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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B블록 15열에 앉으면 말린 장미를 볼 수 있다 - 에스메 콰르텟 10주년 리사이틀 [공연]

말린 장미의 소리, 군청색 보름달, 그리고 변치 않는 안전 지대

by 장유진 에디터
2026.06.03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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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도, 내가 정말 별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때에도 이 안은 여전하구나. 여전히 예쁘다. 변치 않는 안전 지대가 거기 머물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마음 안이 시원해졌다.


바이올린 한 대가 가장 높게 음을 높이고, 그 길을 또 하나의 바이올린이 따라올 적에,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잘 보내려 갖은 애를 썼다. 잊지 말자. 소리는 앞에 있다.

 

 

 

쇼스타코비치 현악사중주 8번 O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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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대로라면 시작은 드보르자크였다. 머리는 지끈거리는 채로, 명치 부근은 뻐근한 채로, 왜 드보르자크 전에 쇼스타코비치가 서두에 등장하게 되었을까를 생각했다. 흑백에서 컬러로 넘어가려고 했던 걸까? 어두운 마음에서 밝은 날로 몸을 옮겨가려는 걸까? 정해진 프로그램 순서가 하나만 바뀌어도 이렇게 궁금증이 생겨난다.


오케스트라 공연을 볼 때면 그저 빼곡하고 작게 보였던 무대 위, 넓게 원형으로 그어진 조명 안쪽에 등받이 없는 의자 네 개와 현악기 네 대가 밝게 아른거렸다. 나의 좌석은 B블록 15열이었는데, 중앙 한가운데 있는 이들을 보려면 살짝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했다. 콰르텟의 연주를 한눈에 담으면서도, 비올라와 첼로의 움직임은 거의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자리. 무대가 정말 잘 보이는 자리라고 부정할 수 없는 곳이었다. 오케스트라 공연이었다면 이마저도 충분히 가깝다고 느꼈을 텐데, 실내악 공연을 연주자들과 가까운 공간에서 관람해온 탓에, 나의 오른쪽 대각선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입체 음향에 한 발 더 다가가고 싶다고 이 악장에서부터 생각했다. 


이곳이 콘서트홀 바로 옆에 있는 챔버홀이었다면 어땠을까. 그곳에서 들으면 느낌이 또 달랐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쇼스타코비치의 강렬한 또 하나의 시작을 기다렸다.


당신께서 2악장의 시작을 들어봤다면 알겠지만, 이 곡에는 ‘습격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파트가 있다. 그 부분이 시작하자마자 내가 놀랐던 것은 제1바이올린이 선봉장의 역할을 맡아 공격을 개시하는 순간부터, 그들의 연주 장면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소리의 생김새는 어떨까? 날것으로 살아 있기보다 오히려 부드러운 편인데 강인하다. 누구 하나 소리로 튀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우아하게 몸집으로 이야기한다. 소리의 겉면이 말린 장미로 둘러싸여 있다. 내 세상에 나타난 또 하나의 새로운 웅덩이였다.


가장 놀랐던 것은 비올라의 크기였다. 사이즈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시야에 가장 정면으로 보이는 저 악기가 소리의 메인 구간에 놓여 있을 때의 그 영향력. 무조건 한 줄로 깔끔하게 뻗는 소리가 아니라, 펠트지가 소리가 되었다면 이렇게 노래하지 않았을까 상상되는 저 소리.


1악장을 지나다 보면 그들의 소리가 살짝 고개를 든 채로, 무게는 조금 줄인 채 공중 부양하는 때가 있는데, 그들은 지금 연주를 한다기보다 현악 4중주를 발현시키고 있었다. 합이 잘 맞는다는 느낌도, 오늘 리사이틀을 이끌고 있다는 그들의 역할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냥, 쇼스타코비치가 만든 그 곡만이 그날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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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두절미하고, 3악장이 시작하자마자 울었다. 피로가 녹았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눈물이 나는 포인트는 여러 가지겠지만, 나는 이상하게 안심이 되거나 내가 예상한 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기대감이 충족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딸려 나왔다. 바람이 불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과 비슷하겠다.


