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어려서부터 만화책을 많이 읽었고, 집 근처 9년째 단골인 만화방도 있다. 물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제 만화방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출판 만화보다 웹툰을 더 많이 보게 되었다. 지금은 줄었지만 몇 년 전까지도 일주일에 70~80개의 작품을 봤고, 연말 결산을 하면 열람 회차 수 상위 5%에 들 만큼 열혈 독자였다.
다만 누군가 웹툰 취향을 물어올 때마다 머쓱해지는 것은, 내 취향은 정말 극과 극이기 때문이다. 잔잔한 휴먼 장르의 작품들을 좋아하는데, 또 그와 동시에 스릴러와 재난물을 즐겨본다. 생각해 보면 두 장르 모두 인간성이라는 단어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긍정적인 쪽으로, 하나는 부정적인 쪽으로 말이다. 각각의 장르에서 돋보이는 작가들을 한 명씩 소개해 보고자 한다.
작가 고태호
현재 젊은 작가들 중 고태호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데뷔작 <방백남녀> 때부터 좋아했는데, 이 작품의 주인공은 '민남주'와 '여주혜'라는 다분히 만화적인 이름의 소유자들이다. 적당한 개그 요소와 함께, 각자의 실패와 문제를 끌어안고 살고 있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몰입감 있게 펼쳐내는 작가의 솜씨에 반했다.
다음 작품 <당신의 과녁>은 고태호의 대표작이 되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17년간 옥살이를 한 '최엽'이라는 인물인데, 이렇게 보면 평범한 복수물 같지만 전혀 다른 흐름을 보여준다. 그와 그 가족, 친구들의 감정 변화의 폭과, 상처에서 해방되기까지의 과정을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가장 최근작인 <펀치드렁커드>는 폭설로 사람들이 산장에 고립되었는데 그중엔 야유회를 온 정신질환 환자 일행도 있어, 며칠간 함께 지내며 충돌하게 되는 이야기다. 환자들을 인솔하는 정신과 의사 '도민수'도 사실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주인공이다. 그들 모두는 눈이 걷히기를, 각자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기다린다.
고태호 작가의 강점은 건조하고 투박한 그림체와 문학적인 내용이 잘 어우러진다는 것에 있다. 심리 묘사가 매우 깊고 섬세하며, 상황에 대한 접근도 독특하다. 공통적으로 깔려있는 것은 사람에 대한 애정과 희망이다. 아주 연약하지만 강인한 인간다움에 대한. 장기 연재가 흔해진 추세지만 고태호 작가는 모두 60~70부작 내외로 완결을 지으며 완성도 있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기도 하다. 그의 네 번째 작품 역시 무척 기대된다.
작가 김숭늉
김숭늉 작가의 경우 모든 작품을 감상해 본 것은 아니지만 본 작품이 모두 훌륭했고, 꾸준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라고 생각되어 소개하고자 한다.
<유쾌한 왕따>의 주인공은 왕따인 '동현'인데, 어느 날 거대 지진으로 학교가 무너져 내리게 된다. 1부는 무너진 학교 건물 지하와 친구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내용, 2부는 그 이후 바깥세상과 어른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내용을 담았다. 2부를 원작으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제작되어 더욱 주목받기도 했다. '동현'이 1부에서는 약자였지만, 2부에서는 아파트 주민으로서 강자의 구도에 놓이며 선악의 경계를 날카롭게 넘나들고, 여러 인간 군상을 밀도 있게 보여준다.
또,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사람 냄새>다. 좀비 아포칼립스 속 어느 고시원 거주자들의 생존기를 담았다. 좀비 자체를 워낙 좋아해, <평행도시>, <극야> 시리즈 등 (이것들도 매우 추천한다) 아끼는 명작들이 많다. 하지만 <사람 냄새>는 영웅적인 인물이 없고, 쾌감을 안겨주는 액션도 없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갖는다. 고시원 안팎에는 주인공 '성호'처럼 힘이 없거나, 아예 악하거나, 이도 저도 아닌 '인간적인' 사람들뿐이다. 좀비물의 공식을 일부 깨며 인간의 끔찍함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김숭늉 작가의 강점은 탄탄하고 흥미로운 스토리와, 사람에 대한 현실적 고찰이다. 고태호 작가에게서 느껴지는 '사람'의 맥락과는 매우 다르지만 말이다. 김숭늉 작가는 인간의 복합적인 본성을 생각하고 되돌아보게 만든다. 작품 대부분이 청소년 관람 불가로, 폭력 수위가 높으니 감상에 주의를 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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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작품들을 보다 보면 인간에 대한 애틋함이 샘솟다가도, 스릴러 작품들을 보면 또 신물이 나게 싫어진다. 아직 나의 입장은 정해진 것이 없지만, 결국 인간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은 맞는 듯하다. 나와 관심사가 비슷한 분이 있다면, 두 작가의 작품을 접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