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어를 쓸 때와 한국어를 쓸 때의 내 모습이 조금 달라진다고 느낀다.
낯선 언어를 입에 담는 순간, 평소의 나를 겹겹이 싸고 있던 방어기제가 걷히고 조금 더 솔직하고 용감한 내가 된다.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다. 여행에선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낯선 시선을 장착하게 되기에, 평소라면 주저했을 일들 앞에서도 기꺼이 용기를 내는 나를 발견한다.
여행을 떠나면 우리는 이상하게도 처음 본 낯선 이에게 마음의 빗장을 툭 풀어버리곤 한다. 내 과거도, 배경도 모르는 타인 앞에서는 오히려 어떤 가면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스쳐 지나갈 사람'이라는 역설적인 안전거리가, 평생 지인에게도 꺼내지 못했던 깊은 고민을 불쑥 털어놓게 만드는 용기를 준다. 낯선 이의 눈동자를 거울삼아 비로소 내 진짜 얼굴을 마주하는 것, 여행만이 가져다주는 치유다.
한일합작영화 <쇼타씨의 마지막 출장>은 여행이 가져다주는 예상치 못한 인생의 터닝포인트들을 담백하게 그려낸다.
중년의 CEO 쇼타는 '강철맨 CEO'라는 책임감의 무게에 짓눌려 앞만 보고 달려왔고, 대성은 이별에 대한 미련이 가득해, 결국 헤어진 연인의 고향인 에노시마에 와버렸다.
이들은 너무 오랫동안 자기 안의 고민을 묵혀두어, 스스로는 도저히 답을 낼 수 없는 상태였다.
이 꽉 막힌 상황을 뚫어준 것은 바로 아주 낯선 타인이다.
마치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이방인과 심야 상담을 나누듯, 그들은 서로가 누구인지도 정확히 모른 채 상대의 진심을 알게 된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체면 때문에 차마 꺼내지 못했던 고백들이, 나와 아무 상관 없는 타인의 손과 목소리를 빌려서야 비로소 세상 밖으로 놓아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상대방의 가장 사적인 글을 대신 읽고 배달하게 된다. 끝을 말하는 사직서와 재회를 말하는 연애 편지다.
그 과정에서 대성은 사랑을 받기보다 베푸는 것의 기쁨을 깨닫는다. 자신처럼 사랑을 갈구하는 다른 이들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쇼타는 어색하게 느껴지기만 했던 생의 낭만을 우연히 누린다. 쇼타가 공장을 살피며 발견한 구멍들처럼, 두 사람은 상대의 빈틈을 용접처럼 단단하게 매워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기 내면의 진짜 답을 찾아간다.
쇼타는 아마 앞으로도 계속 일하며 살아갈 것이다.
다만, 아들을 향해 두 팔 벌려 뛰어가며 환하게 웃는 쇼타의 표정은 가족사진 속 그의 표정과 다르다.
유럽여행을 다녀왔을 때 내가 다짐했던 것이 하나 있다. '내가 지금 여행을 하고 있다'는 감각을 일상에서도 절대 잊지 말자는 것.
내가 매일 출퇴근하는 익숙한 도시 한복판에 있어도, 스스로를 여행객이라 여기며 살아가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한정된 기간 동안 머무른다는 생각을 하면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소중해지고, 그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존중하게 된다.
여행은 결국, 우리 모두가 이 자리의 손님임을 다시 상기시키니까.
두 남자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기억을 한아름 안은 채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온다.
마음이 길을 잃을 때면, 언제든 스스로에게 새로운 언어와 여행을 허락해야 하는 이유를 <쇼타씨의 마지막 출장>은 관객들에게 나직이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