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개봉한 영화 <좀비딸>에는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좀비로 변한 딸 수아가, 자아를 잃어버린 듯 멍한 눈빛으로 서 있다가 보아의 〈No.1〉이 흐르는 순간, 몸 전체가 음악에 반응하기 시작한다. 눈빛은 여전히 공허했지만, 분명 그 안 어딘가에 무언가가 살아남아 있었다. 보아의 〈No.1〉은 수아에게 있어서 단순한 추억의 파편이 아니라, ‘내가 누구였는가’를 증명해 주는 마지막 흔적이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나에게도 저런 노래가 있을까? 세상이 다 사라져도 끝내 내 안에서 울릴 수 있는, 나를 나타낼 수 있는 노래가 있을까?”
사람마다 각자의 ‘인생 노래’가 있다. 첫사랑의 순간을 불러내는 발라드, 가족과 함께 웃던 여름날을 떠올리게 하는 가요, 혹은 인생의 굴곡을 견디게 해준 힘의 노래. 때로는 졸업식 날 교정에 울려 퍼지던 교가가 될 수도 있고, 오래도록 흥얼거리던 팝송의 한 소절일 수도 있다. 그런 노래는 단순한 취향을 넘어, 삶의 흔적을 비추는 거울이자 나라는 사람을 붙잡아 주는 단단한 끈이 된다.
나는 오랫동안 생각했다. 내 인생의 ost 는 뭘까? 그러던 중, 나는 문득 하이라이트의 〈어쩔 수 없지 뭐〉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나는 그저 신나는 멜로디에만 집중하며 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노래가 내 삶의 태도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간은 나를 지나쳐 갔지만
왜 아직 그 때에 머무르려 해
되돌리기엔 너무 늦어버린
기억은 이제 하늘 위로
어쩔 수 없지 뭐
떠나간 걸 애써 붙잡고 있지마
하는 수 없지 뭐
이 시간도 아픔도 결국 지나가니까 Hey
오늘도 곧 어제가 돼
언젠가는 추억이 될 거야
웃으며 다 보내줄래
이 시간도 아픔도 결국 지나가니까 Hey
다 좋을 수도 없고 다 나쁠 수도 없어
매일 반복되는 하루가 특별할 순 없어
일어나지도 않은 걸 왜 걱정하고 있어
지금 이 순간에도 저 해는 저물고 있어
이 노래는 절망적인 순간에 가볍게 속삭인다. “어쩔 수 없지 뭐.” 그러나 그 말은 포기가 아니다. 놓아야 할 것을 놓아주는 용기, 지나간 상처를 결국 추억으로 묻어낼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깨달음이 그 안에 담겨 있다.
돌아보면 내 삶은 이 노래의 가사와 닮아 있었다. 관계에서 깊은 상처를 받았을 때도, 앞날이 막막해 밤새 뒤척일 때도, 나는 늘 이렇게 생각했다. “어쩔 수 없지 뭐.” 그 말 한마디가 그런 상황들을 완전히 지워주지는 못하지만, 대신 나를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 주었다. 세상을 다 이겨내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나 자신을 지켜낼 수 있었던 힘은 그 단순한 말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내게 〈어쩔 수 없지 뭐〉는 내 ‘삶의 철학’이다. 세상은 늘 예기치 않게 흘러가고, 사람은 수없이 좌절하고 다시 일어선다. 그때마다 내가 택한 태도는 한결같았다. 붙잡을 수 없는 것에 매달리기보다는 놓아주고, 그 대신 나를 소중히 여기며 앞으로 걸어가는 일.
누군가에게는 보아의 〈No.1〉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발라드나 동요가 그 사람의 배경음악일 것이다. 하지만 내 인생을 설명할 수 있는 노래를 딱 하나 고르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하이라이트의 〈어쩔 수 없지 뭐〉를 택한다.
아마 먼 훗날, 내 기억이 흐릿해지고 세상의 풍경이 하나둘 사라질지라도 이 노래만큼은 끝내 내 안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더 이상 많은 것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음악이 내 내면의 어딘가를 두드린다면, 나는 여전히 미소 지으며 이렇게 중얼거릴 것이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