여기서 심리적 동요나 감동이 있었나 싶겠지만, 그런 건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감정을 느낄 구간도 아니었다. 그냥 딱 필요한 만큼 개운하고, 어두컴컴했는데 그들이 조그마한 보름달을 하나씩 챙겨둔 채 군청색으로 달려 나가고 있으니 반가울 따름이었다.


당장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도, 내가 정말 별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때에도 이 안은 여전하구나. 여전히 예쁘다. 변치 않는 안전 지대가 거기 머물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마음 안이 시원해졌다. 4악장 안에서는 그냥 생각하기를 정지했다. 제1바이올린의 소리를 따라 그의 눈이 있는 곳으로 따라갔다.


끝이 다가오는 때에는 에어컨 바람이 닿은 팔 바깥쪽을 손으로 감싸기도 했고, 사람들의 기침 소리를 피해 눈을 감아보기도 했다. 일렁일렁. 일렁일렁. 나는 그들 시선 바깥쪽에 서 있기도 했고, 아무도 몰래 저 한가운데에 서 있기도 했다.


때때로 나는 ‘에스메’와 둘만 있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더 작은 방에서 대화를 나눠보면 그들의 소리를 더 커다랗게 들어볼 수 있을 텐데. 남몰래 욕심도 부려보다, 이 곡이 끝났다.

 

 

 

드보르자크 현악사중주 12번 Op.96 〈아메리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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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하게 흥겨울 수 있구나. 활이 현 위를 노닐 때 부딪히는 나무 소리. 거대한 음악 하나를 음미하는 것도 좋지만, 이럴 때는 악기 네 대가 시시각각 살아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그들이 내고 있는 소리보다도, 이제 무엇을 말하려는지가 먼저 궁금해진다.


에스메의 드보르자크는 이미 많은 여정을 함께 지나온 것이 느껴지는, 사실상 뭐라 많은 대화가 필요 없는 단계도 한참 지나온 시간처럼 느껴졌다. 설득할 필요 없이, 이미 서로를 알고 있는 단계. 많은 눈 맞춤을 할 필요도 없이. 그냥, 서로가 서로의 사랑 안에서 피어날 수 있도록. 저마다의 계절 하나를 한아름 품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


매일이 이 2악장만 같으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했다. 딱 요즘 바람결 같은 소리를 내는 게 제1바이올린이겠다. 햇볕은 무섭도록 뜨거워 낮에는 못 돌아다니겠다고 말은 하면서도, 매번 양산을 써서라도 한낮의 산책을 고집하곤 했는데. 이날의 에스메는 딱, 걷기 좋은 온도의 어제와 오늘을 닮아 있다.


이때쯤의 공연장은 너무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조명 아래, 카라멜색 벽을 사방에 두고 있었다. 반팔을 입고 있는 내 양팔에 내려앉은 서늘함을 다시 매만졌다. 언제 또 이렇게 세상과 빗겨 있을 수 있을까.


바이올린 한 대가 가장 높게 음을 높이고, 그 길을 또 하나의 바이올린이 따라올 적에,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잘 보내려 갖은 애를 썼다. 


잊지 말자. 소리는 앞에 있다. 당장을 떠올리지도, 지나가버린 일도 생각하지 말자. 내가 앉아 있는 곳은 어디인가. 내 발끝에는, 내 양옆에는 누가 있지? 무엇을 듣고 있는지도 생각하지 않고, 무엇이 앞에 있는지도 눈치채지 말고, 가만히, 아주 가만히 있었다. 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오늘의 2악장이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3악장은 가로선의 여유를 지나 세로선의 청량함이 돋보였다. 둥실둥실. 한들거리는 롱치마를 입고 왈츠와 비슷한 춤을 춰도 기분이 좋을 것 같다. 오랜만에 봐서 반가운 얼굴보다, 매일 아침마다 인사해서 오늘도 기분 좋게 건넬 수 있는 인사말 몇 가지와 닮아 있었다.


