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리 데이비드 소로 그래픽노블 : 앞으로 무슨 삶을 살아갈 것인가?
당신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알고 있는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20세에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뒤,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는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보게 된다. 그는 다양한 직업을 고민하다가 공립 학교의 교사로 근무하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오래 일하지는 못했다. 학생을 때리라는 지시를 받자 학교를 바로 그만 둔 것이다. 예전 한국도 교사가 학생에게 가하는 체벌이 당연시 여겨진 것처럼 그 당시 소로가 근무했던 학교도 그런 분위기였다. 사람들은 멀쩡한 직업을 그만두는 소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또, 소로의 원래 이름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아니었다. 원래 이름은 세례명으로 받은, 데이비드 헨리 소로였다. 그런데 그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는 이름이 좀 더 잘 붙는다는 이유로 개명을 하게 된다. 세례명을 자기 멋대로 바꾸는 사람을 그 당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소로는 이후 연필 공장에 다니게 된다. 보다 심이 더 단단한 연필심을 개발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사업을 계속 하는 것이 행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연필 공장 일도 그만 두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 당시 소로의 절친인 랠프 월도 에머슨은 작가이자 연설가로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고 있었다. 소로는 그를 닮고 싶은 나머지 매일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사실 매일 일기를 쓰기는 커녕, 매일 조금의 기록을 남기는 일 또한 쉬운 것이 아니다. 기록은 자신을 돌보고 아끼는 순간의 축적이기 때문이다. 즉,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지 못한다면 글을 못 쓴다. 일기를 쓴다는 행위 자체는 내면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관해 서술하는 것이다. 내면과 외부 환경에 관해 알려면, 세밀한 관심과 고요한 집중이 요구된다. 어쩌면 현대에선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도파민 중독을 초래하는 숏폼 때문이지 않을까.
소로 역시 매일 글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부모의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 집은 하숙인들과 손님들로 시끄러운 적이 많았다. 독립해서 글을 쓰기 위해선 돈을 벌어야 했다. 돈을 벌기 위해선 글을 쓰는 시간을 줄여야 했다. 무언가 사색하고 글을 쓰기 위해선 빈틈의 시간이 필요하다.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하고 몰두하는 시간 말이다. 글쓰기에 관해 고민하다가, 에머슨이 월든 호수 옆 삼림지를 사들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로는 그 땅에 작은 집을 짓고, 글쓰기를 하며 살겠다고 제안했다. 그 결과 소로는 밭을 경작하는 시간 빼고는 글쓰는 시간에 모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는 자연 친화적이면서 자유롭게 공부와 글쓰기를 하며 고즈넉하게 살아갔다. 월든 호수에서 몸을 씻고, 여러 새들의 지저귐을 들었다. 만일 우리가 소로처럼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살아간다면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최소한의 도구와 자연만으로 하루를 온전히 살아갈 수 있겠는가. 소로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 삶에서 가장 필요한 것들만을 남긴다면, 단순한 방식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서 살아간다면, 열정에 따라 삶의 방향을 정한다면, 우리는 보통의 경우에는 기대하지 못하는 성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소로가 약 2년간 숲속에서 생활한 기록은 월든이란 책으로 출간되게 된다. 또한 그가 숲속에서 있다가 구두 수선을 맡긴 마을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 소로는 마을을 갔다가 인두세를 납부하지 않은 이유로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는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를 가축처럼 파는 상원의 권위를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세금을 납부하지 않았다. 이 경험은 훗날 시민 불복종이란 책을 쓰는 기폭제가 된다. 이 그래픽노블은 소로가 월든에서 겪은 경험을 간단히 풀어냈다. 소로에 관해 잘 몰랐던 사람도 그의 핵심 정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었다. 그는 문명 속에서 영혼이 바라는 삶을 살 수 없다고 보았다. 월든이란 환경에서, 삶을 정직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사상을 품거나 학파를 세우는 일이 아니다. 이는 지혜를 너무나 사랑하여 그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단순하고, 독립적이고, 담대하고, 믿음이 있는 삶을. 또한 삶의 문제들을 푸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만이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
소로는 삶이 초라해 보일지라도, 그 삶을 마주해서 살아보라고 조언한다. 그는 단순하고 현명하게 살아보라고 권한다. 다른 사람의 리듬에 맞추지 말고, 본인만의 리듬을 따라서. 자연의 순수한 리듬처럼. 다양한 생명체들이 각자 본질대로 살아가듯이. 소로는 타인과 규범에 맞춰 순응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요한 절망 속에 살고 있다고. 소로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고,사회적 기준과 타인의 기대에 맞춰 살다가 결국 내면의 갈망을 억눌러버린 사람들을 안쓰러워했다. 소로는 저마다 스스로의 리듬을 찾아야 한다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라고 조언한다.
