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인간이 세상을 탐구하는 일은 진화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당연하고 현재까지 지속 중인 행위이다. 불의 발견 이후 인간은 생존만큼 세상에 관심을 가졌다. 죽음 이후 미지의 공간을 탐구하며 장례 문화가 생겼고 닿을 수 없는 하늘을 보며 점차 천문학과 종교를 구체화했다. 동시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맛보는 일차원적인 탐구도 지속되어 왔다. 지금에 이르러선 각자 다양한 방법으로 세상을 탐구한다. 지식의 산물인 책을 보거나 직접 몸으로 경험하면서 세상을 알아가기도 한다. 삶에서 탐구하는 자세는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샤워젤과 소다수』에서 향기, 소다수는 맛이라는 점을 떠올려보자. 고선경은 세상을 맛보고 냄새로 느끼면서 탐구한다. 즉, 미각과 후각으로 세상을 시각화한다. 시인은 시집의 시작점에서 “너에게 향기로운 헛것을 보여주고 싶다.”라고 말한다.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에는 헛것이 아닌 향기로운 ‘무언가’가 담겨있다. 시인이 직접 맛보고 냄새 맡으며 찾아낸 무언가는 독자의 일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 세상은 시큼하게 쓴맛

 

시집에 수록된 시를 읽다 보면 ‘짜고 시큼한 냄새’, ‘달고 끈적이는 슬러시’, ‘손끝이 달고 시큼하게 젖었다’, ‘시금털털’과 같은 미각과 후각에 집중된 표현이 반복된다. 심지어 ““내 죽음을 담았어” 맛”(「밸런타인데이에 뱀파이어에게 초콜릿을 받은 건에 관하여」)처럼 쉽사리 떠올릴 수 없는 맛도 나온다.

 
그렇기에 눈으로 본 세상, 사랑에선 발견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나온다. “세상에 없는 농담”(「샤워젤과 소다수」)이 가득한 시를 통해서 말이다. 시를 읽는 중 찰나의 순간에 고선경은 끊임없이 독자를 웃도록 만들려고 노력한다. 시 「샤워젤과 소다수」에서 어떻게 하면 너를 웃길 수 있을까, 생각하는 화자는 시인 그 자체처럼 느껴진다.
 
시인이 농담하는 공간은 농담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 힘든 세상이기도 하다. 그 세상은 주로 쓰러진 풍경만이 남은 곳이다. “하루에 몇 시간씩 노동”(「알프스산맥에 중국집 차리기」)하며 “매일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손님을 응대하는데/침대에 누워도 잠들지 못하는”(동일한 시) 일상이 반복되는 세상이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자본이 사람을 경쟁시키는 순간 역시 쓰러진 풍경이 된다.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은 “자본주의의 고질적 결함은 풍요의 불평등한 분배고, 사회주의의 태생적 미덕은 고통의 평등한 나눔이다.”라고 말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화자는 자본의 불평등한 분배 속에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직접적으로 “돈과 노동과 사랑은”(「돈이 많았으면 좋겠지」) 정직한지를 묻는다. 정직하지 못하다. 처칠의 말처럼 불평등한 분배 아래 있기 때문에 모두의 노동이 같은 자본을 가져오지 못한다.
 
또한, 고선경이 바라본 쓰러진 풍경은 시 「스트릿 문학 파이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시의 결말에서 우승자 K는 블로그 방문자 수만 조금 늘렸을 뿐 세상에 달라진 점은 없었다. 끊임없이 누군가를 끌어 내리고 스스로 올라서야 하는 경쟁 사회에서 K는 우승했다. 하지만 한국의 예능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우승자처럼 새로운 세상을 탐구할 기회는 없었다. 이는 시, 더 나아가 문학의 정체성이 자본의 불평등 아래 놓인 상황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것이다.
 
또 다른 세상의 맛은 모두가 겪어내곤 하는 사춘기에서도 맛볼 수 있다.

 
사랑하면
어디까지 해줄 수 있어?

