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에 아트인사이트 박형주 대표님을 몇 년 만에 만나 뵙게 되었다.
코로나 기간도 있었고 도무지 부천으로 갈 마음적인 여유가 없어 미루고 미루다 올해 선선해졌을 때는 꼭 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간의 근황도 이야기하고 싶었고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나눠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대표님이 낯가림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하셔서 놀랐다. 속으로 '내가 낯을 가렸었던가..?'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지금의 나는 사람들에게 낯가림이 없다고 말한다.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잘 한다. 그리고 나는 늘 새로운 사람들에게 궁금한 게 많기 때문에 질문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을 잘한다고 스스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낯을 가렸었구나!' 하는 것은 기억 저편에 있던 과거의 나에 대한 이야기라 흥미로웠다.
왜 낯가림이 없어졌는지 생각해 보면 그 당시에는 낯가리지 않는 ‘척’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런 '척' 이었기 때문에 내가 낯가리는 내 모습을 몰랐던 게 아닌가 싶다.
'척'을 아주 잘했던 나는 나를 잘 몰랐다. 그렇기에 내가 ‘진짜’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개인적으로 많이 가졌었다. 그런 시간들이 좋게 쌓이면서 ‘척’이 아닌 ‘진짜’로 사람들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면서 낯을 가리지 않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일의 특성상 초면인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사람들과 스몰토크라도 하는 것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대표님과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낯가림'이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 변화가 신기하기도 하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변화가 싫었다. 한 가지를 오래 좋아하는 내 모습이 진득해 보일 것 같았고 진정성 있는 느낌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생각이 다르다. 나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참 많이도 변했고 앞으로도 변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을 계속할 수도, 더 흥미로운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싫어할 수도 있고 사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의 내 삶에도 예상치 못한 변화에도 유연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리고 싶지만 더 이상 어리다고 할 수 없는 나이에 내가 가진 특징을 잘 살피면서 살아가야겠다.
단, 내가 무리하지 않고 행복할 수 있는 선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