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에서는 작품 속에 그려진 인물들의 영혼과 작품을 보는 사람의 정신 사이를 잇는 신비한 다리 같은 것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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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을까. 학창 시절 미술 교과서 속 명화를 본체만체하던 시간을 지나, 오래전 그려진 그림과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의 삶에 귀 기울이게 된 것은.
아마도 처음 전시에서 본 그림 앞에 오래 서 있던 경험, 전시를 다 보고도 그 그림을 다시 보기 위해 전시장을 가로질러 갔던 경험 이후였던 것 같다. 글의 처음에 인용한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말에 따르면, 그때 만난 그림과 나 사이에도 어떤 ‘신비한 다리’가 놓였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조금은 아는 화가의 이름이 생기고, 나름의 취향이란 것도 생겼지만, 여전히 예술 작품의 세계와 나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있다. 도저히 한 번에 외울 수 없는 화가들의 이름, 벽에 걸린 작품 아래 놓인 설명문 앞에서 자꾸만 작아지는 마음, ‘나는 아직 잘 모른다’는 생각은 그 거리감을 더 크게 벌려놓고는 한다.
그렇지만 아직 미술 작품을 보러 멀리 떠날 여유도 없고, 반드시 실물로 보고 싶은 그림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도 아닐 때,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림이 잔뜩 실린 책을 펼친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미술관은 조금 덜 엄숙한 장소가 되고, 오래전에 활동한 화가들도 조금은 더 가까운 사람이 된다.
![[파리의 작은 미술관] 입체표지.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6/20260604175605_bazuzemo.jpg)
《파리의 작은 미술관》은 바로 이런 마음으로 펼치기 좋은 책이다. 이 책은 파리 전역에 있는 8곳의 작은 미술관을 소개한다. 루브르나 오르세처럼 거대한 미술관이 아니라, 한 예술가의 삶과 작업, 그가 머물렀던 공간의 흔적이 남아 있는 미술관들이다.
들라크루아 미술관,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로댕 미술관,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 몽마르트르 미술관, 피카소 미술관, 르코르뷔지에 미술관, 자코메티 미술관. 이름만 들으면 거대한 예술사의 한 페이지가 떠오르는 공간들이지만, 이 책은 이 장소들을 단순히 ‘유명 화가와 그의 작품이 있는 장소’로 소개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고, 무엇을 사랑했으며, 어떤 시간을 통과해 자신만의 예술에 다다랐는지. 이 책은 그 이야기를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들려준다. 그 이야기를 읽는 동안, 나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파리 골목의 구석구석을, 그 거리를 거닐던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따라 천천히 걸을 수 있었다.
예술가들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예술가들의 시간에 대한 태도였다. 한 작품을 오래 붙들고, 남들에게 인정받기까지 긴 시간을 견디고, 때로는 세상과 투쟁하듯 살면서 계속 만들고 또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책에 소개된 들라크루아, 모네, 고흐, 로댕, 피카소 등의 화가들의 삶을 보면서 인생의 긴 시간을 바칠 만큼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에 대해 여러 번 곱씹어보았다. 그러한 것이 지금 나에게는 무엇인지도 함께 생각해보기도 했다.
들라크루아는 말년에 한 작품을 십 년의 시간을 들여 완성해 냈다. 모네의 〈인상, 해돋이〉는 지금은 인상주의의 대표작으로 너무나 유명하지만, 세상에 인정받기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고흐는 파리에서 수많은 작품을 그리며 자신의 삶을 “투쟁하듯 살고 있다. 삶을 위해, 그림을 위해(198쪽)”라고 말했다. 피카소는 사후 그가 살아생전 남긴 작품을 정리했을 때, 무려 유화 1855점, 조각 1228점, 드로잉 7089점, 판화 3만 점, 스케치북 150권에 이르는 작품이 남았다고 전해져 온다.
