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에게 이름을 적으면 누구든 죽일 수 있는 노트가 생긴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황당한 질문처럼 들리지만, 바로 이 가정이 전 세계 수천만 명을 매료시킨 일본 애니메이션 <데스노트>의 출발점이다. 2006년 방영된 이 작품은 단순한 추리물을 넘어 정의란 무엇인가, 인간은 신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죽인다'는 행위에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를 집요하게 묻는 철학적 드라마다.
같은 재능, 정반대의 가치관
이야기의 중심에는 두 명의 천재가 있다.

야가미 라이토는 완벽한 엘리트 고등학생이다. 수석, 잘생긴 외모, 모범적인 생활. 그의 삶에는 흠잡을 곳이 없다. 어느 날 그는 우연히 '데스노트'를 손에 넣는다. 이름과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의 이름을 노트에 적으면 그 사람이 죽는다는 규칙을 가진 노트. 라이토는 이를 기회로 여기고 세상의 범죄자들을 하나씩 죽이며 새로운 세계를 만들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신’이라 칭한다.
반대편에는 L이 있다. 이름도, 얼굴도, 나이도 공개되지 않은 세계 최고의 탐정. 늘 구부정한 자세로 설탕을 연거푸 집어넣으며 생각하는 이 기괴한 인물은, 라이토가 뿌리는 죽음의 흔적을 쫓는다.
살인의 조건
데스노트에는 명확한 규칙이 있다. 죽이려면 반드시 두 가지가 필요하다. 그 사람의 '이름'과 '얼굴'. 둘 중 하나라도 빠지면 노트는 작동하지 않는다.
얼핏 단순한 설정처럼 보이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 규칙은 상당히 철학적인 함의를 품고 있다. '이름'은 사회가 개인에게 부여한 정체성이다. 주민등록번호, 여권, 범죄 기록. 인간은 이름을 통해 제도 안에 편입된다. '얼굴'은 그 사람이 물리적으로 실존함을 증명하는 증거다. 즉, 데스노트의 살인은 두 가지가 모두 확인된 자에게만 작동한다. 사회 시스템에 등록되고, 육체적으로 특정된 존재.
여기서 역설이 발생한다. 라이토는 스스로를 '신'이라 부르지만, 그의 권력은 이름과 얼굴이라는 인간 사회의 신원 체계 위에서만 작동한다. 얼굴도 이름도 알 수 없는 사람에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진정한 신이라면 이름 없이도, 얼굴 없이도 심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라이토는 시스템을 무기로 삼은 또 다른 관료였던 셈이다. 그의 '신 놀이'는 결국 행정적 살인이었다.
반면, L은 국가도, 신원도, 제도도 그를 완전히 포획하지 못한 존재다. 그는 특정 국적도, 공식적인 직함도, 등록된 얼굴도 없다. 라이토의 권력이 시스템 위에서만 작동한다면, L의 익명성은 바로 그 시스템 바깥에 선 저항의 형태다.
한쪽에서는 사회 시스템이 부여한 이름과 얼굴을 무기 삼아 심판을 내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시스템 밖에서 그 심판을 의심한다. 라이토가 L을 이기기 위해서는 결국 시스템 바깥의 방법을 동원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지키려 했던 논리를 스스로 무너뜨린다.
그러나 데스노트는 애초에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사신들이 인간의 수명을 빼앗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이다. 죽음을 다루는 권력은 처음부터 인간에게 주어진 적이 없다.
그러나 그 노트가 인간의 손에 들어온 순간, 죽음의 권력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여기서 사신은 정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존재들이다. 극 중 등장하는 사신 류크에게 인간의 죽음은 유희에 가깝다. 그에게 그것은 밥을 먹는 사소한 행위일 뿐이다. 인간계에 노트를 떨어뜨린 것도, 단지 심심하다는 이유 그뿐이다. 그들은 죽음에 무감하기에 도덕적 판단이 아닌 단순 행위에 그친다.
인간의 몸으로 신의 심판을 내리려던 시도. 그것은 결국 인간 사회의 신원 체계 위에서 작동하는 또 하나의 잔인한 권력이었다.
라이토는 어떻게 키라(KIRA)가 되었는가
흥미로운 것은 많은 시청자가 L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라이토에게 감정 이입을 경험한다는 점이다. 아마 우리도 어딘가에서 비슷한 분노를 느껴본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죄를 저지르고도 벌받지 않는 사람들, 반복되는 뉴스 속 흉악 범죄자들, 제도가 보호하지 못하는 피해자들. 데스노트는 그런 무력감에 대한 가장 극단적인 대리만족이다. 라이토의 욕망은 우리 내면의 어두운 충동을 스크린 위에 꺼내 놓는다.
극 중 라이토가 범죄자들을 죽이기 시작하자, 범죄율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심판자 ‘키라(KIRA)’가 제도가 해결하지 못한 것들을 해결했다고 믿으며 그를 신으로 추앙한다. 처벌받지 않는 세상에 지친 사람들이, 누군가가 대신 심판해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키라는 그러한 집단적 욕망이 투영된 존재다.
개개인의 분노와 스스로를 선이라도 믿는 오만함이 라이토를 신의 자리에 앉힌다.
인간이 신의 권력을 손에 넣을 때
<데스노트>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는 이유는, 이 작품이 끝내 정답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라이토도, L도 완전한 선(善)이 아니다.
죽음의 조건을 가진 노트는 정의를 실현했는가, 아니면 또 다른 폭력을 낳았는가.
작품이 진짜로 묻는 것은 라이토도 L도 아닌, 당신에 관한 것이다.
이름과 얼굴이 있는 사람만 죽일 수 있는 노트가 생겼을 때—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는가.
그리고 당신의 곁에 키라를 신이라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무엇이라 말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