나는 실험을 통해서 적어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꿈을 향해서 자신 있게 나아가고, 자신이 그리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보통의 경우에는 기대하지 못하는 성공을 얻을 수 있음을.
당신에게 ‘최고의 하루’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하루는 여행지의 멋진 풍경, 사랑하는 사람과의 기념일, 또는 인생의 중요한 성취가 이루어진 순간일 것이다. 그러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에서 전혀 다른 형태의 하루를 보여준다. 그 하루는 조용하고, 단조롭고, 때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는 자연속에서 기묘한 자유를 느끼며 살아간다. 매일 아침 호숫가에서 눈을 뜨면 새소리가 들린다. 그는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식물들을 재배하고, 들판을 걷고, 생각을 기록했다. 해가 저물면 그는 그날 하루를 “살았음”에 대해 충분히 만족한다.
소로에게 하루가 특별한 이유는 삶이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았고, 무언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시간을 쓰고,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 보았으며, 자연이 주는 침묵과 생명감 속에서 하루를 채웠다.
오늘날 우리의 하루는 대부분 쪼개져 있다. 알람에 의해 잠에서 깨고, 일정에 따라 움직이며, 사람과 약속하고, 휴대폰 속 세상에 몰두한다. 심지어 쉬는 날조차도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소로는 말한다. 최고의 하루는, 외부의 기준이 아니라 내면의 리듬에 따라 흘러가는 날이라고. 그에게 하루는 단지 시간의 단위가 아니라, 존재의 단위였다. 우리도 소로의 삶을 느껴볼 수 있을까. 한 시간만이라도 휴대폰을 꺼두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는건 어떨까.
우리는 마치 퍼즐을 맞추듯 인생을 살아간다. 미래의 나를 상상하며, 오늘이라는 조각을 이리저리 맞추고 다듬는다. 그러나 인생이란 퍼즐은 불분명한 때가 많다. 월든에서 소로의 하루는 새벽에 일어나 자연의 소리를 듣고, 호수 위 안개를 응시하고, 사색에 잠기고, 고요 속에 글을 쓰는 것으로 마감된다. 그의 하루에는 우리처럼 성공도 없고, 뉴스도 없고, SNS도 없다. 하지만 소로는 자연과 보내는 하루를 완전한 퍼즐 그림처럼 소중하게 간직하는거 같다. 우리도 소로처럼 내면의 열정, 리듬에 맞춰 살아간다면, 단 하루라도 삶의 본질을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카르페디엠,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를 즐기면서 말이다. 우리는 종종 하루를 무시한다. ‘오늘은 그냥 흘려보내도 돼, 내일이 있으니까’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우린 인생이란 퍼즐 전체를 완성해야만 의미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소로는 하루라도 완전한 퍼즐 그림처럼 살아낸다. 조용히, 집중해서, 자신의 호흡과 자연의 리듬에 귀 기울이며.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많은 퍼즐 조각을 대충 끼워 맞추며 살아가고 있는가. 우린 완전한 퍼즐 그림을 원하지만, 너무나도 불분명하고 불확실한 세상에 살고 있다. 가끔은 완전한 퍼즐을 내려놓고, 하나의 조각을 깊이 바라보는 건 어떨까. 인생이란 퍼즐의 완성은 어느 날의 폭발적인 성취가 아니라, 아무도 모르게 충실히 살아낸 ‘하루’들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의 하루는 인생의 퍼즐에서 가장 정교하고 반짝이는 조각일 것이다. 천천히 하루라는 퍼즐을 충실히 살아간다면, 전체 그림은 언젠가, 저절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