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서를 읽는 즐거움은 작품에 담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단 것이다. 작가의 생애와 타 작가들과의 교류부터 그 작품을 그릴 때의 상황, 다 알진 못하더라도 짐작은 할 수 있는 그 마음 등을 읽으며 그림이 하는 말에 더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된다. 보지 못했던 것들이 새로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미술관에 담긴 이야기를 하는 책이 있다. 프랑스에서 문학과 미술사를 공부하고 박물관학과 교수, 서울공예박물관 초대 관장을 지낸 김정화가 파리 골목길에서 걷고, 보고, 또 겪은 미술관 이야기가 바로 저서 '파리의 작은 미술관'에 담겨있다.
이 책은 작가가 직접 찍은 미술관 가는 길, 미술관 외관, 미술관 속 작품 사진이 큰 역할을 한다. 커서만 딸깍 클릭하면 관련된 대부분의 이미지와 정보를 볼 수 있는 루브르 같은 대형 미술관보다는 파리 구석구석의 작은 미술관으로의 산책에 초대해 준다.

작가의 발걸음에 맞춰 파리 길을 따라가고, 거리와 건물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 시대 화가들의 삶에 녹아드는 기분이다. 작가는 작품이나 미술관을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시간과 이야기의 축적으로 본다. 한 미술관에 얽힌 누군가의 생애를 통째로 만나볼 수 있는 경험이다.
가장 흥미로웠던 챕터는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이다. 한 저택이 어쩌다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이 되었는지, 무슨 이유로 인상주의 대표 미술관이 되었는지, 또 개인의 삶이 어떻게 미술관으로 녹아들었는지 들을 수 있다.
1860년, 파리 인근 땅을 파리로 편입하던 때에 ‘파시’라는 지역의 란느락 공원 주위 토지에 부르주아들이 저택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시기, 그곳에 미술품 애호가 쥘 마르모탕이 대저택을 구입했고, 그의 아들 폴 마르모탕이 후에 그것들을 상속받았다. 폴 마르모탕은 이성의 질서와 규율을 중시하는 신고전주의 미술에 사로잡혀 있었다. 사후에 저택과 수집품을 예술원에 기증하고 일반에 공개한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폴 마르모탕을 비롯한 당시 예술원의 사조는 인상주의 작품들을 인정하지 않았고, 더하여 혐오하기까지 했다. 전통 미학을 사수하려던 그의 의지와는 달리 이 미술관에는 인상주의 작품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의사이자 작품 수집가였던 조르주 드 벨리오는 딸 빅토린에게 재산과 작품들을 상속한다. 그리고 빅토린이 수차례에 걸쳐 인상주의 작품들을 기증하게 된다. 이후에도 여러 사람의 기증을 통해 이 미술관은 인상주의 작품이 가득한 곳이 되었고, 이름까지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한 미술관이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게 된 이야기가 이토록 재미있을 수 없다. 미술관 가는 길 풍경을 따라 위의 비하인드를 듣고 나면 작가가 보았던 그림 몇 점들이 이어서 소개된다. 이처럼 서사 위에 그림이 얹어질 때 비로소 할 수 있는 감상은 개별 작품 하나의 장황한 해설보다 값지다.
또 다른 미술관이 가진 재미있는 역사는 독자의 몫으로 남기기로 한다. 파리의 작고 개인적인 미술관으로 천천히 걸어가 보고 싶다면, 그 주위 크고 작은 것들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면 이만한 책이 없다.
어쩌면 미술관 이야기 안에서 화가의 정신을 만나는 계기가 되기도 할 테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