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쿠나’는 2018년 앨범 ‘끝이 없는 꿈을 그대에게 줄게요’로 데뷔한 국내 밴드이다. 대표곡으로는 ‘YOU’, ‘Far Away’, ‘언제나 여름’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런 형식적인 말보다도 그들을 더욱 확연히 나타낼 수 있는 단어가 존재한다.
사랑.
사랑만큼 라쿠나를 뚜렷하게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그들의 음악은 모두 사랑이 스며있다. 각기 다른 형태의 사랑을 자신들만의 언어로 어렴풋이 전하는 이들, 그렇기에 라쿠나의 치환은 곧, 사랑이라 하더라도 과언이 아닐 테다.
나는 그들이 직조한 곡을 애정한다. 사랑이라는 근원적 감정이 조금은 결핍된 것만 같은 시대에서 그러한 감정을 끝없이 발화하는 이들을 응원하는 마음도 없지 않다. 그렇다면 그들이 전하는 사랑은 도대체 무엇이며, 어떠한 형상을 띄고 있는가. 지금 이 순간 라쿠나의 세계에 발을 딛어 본다.
YOU
‘YOU’는 앨범 Summer Tales에 수록된 타이틀곡으로, 꾸깃꾸깃한 종이에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을 서툴고도 빼곡히 적어 내려가는 노래다.
“사람들은 싫지만 너는 좋아”
사랑을 발음하려고만 하면 도무지 입을 뗄 수가 없다. 입 속에서 데굴거리며 분투하는 단어들을 마음이 자꾸만 끌어내린다. 그래서 매번 상대방의 언어를 빌려올 수밖에 없다. 잔뜩 빌려온 표현이 쏟아지며 소년의 사랑 이야기가 쓰였다. 서투르지만 솔직하게, 사랑한다는 말을 대신할 다섯 편의 이야기.
- Summer Tales 앨범 소개
나의 마음을 ‘사랑’이라 칭할 때면 괜스레 목이 메인다. 사랑을 입 밖으로 뱉는 것은 왜 이리 어려울까. 이 때문에 더욱 사랑을 내비치지 않게 된 이들도 있을 것이다. 라쿠나는 이런 우리의 심정을 대변한다. 사랑이라는 직접적인 말 없이도 여타 표현을 빌려와 열렬한 마음을 전하려 시도한다.
언제나 사랑은 끝나지만 꼭
너와 내 마음은 사랑이 아냐
이름만 빌린 어떤 마음이고
그건 절대 끝나지 않을 거야
가사는 소년의 풋풋한 심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자신의 마음을 사랑이라는 틀 안에 가두기엔 그는 이 감정이 영원했으면 한다. 그렇기에 소년은 사랑이 단지 그 이름을 빌렸을 뿐이라 말한다. 사랑이란 본래 이름 없이 부유하는 감정, 어쩌면 우리의 마음을 전하는데 그 이름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여름
앞서 소개한 YOU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여름’은 자신의 마음을 사랑이라는 단어 안에 담을 수 없음을 표현하는 곡이다. YOU가 사랑을 발화하는 것에 서툰 소년의 이야기라면, 언제나 여름은 세상이 정의하는 사랑에 얽매이고 싶지 않은 이의 고백이라 할 수 있다.
사랑은 그저 단어일 뿐이야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없어서
나의 전부를
나의 모든 걸
나의 여름을
사랑이란 말에 담는 게 아쉬울 뿐이야
빛을 사이에 두고 밤새 이야기했던 새벽, 온 세상이 무너지더라도 서로의 곁을 지켜준 우리. 그는 이러한 순간을, 그것에서 비롯된 감정을 사랑이란 말에 담는 걸 아쉬워한다. 그 한 단어로 설명하기엔 너무나도 복잡하고 커다란 마음이므로.
해당 곡이 흥미로운 점은 ‘언어유희’이다. “사랑은 그저 단어일 뿐이야”를 직접 발음해 보면 언뜻 “사랑은 그저 다 너일 뿐이야”로 들리기도 한다. 이는 마치 텍스트가
구현할 수 없는 음악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활자로만 머물렀을 때는 들을 수 없는 말, 사랑은 단어일 뿐이지만 동시에 너라는 고백. 보컬의 목소리를 횡단했을 때 비로소 전해지는 재치 있는 가사는 음악이라는 영역의 힘 고스란히 증명한다.
Sober
설명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건
사랑과 지구의 종말밖엔 없다고
널 보면 믿을 수 있어
어떤 게 우리에게 먼저 닿는대도
그건 너와 나의
세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일 뿐인 걸
라쿠나에게 사랑이란 설명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어떠한 부연이 없더라도 알아챌 수 있는 신기한 감정, ‘Sober’은 그런 순간을 노래한다. 사랑과 종말 중 어떤 것이 먼저 닿더라도 그 역시 너와 나의 세계가 탄생하는 또 다른 순간이라 말하는 그들.
이는 일본의 서브컬처에서 빈번히 사용되는 ‘세카이계(セカイ系)*’의 양상과도 닮았다. 너를 보고 있으면 “문밖의 세상이 불타고 있다 해도 괜찮을 것 같다”라고 말하는 화자는 어떠한 절망 속에 있더라도 사랑으로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다. 네가 있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든 괜찮다고. 그토록 작렬하는 마음을 라쿠나는 음악에 기록한 것이다.
*세카이계는 작품 속 주인공과 그 일행 등 개인의 관계 및 문제가 세계의 운명으로 이어지는 장르이다. ‘세카이’는 세계를 지칭하는 일본어로, 세카이계는 ‘ 세계물’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주로 SF 장르에서 활발하게 활용된다.
라쿠나의 사랑은 열렬하면서도 서투르며, 그럼에도 망설이지 않는다. 도리어 ‘사랑’이라는 단어가 담기에 이 마음은 너무나도 벅차다는 것을 우리에게 전한다. 사랑을 우회하여 사랑을 전하는 그들, 어떤 종말 앞에서도 사랑하는 그들.
라쿠나가 앞으로 선보일 사랑은 어떤 형태일까? 자그마한 기대를 품어 보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