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휴가 어디로 가세요?"
"저 딱히 안 가요. 그냥 집에 있죠, 뭐."
여행을 즐기지 않는다. 이제는 휴가가 기다려지지도 않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여행보다 중요한 게 있었고, 여행보다 즐거운 것들로도 충분한 삶이었다.
그런데 지난 7월, 날짜와 숙소만 정한 채 가족들과 삼척으로 무작정 떠났다.
그냥 별다른 계획 없이 떠나게 되었다. 유일한 계획이라곤, 가평 휴게소에 들러 호두과자를 사 먹는 것. 엄마가 그 호두과자를 정말 좋아하시기 때문이었다.
평소 같았다면 시간 단위로 동선을 짜고 드레스코드까지 맞추며 <서현 투어>라는 이름까지 붙여 완벽한 여행을 계획했을 우리 가족인데, 그날따라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아무 계획이 없으니 오히려 걱정도 없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을 우연에게 맡긴 채 차에 몸을 실었다.
삼척에서 우연히 마주한 모든 순간이 행복했다. 창밖으로 펼쳐진 바다를 보며 아빠가 잔뜩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
"나 그냥 여기 확 들어가 버릴까?"
"들어가면 들어가는 거지 들어가 버리는 건 또 뭐야. 어, 들어가 버려."
![[포맷변환][크기변환]KakaoTalk_20250815_162337730.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8/20250815183334_risdmqag.jpg)
아빠는 그길로 차를 세우고 바다에 풍덩 뛰어들었다. 앞도 뒤도 없이 물에 들어가 버리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자유롭고 행복해 보였다. 처음엔 '저 모자 바닷물에 젖으면 상할 텐데.' 같은 생각을 하며 그런 아빠를 지켜만 봤던 것 같다.
그러다 더운데 발만 담가볼까 했다가, 종아리까지는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가, 결국은 머리까지 흠뻑 젖고 말았다. 1박 2일의 가벼운 외출 정도로 생각했기에 여벌 바지도 챙기지 않았다. 당장 갈아입을 바지가 없었지만, 물속에 있는 동안은 그런 걱정 없이 그 순간에만 집중했다.
원래 내 나름의 계획대로라면 물놀이하는 아빠를 지켜보며 사진이나 열심히 찍어주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다가 숙소로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완벽하게 틀어졌다. 우연히 찾아간 바다는 유독 맑고 예뻤고, 모래는 곱고 햇볕은 뜨거웠다. 바다가 나를 부른다는 말이 허튼소리는 아니었나 보다.
일단 좀 걸어볼까?
![[포맷변환][크기변환]KakaoTalk_20250815_182346473.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8/20250815183455_uvgppcod.jpg)
친구와 을지로에서 저녁을 먹고 너무 배불러서 일단 걷기로 했다. 걷다 보니 남산타워가 보였고, 커피 한 잔을 사 들고 무작정 남산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충무로역을 지나 끝없는 오르막길을 따라 걸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친구와 어떤 아이돌이 더 내 스타일인지 따위의 이야기를 하며 걸었다.
중간지점에 왔을 때쯤이었나, 이제는 길가에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숨은 헐떡이고 등줄기로 흐르는 땀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포맷변환][크기변환]KakaoTalk_20250815_182346473_01.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8/20250815183519_gsgbqfax.jpg)
'지금이라도 다시 내려갈까?'
절반이나 왔다고 생각했다가도 아직 반이나 더 가야 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래도 반이나 왔는데 아깝잖아. 그냥 마저 올라갈까?'
다짐하기가 무섭게 결국 다시 내려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나서야 알았다. 여기서 내려가려면 남산을 거쳐 가야 한다는 사실을. 결국 우리는 원래 계획대로(?) 남산에 도착했다. 체력 앞에 무너져 깔끔히 포기했던 남산에 결국 오르고 나니 그대로 그냥 내려갔으면 후회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맷변환][크기변환]KakaoTalk_20250815_180428254_01.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8/20250815183543_fyuviyfn.jpg)
힘든 것도 잠시, 한눈에 들어오는 서울 시내와 그 위로 지고 있는 노을이 우리를 반겼다. 타이밍도 완벽했다. 딱 노을이 지는 시간에 우리가 남산에 올라왔다는 것이 운명적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외국인 관광객으로 붐비는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우리를 보며 마치 반대로 우리가 해외여행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포맷변환][크기변환]KakaoTalk_20250815_180428254_02.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8/20250815183620_chymervo.jpg)
여행 전 설렘을 가득 안고 계획하는 것, 짐을 싸는 순간까지도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짐 싸는 걸 유독 귀찮아했고 계획도 힘들어했다. 계획이 틀어질 것까지 대비해 Plan B까지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계획하는 과정에서 모든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것도 버거웠고,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짜증이 났다.
그랬기에 이번 경험은 특별했다. 계획했다면 절대 보지 못했을 장면들이 내게 남았다. 계획 없이 떠난 여정은 모든 게 우연이었고 그 우연은 힘들고 짜증 나는 순간조차 헛웃음으로 흘려보내게 했다.
결국 틀어짐이 아니라 달라짐이었다.
우연은, 우연이기에 더욱 특별하다. 우연히 마주친 것들은 다양한 형태의 감정으로 돌아온다. 계획에 없었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가끔은 우연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만들어두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며 나의 다음 여행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