![[크기변환]도판 1.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6/20260604184358_scaeyxih.jpg)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 1872,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이름을 떨치는 예술가라면, 왠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재능을 가졌거나 적어도 남들과는 다른 비범한 능력을 가졌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 책 속에서 만난 사람들은 남들보다 한 가지를 오래 사랑하고 계속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읽는 내내 그들이 삶과 작품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부럽기도 했고, 좋은 자극을 얻기도 했다.
숨겨진 이름을 다시 부르기
이 책은 예술사에서 숨겨지거나 잘못 호명되어 온 여성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내기도 한다. 외젠 들라크루아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제니 르 기유는 그간 미술사에서 흔히 가사도우미나 가정부로만 언급되어 왔다. 그런데 들라크루아가 남긴 글들을 보면, 그는 단지 집안일을 돌본 것이 아니라 들라크루아의 곁에서 작품에 대해 논하고, 그와 긴 시간을 함께 견딘 동반자였음을 알 수 있다.
베르트 모리조는 인상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가였음에도 종종 마네의 작품에 자주 등장한 모델로 더 자주 이야기되어 오기도 했다. 수잔 발라동 역시 그 당시 많은 화가의 모델, 혹은 화가 모리스 위트릴로의 어머니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여성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 화가였다. 카미유 클로델 또한 로댕과의 관계나 비극적인 생애가 작품보다 앞서 이야기되고는 하지만, 사실 그는 나이 차가 많이 났던 로댕과 나란히 놓고 보아도 독보적인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지닌 사람이었다.
![[크기변환]도판 3, 4.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6/20260604190200_thwukoyf.jpg)
수잔 발라동, 〈제르멘 에이젠만 부인의 초상〉, 1924 / 에두아르 마네, 〈제비꽃 꽃다발을 든 베르트 모리조〉, 1872
낯선 이름과 한 번쯤 들어본 익숙한 이름 앞에서 이들 말고도 얼마나 더 많은 여성이 ‘뮤즈’ 혹은 다른 수식어로만 세상에 알려져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많은 여성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간 잘못 수식되었거나 숨겨져 온 예술가들의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알고 나면 그제야 보이는 것들
이 외에도 이 책은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그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부터 시작해 입구와 정원까지, 함께 산책하는 기분을 만끽하도록 만든다. 이렇게 책을 통해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어도 좋지만,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그 미술관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어진다. 미술관의 탄생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알고 가면 얼마나 더 재밌을까, 하는 마음으로 읽으면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이야기들이 더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다.
예를 들어,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은 오늘날 세계적인 모네 컬렉션을 품은 곳이 되었지만, 그 시작은 인상주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수집가의 공간이었다는 아이러니라든가, 로댕의 유명작 〈청동 시대〉는 지나치게 사실적이라는 이유로 실제 사람의 몸에서 직접 본을 뜬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은 작품이라는 점과 같은 사실들. 유명 건축가인 르코르뷔지에는 사실 건축가이기 이전에 화가였으며, “나는 근본적으로는 화가다. 매일 끈기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295쪽)”라고 말할 정도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까지.
그래서 《파리의 작은 미술관》은 미술관 안내서이지만, 단순한 여행기, 작품 해설서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화가와 작품을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작품이 놓인 방,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선, 그 공간이 지나온 시간까지 함께 바라보게 한다. 이렇게 미술관을 바라보는 순간, 이 공간들은 더 이상 그림이 걸린 건물에서 끝나지 않고, 한 예술가의 마음과 한 시대의 기억이 겹겹이 쌓인 장소가 된다.
여전히 예술 앞에서 작아지는 마음이 있고, 예술가의 이름은 계속 헷갈리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적어도 조금은 덜 주눅 든 마음으로 미술관에 들어설 수 있을 것 같다. 오래 바라보다 보면 그 사이에 놓인 다리 같은 것을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림 너머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파리의 어느 작은 미술관에서, 책으로 먼저 만난 그림 앞에 서게 된다면 나는 아마 조금 오래 머물 것이다. 그리고 전시의 끝에 다다라 다시 그 그림을 보기 위해 조용히 되돌아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