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내려앉았고 우리는 걸었다. 언제 대자연 속에 있었냐는 듯, 콘크리트와 유리, 철강으로 둘러싸인 시드니 도심을 걸었다. 조명들이 빛 무더기를 쏟아내며 시선을 빼앗으려고 안달인 도심을 지나, 사소한 가로등 빛 하나도 왠지 달처럼 아득하고 멀게 느껴지는 어둡고 적적한 도심을 걸었다. 축구인지 야구인지 모를 경기를 스크린에 띄워둔 소란스러운 펍을 지나니 길가 구석에 마치 다른 세계로 통할 것 같은 낡은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우릴 삼킨 엘리베이터는 위로 천천히 올라가다 녹슨 소리를 내며 멈췄다. 문이 덜컹거리며 열리자 우리는 앞으로 쭉 뻗은 인도에 뱉어졌다. 그렇게 우리는 하버브릿지에 도착했다.
인도 양편에는 위로 갈수록 안쪽으로 오므라드는, 그래서 바깥의 위험으로부터 인도를 감싸주는 듯한 모양새로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왼편에는 차가 철망을 뒤흔들며 맹렬하게 달렸고 오른편에는 차분한 강과 빛의 도시가 내려다보였다. 위에선 하버브릿지의 거대한 기둥이 이 다리의 문지기처럼 우릴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걸었다. 오늘 우리에겐 이제 이 다리를 건너는 일만 남아 있었다.
강을 보는 시야는 철조망의 마름모무늬대로 조각났지만, 다이아몬드를 아무리 잘게 조각낸다 해도 그 제각각들이 전부 다 다이아몬드임을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잘게 잘린 그 모든 조각에 야경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는 이미지가 고르게 담겨 있었다. 정 불만이라면 조금 고개를 숙여 철조망과 철제 난간 사이, 두 뼘 정도로 뻥 뚫려 있는 구간을 바라보면 되었다. 그렇게 고개 숙이면 기다란 영화필름을 죽 늘어놓은 것처럼 펼쳐진 밤에 뒤덮인 시드니가 눈에 들어왔다.
항상 앞장서서 걸었던 가이드는 우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걸었다. 우리가 관광객에서 다리 위를 걷는 사람이 되었듯이 그 또한 이곳을 걷는 사람이 되었다. 강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바람이 잡념을 털어버린 것인지 우리는 무언가의 막바지에 이른 사람처럼 조금은 여유롭게, 조금은 섭섭해하며 대화를 나눴다. 파스타를 어떻게 해먹는가, 같은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여름은 뜨거운 계절이지만, 나에겐 식어가는 게 무엇인지 알려주는 계절이기도 하다. 밤이 되면 달궈진 열기가 식듯이 달궈졌던 마음도 차차 식어간다. 나는 저 멀리 어둠에 잠긴 오페라하우스를 바라보며 생각의 바퀴가, 그 엉킨 실타래가 천천히 과거로 굴러가는 걸 느꼈다.
숙소에 들러 재정비를 하고 나온 우리는 내부 조명을 켜둔, 익숙하지만 낯선 버스에 탑승했다. 밖은 차차 어두워져가는 반면 버스 안은 밝았다. 밤은 낮의 반전이라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로열 보타닉가든 옆, 메쿼리 스트리트의 한적한 길가에 버스가 멈췄다. 다 같이 내려 오페라하우스 방향으로 걸었다. 사납던 더위는 일곱 시간의 오후가 겨우 길들인 것처럼 온순해져 있었고 해가 슬슬 일과를 마치려고 펼쳐놓은 노을은 오렌지처럼 무르익어갔다. 우리는 삼삼오오 무리지어 걸으며 대화를 나눴다. 어디서 뭘 하다 왔는지, 말하자면 각자가 머물던 삶의 반경, 시간에 대해, 문득 그립다가도 자주 익숙함을 느껴 지겹다고 단정하는 그 순간들에 대해.
대화가 멈춘 건 시야가 트이며 오페라하우스의 날카로운 송곳니 같은 지붕이 보여서였다. 그 아래를 지상의 온갖 것들이 채우고 있었다. 하버를 끼고 부드러운 곡선 형태로 세워진 부두, 부두의 테두리를 장식한 바위 의자들, 곳곳에 놓인 테이블, 그 위를 채운 갖가지 요리들과 위스키, 마주 앉은 상대와 왁자지껄 얘기하며 이 시간과 풍경을 천천히 체화시키는 사람들.