4악장에는 현악 4중주만이 전달해줄 수 있는 ‘어여쁨’과 ‘장난기’, 그리고 ‘행복감’이 몰려 있었다. 거기에 에스메의 색깔이라면? 로지 브라운 혹은 말린 장미, 그 어딘가의 향기를 품고 있겠지.

 

 

 

슈베르트 현악사중주 14번 D.810 〈죽음과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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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노트를 살펴보니, 1악장은 죽음에 대한 저항, 2악장은 죽음의 유혹, 3악장은 죽음의 승리, 그리고 4악장은 죽음의 춤으로 보기도 한다지?


에스메의 첫 번째 발버둥은 생각보다 고요했다. 감정적 뒤흔들림 없이, 오히려 뒤따라오는 것을 숲 안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울창한 6월이 이리 좋은데 어찌 멀리 떠날 수 있을까? 공기가 이리도 맑은데. 불안감 하나 없이 구름 사이를 빠르게 날아다니며 세상을 탐험하는 ‘무언가’. 중간마다 놓여 있는 비올라의 밑받침이 이리 듣기 좋다.


합을 맞추고 있지만, 합을 맞추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까? 누구 하나 뾰족한 모서리 없이, 일정한 음량을, 서로의 기품을, 딱 필요한 만큼만. 우리가 그저 편안히, 그냥 원래 이 정도의 수준은 기본이라 여기게끔. 어려운 줄도 모르고 그들의 속도를 탐미하게 만드는.


삶과 반대의 것의 유혹은 어떤 얼굴일까? 시작을 이렇게 나지막하게 내리깔아도 되나. 뭐가 되었든 놀라지 말라, 지나왔던 이야기들과 하등 다를 바 없다는 식으로 분위기를 이끌어 나가려나. 그 어떤 악장보다 관객석이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하던 그때에, 2악장을 지나올 수 있어 기뻤다. 


조명 아래 놓인 네 개의 몸이 아주 천천히 흐트러지지 않은 채 같은 어둠 안으로 들어갔다. 


유혹이 아니라 꼭꼭 숨겨놓은 염원이 아닐까 싶었다. 그날의 에스메는 로즈 브라운의 하트를 아주 조금씩 깎아내고, 조금씩 녹여내는 쪽에 가까웠다. 소리 안에서 천천히 시간을 보내며 아무것도 없던 자리로 되돌아가는 그때까지. 


반짝, 반짝. 윤이 나는 게 아니라, 태초부터 가지고 있는 양손 안의 빛으로 정열과 온화 사이를 오가야지. 눈을 깜빡, 깜빡이며 이리 오라 신호도 보내준다.


어찌 이리 소탈하고 순수한 마음 안에 연약한 마음들이 오고 갈 수 있을까? 죽음이 승리했다는 것은 결국 내가 가고자 하는 것과 정반대의 선택지가 눈앞에 펼쳐졌다는 것 아니겠나. 그런데 그게 무조건 나쁜 것일까? 그 길 끝에 뭐가 있을지는 어디까지나 가봐야만, 그 일을 겪는 그 순간에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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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춤이 도래했다. 정리된 때가 다가오고 있으니 그리 놀랄 필요도 없이, 끝을 기다릴 수 있어 좋았다. 네 개의 활이 숨을 몰아쉬듯 움직이고, 몸은 앞으로 조금씩 기울었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 빠른 움직임 속에서도 이상하게 허둥대는 느낌은 없었다. 

 

저들이 알아서 이미 잘 아는 길을 잘 파헤쳐주니 불안할 필요도 없이 가만히. 그냥, 행복하게 끝나는 이 이야기의 결말이 마냥 좋았다. 그렇게 제자리인 채로, 끝이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B블록 15열에 앉으면 말린 장미를 볼 수 있다는 것도, 그날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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