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Opinion] 시선의 차이가 만들어 낸 인간의 추락 - 맨 끝줄 소년 [드라마/예능]

인간의 상상은 얼마나 스스로를 추악하게 만드는가.

by 김수민 에디터
2026.07.10 10:39

 

 

KakaoTalk_20260710_154509951.jpg

 

 

단순한 국문학과의 교수와 학생의 글 쓰기에 관한 이야기라고 착각했지만, 이야기는 전혀 다른 파문을 불러왔다고 말하고 싶다. 막장은 일그러진 개연성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지점을 끄집어 내고, 인물들을 그 속으로 던져 놓아야 한다.

 

<맨 끝줄 소년>은 한 마디로 시선의 차이가 만들어 낸 인간의 추락에 관한 이야기다. 어떤 상황에 대해, 누군가에 대해 ‘의심’해 본 적이 있는가? 이 작품에서 의심은 시도 때도 없이 피어난다. 의심이 현실이 되기도 하고, 현실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던 의심이 그냥 쓸모없는 의심이 되어 나에게 화살로 돌아올 때도 있다. 이 작품의 포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중반부의 지루함을 견뎌야 한다. 포스터에 나와있는 것처럼 “이야기의 끝이 뒤틀”리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상상과 망상의 경계를 외줄 타듯 담아내는 세계이다. 그리고 이 세계 속에 허문오(최민식)가 던져진다. 허문오는 그 세계 속에서 진실과 의심 속에서 허우적댄다.

 

그렇다면 이 세계는 이강(최현욱)이 만들어 낸 세계일까? 이강이 소설을 쓴 작가니까 말이다. 이 질문에 대해 오래 생각했지만, 결론은 이강이 만들어 낸 세계가 아니다. 허문오 자신이 열등감과 세계를 바라보는 끔찍한 시선으로 만들어 낸 세계일 뿐이다. 그러므로 허문오가 후에 작품 속 소설 <맨 끝줄 소년>을 훔쳤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허문오 자신도 모르는 덫에 걸렸다는 것을 입증하는 꼴이다.

 

 

KakaoTalk_20260710_154509951_01.jpg

 

 

비열하고 열등감에 찌든 개척자 허문오와 다르게 이강은 체계적인 관찰자다. 단지 글을 잘 쓰는 공대생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빠르고 확실하게 파악하고 순수함을 섬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다.

 

만약 이강 캐릭터를 최현욱이 아닌 다른 배우가 맡았다면 어땠을까? 최현욱은 누구나 알듯이 문학 소년의 지적인 이미지와 멀다. 하지만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강은 문학 소년이라기보다 허문오의 세계를 관찰하는 관찰자와 같다. 자칫하면 다큐멘터리가 될 뻔한 이야기를 최현욱만이 가진 섬뜩한 디테일로 살아난 것이다.

 

 

KakaoTalk_20260710_154509951_02.jpg

 

 

다시 작품의 전개로 돌아와서,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일까. 소설을 읽다 보면 무조건 하게 되는 생각 중 하나다.

 

조현숙(진경)이 이강과 스킨쉽하는 장면이 나온 이후 이 장면에 대해 조현숙은 허문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상상에 맡겨라.” 허문오의 아내인 조현숙이 남편에게 홀대를 받다가 정말로 이강과의 관계에 빠지게 된 것인지 허문오는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허문오가 모르게 됨으로써 우리 또한 그 진실에 대해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드라마의 의도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상상이 발전하면 망상이 되고, 어느새 우리의 세계를 잡아먹어 버린다는 것. 드라마의 후반부에서 이렇게 허문오에게만 존재하던 상상과 망상의 외줄이 우리에게로 전환된다.

 

인간의 상상은 얼마나 스스로를 추악하게 만드는가. 그렇다고 상상을 아예 하지 않는다면 인생이 평면적으로 비칠 것이다. 이 딜레마 속에서 우리는 이강이 될 수 있을까. 열등감과 의심을 가지지 않고, 자신을 열등감 속으로 밀어 넣은 김수훈(허준호)을 뒤로 한 채 이강의 작품을 또다시 훔치는 허문오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맨 끝줄 소년>은 우리를 애매모호한 질문 속으로 던져 놓는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