나는 해와 지구의 기울기가 만들어낸 노을의 황홀경과 바람이 만들어내는 강의 흐름, 저 멀리에 우뚝 서서 도시의 이쪽과 저쪽을 이으며 도시가 갖춘 균형감을 뽐내는 하버브릿지와 또 저 멀리서 악몽에나 어울릴 법한 짙은 어둠을 간직한 채 아주 천천히 다가오는 육중한 구름 무리를 보며 생각했다.
지금 나는 앞으로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을 겪고 있다고.
몇 시간 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실감이 나지 않을 때 습관적으로 떠올리는 생각이었다. 인생이란 영화(너무 익숙한 비유)를 다 찍은 것도 아닌데, 어째서 벌써 그런 예상을 하는 걸까.
하지만 그런 순간은 정말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니, '실감의 영역'이 아니다. 시야가 트이며 오페라하우스가 눈에 들어왔을 때 나는 분명히 다른 영역에 진입했다는 걸 느꼈고 그 영역이 뿜어내는 아우라에 잠시 나를 의탁했다. 그래야만 했다. 물에 떠오르려면 물살을 거스르는 대신 물살에 내 몸을 맡겨야 하듯이. 그렇게 해야만 무사히 그 시간을 보낼 수가, 감당할 수가 있었다.
나에게 실감은 언제나 뒤에서 오는 것이었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관성에서 불현듯, 얼음의 창처럼 뾰족하게 솟아올라서는 한순간에 녹아내려 파도처럼 온 시간을 고르게 뒤덮는다. 뒤덮이며 쌓인다. 축적된다. 시간의 나이테가 겹겹이 더해지며 감각의 중추는 견고해고 나는 좀 더 삶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착각을 한다. 그건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시간은 언제나 미래로 가면서 과거를 폐기하지만, 인간의 기억은 과거를 재활용한다. 기억은 시간에 반하며 과거를 남김없이, 남겨두려고 갖은 애를 쓴다. 시간은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모든 걸 쓸어가는 썰물이라면, 기억은 저 멀리 있던 것도 가까이 오게 만드는 밀물인 셈이다.
한 소설에서 ‘눈은 카메라다’라는 표현을 본 적이 있다. 아무리 들여다보고 해도 셔터를 누르는 순간은 찰나이며, 그렇기에 기억에 남는 순간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그건 뇌가 편향적으로 기억을 기억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나 추억을 떠올릴 때 정확성이 요구되는 적이 있나? 추억에는 정확성도 핍진성도 개연성조차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냥 그게 나한테 있었다는 것, 누가 뭐래도 나의 것이 되었다는 의미 자체로 추억은 온전히 그 권위를 가진다. 추억은 내가 내 삶을 해쳐나가는 나만의 무기이자 기술이다. 추억에 접근할 때는 빛을 비추며 다가가는 것보다 그 어둠이 눈에 익숙해지길 기다리며 다가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 추억이 몇 시간 전이라는 사실과 그 추억을 어둠 속에서 멀찍이, 마치 객관적인 시선을 장착한 것처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생경하게 다가오면서 나는 엉뚱하게도 추억의 풍경들, 이제는 실감의 영역에 자리한 풍경들을 떠올렸다. 여긴 한강이고, 저기 보이는 오페라하우스는 세빛둥둥섬일지도 몰라. 반포대교를 가로질러 세빛둥둥섬을 갔던 때는 해가 사납게 더위를 울부짖던 한낮이었지만, 언젠가 한강 불꽃축제가 끝나고 마포대교를 건넜던 밤의 기억과 충동적으로 한강에 가서 줄지어 선 가로등 불빛이 강에 비치며 누군가 파스텔을 손으로 흐트려놓은 듯한 빛의 무늬를 그리는 걸 눈에 담았던 기억, 급기야 뉴욕의 브루클린 브릿지를 걸었던 기억까지 겹쳐 지금의 풍경을 해석하려 했다. 그러니까 어디에나 있는 풍경이라고. 그러니까 '일상'이라고.
