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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언제부터 좋아한 것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꽤 오래전부터, 영화와 함께해 왔음을 느끼고 있다. 나에게 영화란 무엇일까? 영화에 대해 이러저러한 감정을 느낄 때면, 자주 하는 생각이다. 누군가는 영화를 오락거리로 보고, 누군가는 교훈을 얻으려 볼 수도, 누군가는 영화를 통해 사색을 원한다. 나는 어떤 부류인지 잘 모르겠다. 하나로 콕 집어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인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마주할 때 가장 황홀한 순간은 영화에서 나를 발견할 때이다. 영화 속 인물들의 상황이나 그들의 캐릭터성 등 영화가 담고 있는 요소들에서 나라는 사람을 마주할 때. 그 순간이 가장 “영화적”인 순간처럼 느껴진다. 영화를 보고 있지만, 그 순간이 영화처럼 느껴진달까.
가장 최근에 다시 본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2016)가 그러한 영화 중 하나이다. 예전부터 너무 좋아하던 영화였던 터라, 얼마 전 재상영의 기회를 통해 영화관에서 관람하게 되었다. 처음 <컨택트>를 보았을 고등학생 시절에도 그렇고, 현재의 나 또한 언제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 현대인 중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본 후 느끼는 감동은 더 강렬하단 생각이다.

루이스는 끊임없이 기억의 파편들에 혼란스러워한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관객들은 알 수 있다. 그것은 과거의 기억들이 아닌, 루이스에게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의 조각들이란 것을 말이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 때문인지, 우리는 자주 과거를 반추하게 된다. 하지만 답은 과거에 있지 않다. <컨택트>에서도 결국 중요한 것은 현재와 미래였지, 과거는 아니었다.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움으로써 시간을 얽매이지 않고 인지할 수 있게 된 루이스 또한, 자신에게 닥쳐올 미래를 알았지만 계속해서 걸어 나갔다. 현재라는 시점에서 느낄 여러 감정과 순간들이 주는 선물이 결말보다 더 찬란한 것이기 때문 아닐까.

나는 루이스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걸어 나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가진 사람. 과거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현재에 무게를 두는 사람 말이다.

어쩌면, 과거 그리 중요치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사실을 자주 잊어버리곤 한다. 미래를 그리다 보면, 현재의 내 상황을 들여다보게 되고, 현재 상황은 처참한 듯 느껴진다. 그 처참함의 원인을 찾는 순간 과거라는 철창에 스스로를 가두게 된다.
스스로를 가둔 철창에서 빠져나오게 하고, 그건 아니라고,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찬란한 건 다른 곳에 있다고 짚어 주는 것이 영화였다. 내가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들은 굳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많을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내게 더 중요한 것을 언제나 스크린을 통해 보여준다. 그것은 보통 무형의 존재이지만, 그 무형의 것을 이미지화하여 기어코 보여주고야 만다. 나는 그러기에,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영화는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주기적으로 일깨워준다. 영화가 나에게 무엇인지, 여러 시간이 지나더라도 깔끔하게 정의하진 못할 가능성이 높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나는 현재 영화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