한국사회에서 밑바닥에서부터 일어나 이룩해 낸 회화이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은 이상원 화백이 1977년 중앙미술대전에서 특선으로 입상한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고 그의 연작 중 ‘동해인’과 함께 가장 대표적으로 알려진 연작이다. 초기의 진흙바닥이나 추수가 지난 논밭위의 자동차 바퀴자국을 그린 ‘시간과 공간’ 연작은 시간이 지나면서 1990년대에는 흰 눈 위를 지나간 바퀴자국을 주 소재로 하여 그려진다. 진흙과 논밭 위의 바퀴자국은 자동차에 의해 생채기 난 땅의 느낌이 강하였다면 후기의 ‘시간과 공간’은 좀 더 추상적이며 은유적인 해석이 가능한 정제된 조형작품으로 변화하였다.
  
상업초상화시기를 거쳐 순수미술가의 길로 들어선 이화백은 순수미술을 시작한지 20여 년 훌쩍 넘어서 인물화를 소재로 채택하였다.(동해인, 영원의 초상) 수 천 명의 실제 사람의 얼굴을 그려본 이화백은 주문자의 기호가 아니라 예술가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인물화를 시작하였다. 모든 대상은 노인들이었다. 동해 바닷가의 어부들, 인도 바라나시의 노년의 인물들이다. 주어진 삶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인간의 외형은 초라하고 슬퍼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상원 화백은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소멸의 시간을 담담하게 보여주며 역설적으로 생의 고귀함과 경건함을 표현한다.
 
이상원 화백의 초기작에 속하는 일련의 연작(마대의 얼굴, 해변)은 여백 없이 들어찬 곧 바스러질 것만 같이 쇠락하고 복잡한 대상을 그렸다. 극사실회화라고 칭해지는 초기작은 서구의 포토리얼리즘, 하이퍼리얼리즘 등이 1970~80년도에 한국의 화단에서 붐을 이루고 있을 때와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그러나 이상원 화백의 회화는 추상화와 미니멀리즘의 반발로 대상을 사진처럼 묘사하는 기교를 통해 환영의 쾌감을 추구하는 동시대 극사실화와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홀로 긴 시간을 인내한 노동의 결과물과도 같은 작품이다. 이 작품들의 참의미는 땀 흘리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민중들의 빛바래고 오래된 작업복과 같은 색조를 지닌다는 것에 있다. 곧 사라지게 될 대상들이 뿜어내는 분명한 존재감, 주목받지 못하는 대상임에도 그 안에 예술적 아름다움을 찾아내게 되는 연금술적인 신비감에 있다.
   
이상원 화백은 자신의 노년에 이르러 더욱 사소하며 작은 것들에 시선을 주었다. 호박과 순무 속에서 자연을 바라보고 생명력을 느끼며 전에 없던 원색에 가까운 색상을 가미하여 그려내었다. 수묵의 필치도 파묵법을 이용하여 오히려 어눌하고 단순한 느낌의 회화로 나아가고 있다.  


 
이상원미술관
033-255-9001
 
 

 
 
이상원미술관
이상원 회화 : 버려진 것들에 대한 경의 For Things Abandoned
 
2014-10-18 ~ 2015-03-29
[조호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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