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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덧없음과 삶의 의미 사이 - 죽음의 수용소 이후 [도서]

浮生

by 김효주 에디터
2026.07.10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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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면서 실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를 경험한 사람의 인생관을 들어볼 수 있는 순간이 얼마나 있을까? 그런 고통스러운 경험 자체에 대한 궁금증도 있지만, 그곳을 겪은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게 되었는지, 삶을 어떻게 이해하게 되었는지가 늘 더 궁금했다. 특히 평소 인간의 괴로움과 삶의 의미에 대해 자주 생각해 왔기에, 빅터 프랭클의 미출간 유고작 <죽음의 수용소 이후>는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다.

 

이 책은 강제수용소 체험 이후 더욱 깊어진 프랭클의 사유를 담고 있다. 분량은 길지 않지만, 삶과 죽음, 자유와 책임, 의미와 덧없음같은 본질적인 질문들을 차분하게 풀어낸다.

 

 

 

나와 우리의 아우슈비츠


 

짧지만 철학적 통찰을 끌어내는 문장들이 많은데, 역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문장은 "모든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아우슈비츠가 있다."는 문장이었다.

 

프랭클은 전쟁과 홀로코스트를 견뎌낸 자신의 경험을 특별한 고통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누구에게나 각자의 아우슈비츠가 존재하며, 중요한 것은 그 상황 속에서 어떤 태도를 선택하느냐에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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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누가 더 고통 속에 있는지를 비교하는 데 익숙하다. 나 역시 책을 펼치기 전에는 전쟁과 홀로코스트를 겪은 사람 앞에서 내 고민은 너무 사소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프랭클이 말하는 아우슈비츠는 특정 시대의 비극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각자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절망과 상실, 그리고 그것을 대하는 태도까지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책의 초반부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나의 아우슈비츠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타인의 아우슈비츠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생겼는데, 이는 챕터를 넘어갈수록 다양한 사례와 통찰력 있는 문장들로 해소되기 시작했다.

 

 

 

부생(浮生)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가 부생(浮生)이다. 본래는 덧없는 인생을 뜻하는 말이지만, 나는 늘 '모든 것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라는 태도에 가깝게 받아들여 왔다. 내게 덧없다는 것은 인생에 대한 회의주의와 회피적 사고 그 중간 어디쯤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무의미하다는 뜻의 ‘덧없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프랭클은 과거를 통해 인간은 덧없음을 극복할 수 있다고 굉장히 강력하게 믿는다.


 

우리가 일구어낸 것, 즉 우리가 뒤에 남겨 놓은 것이 바로 우리의 현현이며,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우리 본질의 실현이다.

 

- <죽음의 수용소 이후> p23.

 

 

"우리가 일구어낸 것, 즉 우리가 뒤에 남겨 놓은 것이 바로 우리의 현현이며,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우리 본질의 실현이다."


즉, 이미 지나간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낸 삶 자체로 남는다는 관점이다. 솔직히 아직은 이 문장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아직은 내 삶에서 단단한 목적의식이나 의미보다는 안개같이 뿌연 덧없음에 대한 감각이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나의 과거 일체를 부정하지 않고 그 자체로 그저 인정하는 행위가 프랭클이 말한 ‘덧없음을 극복’하는 방법의 하나라면, 나 또한 덧없는 인생 속에서 나의 본질을 인정하는, 다소 모순된 형태로 살아가고 있기도 하겠다. 그 두 편이 공존할 수 있는 시각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만약 이들이 한 사람 안에서 동일 시점에 공존할 수 없는 개념이라면, 어쩌면 나는 오히려 삶에 희망과 기대를 품는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선 지금 당장 나를 어느 한 편으로 규정하고 싶지는 않다.

 

 

 

삶의 의미


 

챕터를 넘어갈수록 이 책의 중심에는 결국 '삶의 의미'라는 개념을 탐구하게 된다. 프랭클은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은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며, 특히 미래를 향한 의미가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고 강조한다.

 

 

아우슈비츠와 다른 강제수용소에서 배울 수 있었던 교훈은 이것이었어요. 어떤 의미를 지향하는 사람들, 즉 미래에 실현될 의미를 향해 나아갔던 사람들이 가장 생존 확률이 높았다는 것입니다.

 

- <죽음의 수용소 이후> p 65.

 


그는 성취와 책임, 그리고 사랑을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중요한 통로로 제시한다. 그리고 그 의미와 목적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내가 내 삶에서 의미를 잃어버렸다고 느꼈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됐다. 돌이켜보면 그런 시기에는 대체로 내게 주어진 책임을 회피하거나, 어떤 대상도 사랑하지 않고 있었다. 지켜야 할 게 없으니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가 없었고 자연스럽게 삶의 의미 역시 흐려졌다. 그때 알았다. 인간 개인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은 무언가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 내 등에 짊어진 무게, 즉 책임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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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개인의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할 정도로 지친 경우라면 어떻게해야 할까? 나는 그것을 일종의 ‘우울증’으로 이해했었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든 삶의 의미를 찾을 수는 있겠지만 문제는 그마저도 어떠한 동력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나는 가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땐 늘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고 마치 바다 위에 부유하는 튜브처럼 살아간다. 그래서 내게는 늘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순간 자체에 대한 은은한 공포가 있다. 정작 그 순간에 내가 아주 깊은 곳으로 침잠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는 것에서 오는 불안이다. 이렇게 의미를 발견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순간에는 무엇이 다시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지. 여전히 내 삶이라는 현실에서 해소되지 않은 그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

 

그럼에도 <죽음의 수용소 이후>의 가장 큰 장점은 철학적인 내용을 어렵지 않은 언어로 풀어낸다는 점이다. 문장은 담백하지만 거의 모든 장에서 오래 곱씹게 되는 문장들을 만날 수 있다. 한 번 읽고 지나가기보다 밑줄을 긋고 다시 펼쳐보게 만드는 책에 가깝다.

 

아마 이 책은 읽을 때마다 전혀 다른 문장이 눈에 들어오는 책일 것이다. 나 역시 언젠가 다시 처음부터 천천히 읽어보고 싶다. 자유와 책임, 삶의 의미, 덧없음처럼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들을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은 좋은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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