그런 질문은 하지 않았다

너무 많은 나를 길러낸 다음에도
울퉁불퉁 사춘기가 잘 접히지 않아서
바나나우유랑 초콜릿 사 먹었다 모모코가
“달콤한 것들로만 배를 채우고 싶어” 말할 때는 솔직히 좀
감동이었다

나는 바구니 달린 자전거를 고집했다 바구니는 잡동사니로 꽉 채웠다 왠지 마음이 든든해지니까

그리고 넘어지면 안 될 것 같은 기분
조심한다고 했는데
구슬을 너무 많이 꿴 팔지가 툭 끊어지듯

나를 쏟으면 개중에 몇몇은 분실했다
 
- 「오! 라일락」 일부
 
 
시 「오! 라일락」에선 영화 <불량공주 모모코>의 주인공 모모코가 나온다. 바나나우유랑 초콜릿을 먹는 모모코는 학교 도시락에 달콤한 초콜릿만 넣어 간다. 울퉁불퉁한 사춘기를 거치는 화자는 달콤한 초콜릿을 가득 가진 모모코의 말을 통해 감동한다. 그래서 자신 역시 달콤한 잡동사니를 채운 바구니를 원한다.
 
하지만 언제나 달콤함 뒤엔 씁쓸함이 찾아온다. 초콜릿의 원재료가 되는 카카오에도 달콤함과 씁쓸함이 어우러진 풍미가 사람들에게 설렘을 주듯 말이다.
 
 

불량소녀 모모코 도시락.jpg

 
 
시 속 화자는 자전거에서 넘어졌다. 그러면서 ‘나’로 대변되는 구슬이 분실된다. 이는 씁쓸한 세상의 맛이다. 화자는 사랑에 관해서 질문하지 않는다. 모모코가 달콤한 것들로만 배를 채우고 싶어 하는 것처럼 화자 역시 사랑의 달콤함만 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세상엔 “혀끝을 맴도는 시큼하게 쓴 맛”(「내가 심장 속에서 울타리를 꺼냈잖아」)을 가진 말이 있는 것이다.
 
사춘기의 화자는 아직 시큼하게 쓴맛을 탐구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사춘기가 지나고 바구니 달린 자전거를 고집하지 않을 즈음엔 단맛 다음 찾아오는 쓴맛과 짠맛을 알게 될 것이다. 화자-큰 의미에서 인간을 의미-는 탐구하기에 성장한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압정은 달고 짠맛’을 말할 때 자세하게 다뤄보자.
 
다시 돌아와 “이제 작은 상처는 돌보지 않게 돼”(「오! 라일락」) 몸과 마음에 생긴 작은 상처는 이미 분실된 구슬 팔찌처럼 느껴진다. 씁쓸한 맛은 무심코 찾아온 단맛에 희석된다. 화자가 무심코 본 거울에서 “잘도 말라죽지 않”은 나를 발견하고 언니를 발견한 순간 상했던 속은 사라진다. “우리는 끊임없이 흔들리며 서로의 가지가 되어주었다”라는 시의 마지막 연처럼 서로의 의지하게 만든다. 결국 세상에서 “쓰러진 풍경을 사랑하는 게 우리의 재능이지”(「샤워젤과 소다수」)라며 농담 던지는 시인의 태도는 희망찬 동시에 씁쓸하다.

 

 

 
2. 압정은 달고 짠맛

 

시 「우리는 목이 마르고 자주 등이 젖지」의 화자와 같은 인물로 보았을 때-앞의 시에서 화자는 너에게 아무도 없는 곳으로 놀러가자고 말했지만, 압정(같은 의미의 사랑)을 함께 견디지 못했기에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뒤의 시 「우리의 보사노바」의 첫 연은 “혼자서 갔지 바다가 보이는 고요한 시골 마을에”이기에 같은 화자가 시간이 지난 후의 이야기로 본다. 즉, 연작시의 관점으로 접근한다.

 

 

샤워젤 압정.jpg

 
 
쓰러진 풍경은 때론 날 선 압정이 된다. 이때 압정은 사랑을 가로막는 사물이자 사랑 그 자체이다. 고선경에게 사랑이란, 그리고 사랑을 말하는 시란 불가항력이다.
 
