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해가 지날수록 점점 시간을 자주 의식하게 된다. 어린 조카들의 성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였을까. 이제는 계절이 바뀌는 속도와 익숙한 것들이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전보다 더 자세히 바라보게 되었다.
시간에 대한 생각은 점차 깊어졌고, 시간이 남긴 흔적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 하는 질문을 품게 되었다. 문득 지난해 여름에 봤던 영화
영화

영화는 한 장소를 바라보는 하나의 고정된 시선으로 시작된다. 공룡이 살아가던 선사시대부터 원주민들이 그 땅을 지나고, 마침내 집이 세워진다. 첫 장면이 펼쳐지는 순간, 하프와 피아노 선율로 시작되는 앨런 실베스트리의 음악이 영화의 문을 연다. 포레스트 검프에 이어 함께한 그는 이번에도 영화의 깊은 여운을 더한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영화음악의 역할이란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영화음악을 배우면서 지도교수님께서 가장 강조하신 말씀이 있다. “좋은 영화음악이란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끝까지 장면을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음악이 전면에 나서야 하는 장면도 있다. 하지만 영화음악의 본질은 관객이 음악보다 이야기에 더 깊이 몰입하도록 이끄는 데 있다는 점을 늘 잊지 말라고 하셨다.
앨런 실베스트리의 음악은 그 말을 떠올리게 한다. 그 음악은 장면보다 앞에 크게 나서지 않으면서도 긴 시간의 흐름을 조용히 감싸고, 관객이 화면 속으로 스며들도록 이끈다.
Alan Silvestri - Opening | Here OST

음악이 시간의 흐름을 들려준다면, 연출은 그 시간을 눈으로 보여준다.
끝까지 고정된 시선과 화면 분할을 활용한 트랜지션은 서로 다른 시대를 자연스럽게 겹쳐 놓는다. 스크린을 액자처럼 나누어 과거와 현재가 한 화면 안에서 스쳐 지나가는 기발한 연출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시공간의 레이어를 통해 거실 한편이라는 단 하나의 시선으로 수백만 년의 시간을 담아낼 수 있다는 발상이 무척 신선했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은 “언젠가 몇백 년 된 집에 머물며 내가 앉아 있는 바로 이 자리를 지나간 수많은 삶을 떠올렸다.”라고 말했다.
이 한 가지 질문에서 시작된 발상은 하나의 장소와 하나의 카메라만으로도 수 세기에 걸친 이야기를 펼쳐 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자아낸다.

영화의 시선은 시간 자체에만 머물지 않는다.
하나의 공간을 배경으로 여러 세대의 삶이 차례로 스쳐 지나가지만, 결국 영화가 오래 바라보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가족이 함께 거실에 둘러앉아 웃고 대화를 나누는 순간들, 천둥번개가 치는 날 거실에서 결혼식, 크리스마스 같은 기념일들이 지나가며 그 자리를 채운다. 사랑하고 다투고,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또 누군가는 다시 그 자리에 남는다.
특별한 이야기만이 아닌 개인의 이야기에 담긴 추억과 보편성을 강조하며, 일상의 하루들이 시간이 흐른 뒤에는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다는 것을 영화는 담담하게 보여준다.

시간은 생각보다 더 빠르게 지나간다. 영화를 보고 나면 그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공간 위에 켜켜이 쌓여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이 곳 바로 “여기(Here)”에도 수많은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을 테고, 앞으로 곁에 머무는 이들과 보내는 시간 역시 그 위에 또 하나의 이야기로 더해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