물론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모든 순간을 일상이라 뭉뚱그리기에 너무나 제각각이라는 걸. 다리가 세계 어디에나 있지만 그 모습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어디에나 그런 순간은 있지만 그 순간의 농도와 감정, 생각은 전부 다르다. 각각의 순간을 겪을 때 나는 내가 언젠가 이렇게 종합적으로 다리를 건너는 순간들을 떠올리게 될 줄 몰랐으며, 애초에 각각의 기억들이 동행한 사람과 계절, 시간이 전부 달라 모두 철저히 개별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지금 순간에 종합해 보는 것은 어쩌면 영화를 다 찍은 것도 아니면서 편집하고픈 감독적인 욕망일지도 모른다. 달리 말하자면 그 순간들이 그리워서일지도 모른다. 그리워서 느닷없이 과거에서 비슷했던 순간들을 호출한 거라고. 그 욕망엔 내가 지금 이 순간도 앞으로 그리워할 거라는 예감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예감이 오늘을 다른 의미로 더 기억되게 할지도 몰랐다. 나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면서 몸서리쳤다. 아니, 그냥 한밤이기도 하고, 바람이 불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과거를 향하는 감정이 그리움이라면, 미래를 향한 감정은 대개 두려움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감정은 외로움이 아닐까. 마치 한쪽은 노을에 잠겨 있고 한쪽은 먹구름이 다가오던, 오페라하우스 앞에 서 있던 순간, 내가 비실감의 파도에 휩쓸리며 받았던 감정 같은. 과거는 노을처럼 세상을 물들이고, 미래는 먹구름으로 세력을 키우며 다가온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낀 현재는 얇은 막에 불과한 걸까. 그래서 현재를 찰나라고 하는 걸까. 찰나의 나는 얼마나 위태로운 걸까. 위태로워서 나는 노을에게 기댔던 걸까.
기대지 못할 건 없다. 기대도 되는 구석이 있다면 그곳이 얼마나 멀리 있더라도 걸어가 기대도 된다. 때론 도망만이 유일한 살길이 되기도 하니까. 대신 그렇게 기대고 있다가 다시 먹구름으로 걸어가야 한다. 기대는 이유는 다시 걸어가기 위함이다. 다리를 건너던 일행 중 몇몇은 잠시 그 자리에 멈춰서는 바람에 저만치 뒤쳐지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일행 중에 누구도 거기 있지 말고 얼른 오라고 부르지 않았다. 곧 이리로 올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잠시 추억에 기대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추억에 기대다 보면 슬퍼지고 만다. 그때가 지나갔다는 사실 때문에. 아니 그때는 여전히 저기 서 있는데, 내가 거기를 지나왔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음을 뜻하는 시간의 거대한 벽을 마주했기 때문에. 그래서 절망하기도 한다. 몇 시간 전 내가 오페라하우스 앞에 있던 순간에 닥친 비실감의 파도는 어쩌면 견고한 벽, 넘어설 수 없는 막다른 벽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 나는 그때 절망했나?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럼 그때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가. 그 파도에 어떻게 휩쓸렸는가. 그 벽을 어떤 태도로 마주했나. 생각은 온전한 방향을 찾은 듯 이제 그쪽으로 향했다.
나는 미리 예약한 음료수를 받아와 부두 끝에 의자에 앉아 일행과 나눠 마셨다. 표정이 온화한 사람들을 구경하며, 도시의 마천루와 하버브릿지와 오페라하우스를 사진 찍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아름답지 않느냐고. 나만 그 말을 한 게 아니었다. 우리는 아름답다라는 말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들처럼 아름다움을 반복하고 논했다. 그럴수록 그 풍경의 농도가 진해지는 것만 같았다. 더이상 무르익을 수 없을 때까지 무르익어가는 것 같았다. 그래, 그때 나는 그 순간을 그리워하긴 했지만 그 순간을 놓고 절망하지 않았다. 슬펐던 동시에 기뻤다. 아름다워서.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오페라하우스는 이쪽이 아니라 저쪽에 있었다. 이제 발 아래로는 강이 아니라 지상이 보였다. 단단한 땅이. 앞으로 또 걸어가면 되는 땅이. 하버브릿지를 벗어나 도심의 골목에 이르러 우리는 저 멀리 있는 오페라하우스를 두고 사진을 찍었다. 나는 강을 두고 멀어진 오페라하우스를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움에서 슬픔을 걷어내면 기쁨만이 남는다고. 쉽사리 그리워하는 나 자신 속에 기뻐할 줄 아는 내가 있다는 것 또한, 다리를 건넌 나는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