「스트릿 문학 파이터」에서 I가 “마지막까지 사랑을 잃지 못했다”는 것처럼 시인에게 사랑은 놓을 수 없는 단어이다. I를 시인이라고 생각하면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에 수록된 사랑 시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시 「우리는 목이 마르고 자주 등이 젖지」에서 화자는 손에 “압정을 한 움큼씩 쥐고 있는 기분”으로 인해 너와 손을 맞잡지 못한다. 날 선 압정의 거북함과 따가움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기에 아픔을 주지 않으려는 마음은 달다. 하지만 서로가 지닌 아픔을 함께할 수 없는 사랑은 “울음만 토”(「우리의 보사노바」)하게 될 뿐이다. 그리고 끝내 짠맛만 남는다. 사랑하기에 아프기도 하다는 시인의 발화는 같은 시에서 다른 언어로 여러 번 반복된다. “리듬을 이해하지 않으면서 리듬에 대해 얘기했”고 “아무것도 훼손하지 않으면서 훼손되지 않고 싶다”라는 말처럼 ‘A이지 않으면서 A이다’라는 전제는 모순적이다. 세상의 모순된 풍경 속에서도 우리는 사랑을 찾아내고야 만다.
 
고선경에게 세상, 사랑, 맛은 단 동시에 짜기도 하고 단 동시에 시큼하기도 한 것이다.
 
시간이 흐른 후 화자는 혼자서 조용한 시골 마을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깨끗하고 아름답게 펼쳐진 모래사장에 압정 서너 개가 버려”(「우리의 보사노바」)진 풍경에서 화자는 고양이가 지나가기 전 압정을 줍는다. 이는 화자가 압정을 대하는 태도가 변화했음을 의미한다.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손에 압정을 쥐고 있을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손이 아닌 곳에 주워다 옮겨놓으면 된다. 두 편의 시에서 화자는 달고 짠 압정의 맛을 기쁜 보사노바풍으로 받아들인다. A 전제는 다른 시 「사랑의 달인」에도 적용된다. “먹어보지 않아도 아는 맛/느껴보지 않아도 아는 기분”(「사랑의 달인」)은 이전에 먹어본 맛이나 경험과 비슷하리라는 추측에서 비롯된다.
 
사랑의 끝이 단맛일지 쓴맛일지 확신할 순 없다. 그러니 고선경에게 사랑이란 그렇지 않으면서도 그런 것이다. “증상인지 사랑인지 구분되지 않는 나의 멀미”(「여름 오후의 슬러시」)처럼 말이다.

 

 
 
3. 소다맛 설탕맛 돌고래맛, 그리고 혼잣‘맛’

 

세상에는 맛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다. 맛을 잃어버린 그들을 향해 고선경은 단맛을 보여준다. 이내 세상의 짠맛도 그들의 식탁으로 가져온다. 단 거를 먹으면 짠 것을 먹고 싶게 되고 다시 단 것을 찾게 된다는 의미의 ‘단짠단짠’이란 유행어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샤워젤과 소다수』 적절한 단짠단짠의 시집이다. 극단의 대비되는 것을 반복적으로 찾게 되는 것은 사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고선경의 시에서 볼 수 있듯 세상을 탐구하는 일은 쓰러진 풍경을 보며 세상을 미워했다가 다시 사랑하게 되는 일의 반복이다.

 
새로운 혼잣말을 하고 싶다

고민은 여러 번 빨래한 청바지처럼 물이 다 빠졌다

파란 개구리를 토하는 상상이 비닐하우스와 비닐하우스 사이를 가로질렀다 상상은 그대로

도시를 떠났다고 한다
꿈꾸는 표정으로 회상하던
아, 개구리의 식감

집집마다 토마토를 기르는 마을

마을에는 청바지 공장과 젤리 공장이 있다 나는 젤리 공장 공장장이 되고 싶을 만큼 젤리는 좋아한다

소다맛 설탕맛 돌고래맛 혼잣말

밤은 단면은 탱탱하다
구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완벽한 구름

색소를 섞은 비가 내리네

비탈을 따라 토마토는 데굴데굴 구름

빨랫줄만 보면 뭔가를 널고 싶지 구름 젤리 토마토 개구리

물 빠진 청바지는?
충치 같던 나의 사랑은?

