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밖을 나서면 숨이 턱 막히는 찜통 같은 더위와 조그만 움직여도 땀이 삐질삐질 흐르게 만드는 태양빛! 올해도 어김없이, 어쩌면 유난히도 더웠던 여름을 당신들은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하다.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잠시 고민하겠지만 나는 결국 여름을 고를 것 같다. 덥고 습하고 땀나고 짜증도 나지만, 그럼에도 이 계절은 모든 생명들이 그 어떤 때보다 강한 생명력을 전방위로 뽐내는 순간이니까. 덕분에 나까지 괜히 힘이 나고, 없던 에너지까지 생기는 듯한 느낌이다.
군대에서 깨달은 사실 하나는 여름풀들의 대단함이다. 무릎 아래밖에 오지 않던 풀들도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끝도 없이 자라난다. 무자비한 태양 아래 자신들의 기운을 뽐내는 풀들의 키가 어느덧 나와 비슷해지는 광경을 보면 경이로움을 넘어, 나 역시 어떤 이름 모를 객기가 샘솟는달까.

"여름은 동사의 계절
뻗고, 자라고, 흐르고, 번지고, 솟는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글판에 걸려 있던 이재무 시인의 시구처럼, 여름의 진한 푸르름 속 약동하는 젊음의 에너지는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그래서 그런지 태양빛을 향해 무모한 도전을 하는 저 푸른 잎들처럼, 나도 괜히 무언가 해보고 싶어진다.
군인이던 시절, 나의 선임 중 축구선수 출신에 탄탄한 몸을 자랑하던 형은 쉬는 날마다 열을 잔뜩 받아 아지랑이가 이글거리는 그늘 하나 없는 땅에 매트를 깔고 속옷 차림으로 태닝을 하곤 했다. 안그래도 탄탄한 몸에 구릿빛 피부가 더해지니 더 멋져 보였기 때문일까. 언젠가는 그 형에게 같이 태닝하고 싶다고 말했다. 혼자라면 시도할 생각조차 못했을 태닝을, 그 형 덕분에 배웠다.
집에서 가져온 태닝오일을 온 몸에 잔뜩 바르고 이글거리는 태양을 향해 정면으로 눕는다. 온몸 구석구석에 느껴지는 태양빛을 천천히 느껴가며, 오일로 미끌거리는 피부가 땀으로 젖을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린다. 소고기를 굽듯 앞뒤로 각각 20분씩 진득하게 구워낸다. 처음엔 끝없이 느껴지던 시간이지만, 주변에 보이는 이름모를 길쭉한 풀들을 동료삼아 버티다 보면 어느덧 차츰 나도 풀들의 일부가 된다.
그렇게 40분 정도의 태닝이 마무리된다. 내 몸에서 땀과 함께 에너지가 빠져나간듯 기진맥진하다. 수건으로 몸을 닦고 시원한 물을 원하는 만큼 들이킨다. 온몸에 수분이 퍼져나가는 것을 느낀다는 건 살아있는 존재로서 몇 없는 특권이다.
시원하게 몸을 씻고 나와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내 방, 내 침대에 누우면 그게 곧 천국이다. 난 이 기분을 절대 못 잊는다. 넘치도록 받은 비타민D 때문인지 괜히 뿌듯하기까지 하다.

이제는 군인이 아닌 사회인으로 살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숨 막히는 더위를 참아가며 종종 태닝을 즐긴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는 군대보다 상의탈의의 자유를 만끽하기 어려운 곳이 틀림없다. 그래도 남들의 시선을 잠시 무시하고 나만의 공간에서 즐기는 태닝은 충분히 값진 일이다.
지구 상 모든 생명들의 에너지의 근원이자 옛적부터 경외의 대상이었던 태양을 나의 맨살로 느껴볼 수 있는 기회. 벌거벗은 피부 위로 태양빛이 닿는 그 잠깐의 순간,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혹시 이 글을 읽고 누군가 태닝을 해보고 싶어진다면 참 기쁠 것 같다. 선크림을 두껍게 바르고 긴팔 긴바지로 자외선을 피해서 얻어낸 하얀 피부만을 미의 기준으로 여기는 한국사회에서 구릿빛 피부의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건 기쁜 일이다.
태닝한 이들이 많아지면 우리 사회가 단지 외적으로만 다양해지는 게 아니라, 살아있음을 제대로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태양빛에 대등하게 덤비며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풀들처럼, 흰 피부가 아름다움의 기준이라는 사회에 맞서는 구릿빛 인간들의 유쾌한 반란을 꿈꿔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