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던 괴물 영화가 아니었다

2시간 반가량의 영화를 보고 난 후 그동안 한국에 이런 영화가 나온 적이 있었던가 되새겨보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장르이지만 한국 시장에서 SF 스릴러를 선택한 감독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시원한 카 레이싱과 총기 난사, 말 타고 다니는 액션 장면, 외계인의 외관, 한국 시골 모습과 푸른 숲의 대비 등 신선한 요소가 영화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밝은 대낮에 담긴 괴물과의 전투 장면은 그동안 침침한 야밤 괴물 장르에 익숙했던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잔인하고 처참한 광경을 클로즈업하여 있는 그대로 관객에게 보여준다.
나홍진 감독의 영상 문법은 궁금증을 던져 놓고서 불안하게 만들다가 정체를 숨김없이 드러내며 상황을 직시하게 만든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칸 영화제에 초청받은 이 작품의 진가를 깨닫게 된다.
괴물이 울자 선과 악이 무너졌다

미지의 생명체와 싸우는 영화를 보면 당연히 외계인은 악한 존재이며 죽어 마땅한 걸로 여겨진다. 그러나 영화 호프에서는 외계인의 심정을 느낄 수 있도록 우리를 설득한다. 왜 제목이 ‘호프’인지에 대한 답은 영화 막바지에 깨달을 수 있었다. 우주선을 타고 지구에 나타난 외계인 일족은 잃어버린 아이를 찾기 위해 인간과 싸운 것이다.
처음에는 곰의 소행인 줄 알고 곰과의 전면전을 나섰지만 허탕이었다. 그렇게 또 다른 생명체인 인간을 의심하게 되며 아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인간 입장에서는 죽어 마땅한 괴물이지만, 외계인들은 자신의 핏덩이를 찾기 위한 모험이었다. 지구는 인간만의 공간이 아니다. 외계인도 인간도 각자 살아남기 위해 처절히 싸운다. 그들은 침략자인가, 생존자인가?
총을 난사 받으며 한쪽 다리를 잃고 도망치던 외계인은 눈물을 흩날린다. 그 모습을 본 황정민은 이제껏 괴물을 죽인다는 맹목적인 정신에서 헤어 나와 그의 눈을 하염없이 쳐다본다. 눈물을 흘리는 외계인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자식을 잃으면 사경을 헤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차가운 이성만이 자리 잡은 채 감정 따위는 없는 줄 알았다.
재난은 인간의 본성을 드러낸다. 살기 위해 남을 미끼로 삼는 사람을 보며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냐, 너무 이기적이다.’라며 비난을 날릴 수 있다. 극한의 상황에서는 오로지 ‘생존’이 유일한 목표다. 최대한 안전한 구역으로 도망치고 몸을 사려야 한다. 괴물의 한 방에 맞으면 그 즉시 끝장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정신과 신체 모두 나약하다. 만약 미지의 존재가 자신을 위협한다면, 사랑하는 이들이 내 앞에서 죽어간다면 그 상황에서 공황에 빠지지 않고 살길을 찾아 나설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호불호가 심한 영화는 왜 오래 기억에 남을까? 26년 7월 기준 누적 관객수 240만 명을 기록했다. 그에 반해 영화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극단적으로 호불호가 갈린다고 하여도 예술 작품이기에 마땅하다. 예술에 정답은 없다. 같은 장면을 보고서도 해석의 차이가 분분하다. 오히려 떠들썩하게 영화 후일담을 나눠주는 일이 작품을 오래 살게 만든다. 모두가 같은 감상평을 낸다면 작품은 쉽게 잊히고 말 것이다.
결국 희망은 누구에게 필요한가

피가 낭자하고 적나라하게 시체가 널린 호프 항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지금 이 순간을 버티기 위해 싸운다. 인간에게 수십에서 수백 발의 총격을 받고도 포기하지 않고 쫓아오는 외계인이나, 자신보다 몇십 배는 몸집이 크고 빠른 미지의 존재에게 겁먹지 않고 맞서는 사람이나 매한가지다.
‘생존’에 초점을 맞춰 발버둥 친 그들은 그저 살고 싶을 뿐이다. 내가 살아온 터전에서 내쫓기지 않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행운이 아니다. 가장 원초적이고도 얻기 힘든 ‘희망’은 그들에게 생존이었다.
겉모습은 달라도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모든 존재의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