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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한여름의 슈퍼마리오

결국은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 태어난 우리

by 채혜인 에디터
2025.07.25 11:47

 

 

취업을 준비하고서부터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인생에서 권고사항 정도로만 여겨야 할 정도로 더 중요한 우선순위에 있는 일들이 많았다. 하루 계획을 짤 때 더 급하고 필요한 것들에만 집중하다 보니 언제나 체크되지 못하고 남는 일들은 ‘혹시나 할 수 있을까’ 하고 적어두었던 기대를 무색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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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아쉬움으로 끝났으면 괜찮았을 텐데 그런 하루가 쌓이다 보니 회색 인간이 되어갔다. 정확히 말하면 하루를 충만하게 살았다는 느낌을 더 이상 받지 못하는 인간이 된 것 같았다. 적은 돈으로는 메워진 티조차 나지 않는 마이너스 통장처럼, 아무리 하루를 열심히 살아도 잠 못 드는 밤은 여전했고 마음이 가난하다 못해 찢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단지 권고사항이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 내 삶을 지탱하는 바퀴 중 하나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퀴없는 수레를 굴리려니 매일이 짜증이고 부담이었던 거지. 바퀴를 달고는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갈 수 있지만 바퀴 없이 주저앉은 상태에서는 그저 일으키는 데만 급급하게 된다는 걸 몰랐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 거기에선 뭘 할 건지 하는 기대 없이 매일을 살려니 하루가 가치 없게 느껴졌다.


마침 그때쯤 평생 용돈이라고는 줘 본 적 없는 오빠가 여행이라도 다녀오라며 돈을 쥐어주었고, ‘좋아하는 걸 말하지 않으면 마음이 죽어버린다’는 영화 대사를 인용한 기고글을 읽었다. 그리고 얼마 전 주워듣고는 좋다고 생각해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친구의 말도 생각났다. 자기는 일종의 예정된 행복을 좇는다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확실하게 자기를 기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그런 예정된 행복이 좋다고. 기억에 떠다니는 이런저런 말들을 조합하다 보니 갑자기 계시처럼 나도 무조건 좋아하는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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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당장에 할 일을 내던지고 속초로 떠났다. 가는 버스에서도 ‘혹시 하루만 더 부단히 노력하면 뭐가 되지 않았을까’, ‘사실 지금 해야 하는 건 이게 아니라 원래 하던 게 아닐까’. 하면서 괴로웠던 기억밖에 없다. 근데 막상 도착하니 그런 생각이 하나도 없어졌다. 짜 놓은 계획대로 움직이기 바빴다. 좋아하는 것에 미친 사람처럼 모든 하루는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꾸렸다. 이리 가도, 저리 가도 내가 좋아하는 걸 만날 수 있도록 플랜 B에 C에 D까지 2박 3일의 계획을 이미 세운 뒤였다.

 

좋아하는 옷을 입고,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좋아하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내가 좋아할 만한 하늘색이 드리울 시간대에 맞춰 바다를 산책하면서 그렇게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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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었다. 카페 사장님, 터미널에 혼자 앉아있는 여행객, 마트 아주머니, 라이브카페 가수에게 반갑게 말 걸었다. 내가 건넨 건 한마디인데 돌아오는 대답에 덤까지 얻어 마음이 과분했다. 그중에는 내가 너무너무 듣고 싶었던 말도 있어서 더 그랬다. 폐허가 된 지 10년쯤 된, 이제는 좀비가 장악해 버린 아포칼립스 세상 속 혼자 고립되어 있다가 드디어 누군가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른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좋았던 건, 그 속에 나도 있다는 점이었다. 타인과 어렵지 않게 대화를 시작하고,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대화의 흐름 속에서 어떤 말을 하던 진심으로 느끼고 즐거워하는 모습. 내가 정말로 좋아했던 내가 보였다.

 

그랬더니 그냥 웃음이 났다. 길을 가면서 좋은 일이 있는 사람처럼 웃었다. 그리고 이제야 저 멀리 굴러가 버린 바퀴 하나를 찾은 것 같았다. 이제 이걸 다시 끼우고 어딜 가면 좋을까, 둘째 날 밤에는 마음이 들떠 잠이 안 왔다.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고 머릿속에서 쉴 새 없이 불꽃놀이가 터지는 것처럼 소란했다. 이런 걸 도파민이라고 그러나. 그렇게 웃으며 잠든 둘째 날 밤을 지나 여행 마지막 날이 밝았다.


떠나기 전에 바다를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내가 있었던 이틀 동안은 날이 흐려 못내 아쉽기도 했고, 오늘의 바다는 어떤 모습일지. 새롭게 단장한 마음과 나를 반겨줄지 궁금했던 것도 같다. 타로점을 보는 것처럼 그렇게 바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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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 본 바다는 아무 후회도 아쉬움도 없을 만큼 푸른 모습이었다. 푸르다는 표현은 조금 모자란 것 같다. 정말 파랬다. 바다는 원래 이런 색이구나. 마음이 아름다우면 모든 게 다 아름다워 보인다 해야 할지, 아님 이거야말로 진정한 끼워 맞추기라 해야 할지. ‘마음이 개니 바다도 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

 

지금은 여행에서 돌아온 지 이주가 조금 넘게 지났다. 다시 떠올려 봐도 3일간의 여행이 아주 기분 좋은 꿈처럼 느껴진다. 꿈에서는 뭐든 할 수 있는 것처럼, 그 여행에서 나는 아무것도 걱정 없고 뭐든 할 수 있는 엄청난 사람이었다. 슈퍼마리오 게임에서 별을 먹고 냅다 내달리는 마리오가 됐었다. 이런 기분이 달아날까 일 분 일 초가 아까운 그런 시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걸 했을 뿐인데 그렇게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좋은 별 아이템은 계속 주어지지 않는다. 지속 시간도 꽤나 짧다. 도파민을 과잉 생산하던 머릿속 공장이 이제는 좀 잠잠해졌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괜찮다. 어쨌거나 그렇게 좋았던 기억과 생생한 기분이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는 것에 만족한다. 그것은 얼마든지 다시 별을 찾아 나설 수 있다는 얘기고, 이제는 다시 힘을 내서 몬스터와 장애물이 필연적으로 있는 모험길을 떠나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연히 누군가 날 걱정하고, 우연히 누군가의 글을 보고, 마침 어떤 말을 들었었기에 떠날 수 있던 여행. 많은 우연이 겹쳐 내 마음에 있던 오랜 숙원과도 같았던 ‘좋아하는 것들’을 하게 됐던 것처럼, 누군가에게도 나의 글이 그런 장치가 되어 줬으면 좋겠다.

 

뭐든 좋으니 당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더 이상 참지 말고 미루지 말고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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