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일상을 꾸려갈까, 라는 질문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에 대한 질문이므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는가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즉 일상은 늘 시간과 삶이라는 거대하고 어려운 담론에 이중으로 발을 걸치고 있는 것이다. 일상에 관한 영화와 드라마들은 늘 우리의 시간과 삶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일상에 관한 허구의 이야기는 그 자체의 소중함을 찾으려는 식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인간 자신을 위로하는 데에 훌륭하게 기능했지만, 그래서 정말 우리 일상은 어떻게 이뤄져 있는지에 관한 탐구를 멈추게 했다. 나아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 역시 ‘일상을 소중하게’라는 방식으로 납작해지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다시, 다시 질문해야만 하는 것이다. 일상에 관해서 말이다.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 〈패터슨, Paterson〉(2017)은 주인공 패터슨의 일상을 보여주며 우리의 일상이 실은 무엇으로 이뤄져 있는지에 관해서 답하고 우리는 일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찾아 나선다. 주인공 패터슨은 ‘패터슨’이란 동네의 버스 기사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아내와 인사하고 시리얼로 아침을 해결한다. 그리고 아내가 싸준 도시락과 함께 출근해 버스 운전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오면 저녁을 먹은 뒤 강아지를 산책시키다 단골 바에 들러 맥주를 한잔 마시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지극히 단조로워 보이는 일상이다. 이 일상 속에서 패터슨은 시를 쓴다. 사랑 시를 쓰고 자신이 운행하는 버스에 관해서 시를 쓴다. 그는 시를 공부하고 시를 써 내려가는 시인이다. 시는 그에게 일상에서 중요한 것들을 발견하게 해준다. 가령 첫 월요일(MONDAY) 쓰는 시 〈Love Poem〉은 그가 아침을 먹으면서 손에 쥔 성냥갑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점심을 먹으면서 봤던 폭포와 갑자기 내리는 비 역시 그에게 시적 영감을 준다. 패터슨의 시는 단조로운 일상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면서 시작한다. (그의 시는 일상에 밀착되어 있다.) 그런 시는 늘 다른 예술적 결과물이 되듯 일상 역시 시의 영향으로 늘 다른 각도로 조명되고 발견된다.
여기까지만 쓰면 〈패터슨〉 역시 일상이라는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단독자로서 특별함을 찾으며 일상을 꾸려야 한다는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패터슨〉은 다른 각도 속에서 패터슨의 일상이 어떻게 다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패터슨은 늘 반복되는 루틴을 가졌지만, 정작 그의 일상은 똑같을 리 없다. 주변의 사람들 때문이다. 꿈 많은 아내는 그가 돌아올 집을 매일 새로운 그림으로 뒤덮고 생각지도 못한 요리를 선보이며 때론 자신의 꿈이라며 기타 연주를 들려준다. 이뿐일까, 그가 매일 저녁 가는 바에서 줄리엣과 로미오라 불리는 커플은 매일 싸운다. 어느 때는 만나달라며 애원하듯 연극적인 이별을 보이고, 어느 때는 플라스틱 총으로 난동을 부린다. 이 연극을 감상하고 이 난동을 제압하고, 그들에게 말을 거는 것 역시 패터슨의 일부다.
패터슨의 일상은 지극히 혼자서 꾸려가는 것 같지만, 그는 주변 인물들의 영향을 끝없이 받으며 나아간다. 우리의 일상은 ‘나’라는 단독자의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주변 인물로 인해서 변화하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특별함이란 우리가 타인과 긴밀하게 엮여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장면으로, 패터슨이 쌍둥이를 그의 아내는 매일 아침 비몽사몽인 목소리로 자신이 꿨던 꿈을 들려준다. 첫 번째 월요일에 그의 아내는 꿈에서 자신이 쌍둥이를 낳아서 기르고 있었다고 말하자, 패터슨은 일상에서 내내 쌍둥이를 의식하게 된다. 쌍둥이를 기다리는 건지, 반기는 건지 모호한 패터슨의 표정은 가족 개념 자체를 긍정하거나 부정하기보다는, 가족이라는 가장 밀접한 타인의 변화를 민감하게 의식하는 것에 가깝다. 우리는 혼자 살 수 없고 늘 주변의 타인과 엮이며 살아간다. 이건 일상의 특별함이 내가 원하는 대로 가꾸어갈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무리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려고 해도 속절없이 불가능해지는 패터슨의 일상에서 우리는 일상이란 반복과 단독자로 이뤄진 게 아니라, 우연과 불가항력으로 이뤄져 있음을 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시 노트가 찢긴 후 패터슨이 산책을 하며 일본인을 만나는 장면이다. 그의 일상과 일상의 특별함 그 자체였던 시 노트는 강아지로 인해 완전히 찢어진다. 이는 그야말로 우연이었고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패터슨은 크게 낙담하며 산책을 한다. 그리고 폭포에서 시를 쓰는 일본인을 만나, 대화를 나눈다. 그 끝에 패터슨은 새로운 노트를 받는다. 다시 첫 페이지를 펼친다.
여기서 일상의 새로운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일상은 절대 반복되는 시간이 아니라는 점, 늘 새로운 시간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반복하여 행동할 뿐이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처음이자 마지막, 온전히 지금밖에 주어지지 않는 새로운 무언가다. 일상이란 말에 긴밀히 연결된 반복은 행동의 반복 뿐 아니라, 시간 자체의 반복까지 포함한다. 하지만, 패터슨은 다르게 말한다. 늘 새로운 시간이라고. 그러니 우연과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무력해질 필요가 없다. 새로운 시간에서 늘 허둥대는 것은 당연하니까. 다른 말로, 우리는 새로운 시간 안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니까. 이 말은 곧 우리는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일상을 다르게 감각하고 내게 주어진 시간이 반복의 결괏값이 아니라 나를 스쳐 지나가는 무언가, 나를 변화시키는 무언가로 생각할 때. 우리는 무너짐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24시간, 60분과 60초라는 이름의 새로움 안에서 우리는 달라지기에.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