머릿속에 젤라틴을 붓고 식어가는 광경 지켜보고 싶다

도시를 떠난 고민들

나의 우산에는 손잡이가 없다

고장난 젤리 장난감 젤리 뭉개진 젤리
청바지 공장 공장장도 즐겨 먹는

개구리
 
- 「토마토 젤리」 전문
 
 
“새로운 혼잣말을 하고 싶다”라는 문장은 첫 연부터 시인의 혼잣말이 독자에게 건네는 말처럼 느껴지도록 만든다. 시는 개구리, 토마토, 젤리, 구름이 나오는 연을 반복하면서 진행된다.
 
“소다맛 설탕맛 돌고래맛 혼잣말”(「토마토 젤리」)에서 마지막 혼잣말만 혼잣맛으로 바꾸었다. 사전에 있는 단어는 아니지만, 혼잣속이란 단어를 보며 시적 표현이라고 매듭짓고자 한다. 혼잣속은 “저 혼자서 하는 속생각. 또는 저 혼자의 속마음”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청년들에게 쉽게 해결할 수 없어서 혼자서 힘들어해야 하는 속이야기가 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취업으로 늘어나는 실업 문제, 은둔 청년 문제, 주거와 같은 이야기들. 고선경은 혼잣속으로 생각하는 청년들에게 쉽게 맛볼 수 없는 맛을 보여준다. 그 맛들은 나름의 이유로 먹어본 기억이 떠올라 공감하게 된다. 소다 맛과 설탕 맛은 시중에 판매되는 음식을 통해서 맛볼 수 있다.
 
하지만 돌고래 맛이나 “청바지 공장 공장장도 즐겨 먹는 개구리” 맛은 쉽지 않다. 돌고래 맛이라는 상표를 달고 자본주의에 등장한 음식은 없다. 이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마치 돌고래 맛 같은 알아내고 풀어내기 어려운 문제를 마주한다. “상상은 그대로/도시를 떠났다고 한다 (…) 도시를 떠난 고민들”(「토마토 젤리」)에서 알 수 있듯 고민은 떠나간 무언가이다. 이미 물이 다 빠진 청바지이기도 하고 충치가 되어버린 사랑이기도 하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끝과 마주한 듯한 지점에서 시인은 단짠단짠의 반복을 가져온다. 손잡이가 없는 우산은 우산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다시 우산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자신의 혼잣말에서, 시의 마지막 연에서 ‘개구리’를 꺼낸다. 개구리는 앞으로 나아갈 때 다리를 쭉 폈다가 다시 접는 점프 행위를 반복한다. 다리를 피는 행위를 다리의 끝이라고 본다면, 다리를 접는 행위는 다리의 시작이 된다. 접었다 핌의 반복은 단맛과 짠맛의 반복이자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점프의 반복, 더 나아가 도시를 떠난 고민이 끝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상상과 고민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점프의 시작점이다.
 
시인은 “소다맛 설탕맛 돌고래맛”과 “구름 젤리 토마토 개구리”와 같이 어울리지 않을 듯한 단어들을 모은다. 앞선 단어의 나열을 통해 현실의 문제에 관해서 웃게 만든다.

 

이렇듯 고선경은 어려운 세상의 문제-동시에 맛-를 마주하는 순간 웃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혼잣‘맛’은 함께 맛볼 세상이 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흔들리며 서로의 가지가 되어 주”(「오! 라일락」)리라는 미래를 희망하면서 말이다. 시인이 스스로 “계속 지고도 다음 판으로 넘어가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수정과 세리」)라고 말했듯. 이제 우리는 다음 판으로 넘어가야 한다.
 
“여러 국적의 맛과 향기를 담아”(「사랑의 달인」)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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