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우리는 예술을 언제 찾게 되는가. 무언가를 발견한 사람보다는 찾고 싶은 사람들이 더욱 예술에 끌리기 마련이다. 그중 답을 찾기보다, 질문 자체를 얻기 위해 나선 사람들도 있다.

 

예술 감상과 여행은 닮아있다. 낯선 공간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다. 그런 경험을 통해 삶에서 맞닥뜨리는 질문과 대답을 발견할 것이라 굳게 믿으며, 우리는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렇기에 주인공이 여행하는 과정을 그린 로드트립은 곧 관객의 여행이기도 하다. 행선지가 있거나 혹은 없는 여행길에 오르며 관객은 인물의 여행을 응원하는 동시에 자신 또한 어딘가에 도달할 수 있길 바란다. 

 

짐 자무쉬의 <천국보다 낯선>은 이러한 로드무비의 대표로 꼽히는 영화다. 여행자는 윌리, 에디, 에바, 세 명의 청년이다. 그들 모두는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알아내고자 떠난 이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여행 내내 자신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되묻는다.

 

건조한 흑백 화면 속에서 인물들은 정적이고 절제된 연기로 움직인다. 영화의 장면들은 유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툭툭 끊어져 단절되어 있다. 감독은 분리된 장면과 장면 사이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검은 화면으로 채워 넣어 섬세한 여운을 전달한다. 이렇듯 영화에서 정적은 대사만큼이나 중요한 순간이다. 관객은 대사가 없는 순간에 가장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메리칸 드림은 사람을 어디로 이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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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윌리의 집에 사촌인 에바가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윌리는 오래전 헝가리를 떠나 뉴욕에 정착한 인물이다. 그는 헝가리어보다는 영어를 더 자주 사용하며, 미국의 문화를 완벽히 체화하였다. 윌리는 10일 동안 에바와 함께 지내면서 미국의 일상과 쿼터백을 알려준다. 마냥 귀찮게만 여겨졌던 에바가 마침내 떠나고 나자 그는 새삼스러운 적막을 느낀다.

 

1부에서 에바의 여행은 확고한 목적지가 있다. 부다페스트에서 클리블랜드로. 에바에게 윌리의 집은 잠시 거쳐 가는 장소일 뿐이다. 윌리의 집을 나서며 윌리가 선물한 원피스를 버리고 떠나듯이, 가야 할 곳이 있는 그는 뉴욕이라는 도시에 붙잡히지 않는다. 윌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는 어디로도 갈 곳이 없었기에 뉴욕에 남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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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가 떠나고 쓸쓸히 맥주를 마시는 에디와 윌리 사이엔 어떤 대화도 오가지 않는다. 목적이 없고 무엇도 꿈꾸지 않는 청년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은 그저 공허한 허상에 불과하다. 노동을 멸시하고 도박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이런 삶이 지속되지는 않을 거라는 막연한 예감 때문에, 그들은 결국 여행길로 오를 수밖에 없다. 확신을 가지고 걸음을 멈추지 않던 에바를 찾아가면 무언가 알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을까. 그들은 클리블랜드로 향한다.

 

그러나 클리블랜드에서 재회한 에바는 그들에게 기대했던 답을 주지 못한다. 클리블랜드는 적막하고 황량한 도시다. 에바마저 그들에게 자신을 어디론가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자 셋은 다시 목적 없는 여행을 시작한다. 플로리다에 대한 불안한 환상만이 손에 쥐어진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가지 못해 뿔뿔이 흩어지게 되며, 결국 그 누구도 자신의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렇듯 세 인물의 여정은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사회가 약속했던 꿈과 그 공허를 마주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웃기지 않아? 새로운 곳에 왔는데 모든 게 다 그대로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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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는 헝가리 사람이 아닌 아메리칸으로 살고자 한다. 에디는 영화 내내 주관 없이 휘둘린다. 에바는 자신의 고향으로 향하는 길 앞에서 주저하다가 결국 아무도 없는 모텔로 돌아온다. 그들 모두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이방인이다. 미국의 화려한 자본도, 오락도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을 마련해주지는 않는다.

 

결국 <천국보다 낯선>의 여정은 도착을 위한 길이 아니라, 길 위에서 자신이 낯설어지는 순간에 관한 이야기다. 그 낯섦 속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잠시나마 돌아볼 수 있다. 어쩌면 예술이란 끝없이 이어지는 이 방황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관객은 무엇을 보기 위해 이 영화를 찾았는가. 영화는 계속해서 이동하지만 영화 전반에 자리한 답답함은 끝까지 가시지 않고 오히려 정체된 상태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낼 뿐이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길 위에 서 있다. 목적지에 닿지 못한 세 사람처럼, 우리 역시 답 대신 질문을 품은 채 다음 순간을 기다린다. <천국보다 낯선>은 그 미완의 여정 속에서 삶이 얼마나 낯설고, 때로는 막막한 감정 위에서만 유지되는 것인지를 조용히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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