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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다큐멘터리 영화 <아메리칸 팩토리>의
줄거리 및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메리칸 팩토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문을 닫은 미국 GM 공장의 터에 중국의 유리 제조 기업 ‘푸야오 글래스’가 들어서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이다.
미·중 간 갈등이 극심해지던 2019년에 제작되어 시기적인 의미가 큰 작품으로, 오늘은 이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다루어졌던 몇 가지 이야기들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중국인이 가르치고 미국인이 배운다
국제 관계에 대해 꽤 무지한 내 시선에서 일단 미국과 중국은 이미지가 많이 상반된다. 미국은 단순노동과 안 어울리지만, 중국은 그 분야에 특화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혹여나 이와 조금이라도 유사한 인식을 갖고 있던 사람이라면,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 인식이 뒤집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한다.
본래 GM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GM 공장이 불경기로 문을 닫게 되자 꼼짝없이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 그 자리에 새롭게 들어선 기업 푸야오는 GM의 실업자들에게 푸야오 공장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유리를 제조하는 작업이 처음이었던 미국인 노동자들에게 푸야오가 제시한 업무의 방향성은 ‘슈퍼 바이저’ 제도의 도입이었다. 말 그대로 푸야오에서 일하는 중국인 노동자들이 미국인 노동자들에게 한 명씩 슈퍼 바이저로서 1대 1 집중 교육을 진행하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은 쪽은 없었다
다큐멘터리를 보다 보면, 양측의 입장이 모두 이해되어 곤란해진다.
미국부터 살펴보자. GM 공장에서 일할 때는 하루에 적당한 만큼의 일을 하고, 적당한 만큼의 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이후 푸야오에서 일하게 된 그들은 8시간 3교대의 근무를 했고 그것은 전에 일했던 노동 강도보다 강한 것이었으며, 급여는 전에 받던 수준의 절반가량밖에 받지 못했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떨까? 미국에 자리 잡은 만큼, 푸야오의 사장은 사무실에 중국의 사진을 걸어두는 대신 미국의 랜드마크 사진만 걸어놨다. 부사장을 미국인으로 임명했고, 중국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슈퍼 바이저 역할을 하기 위해 미국으로 왔다. 그들에겐 12시간 2교대의 근무가 익숙했고, 급여 역시 8시간 3교대를 하는 미국인들과 같은 수준으로 받아왔다.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미국인이다 보니 미국인 노동자의 시선과 입장이 조금 더 큰 비중을 차지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긴 하지만, 양측 모두의 입장이 이해된다는 내 생각엔 변함이 없다. 중국은 중국대로 노력했고, 미국도 미국대로 노력했다.
다큐의 중반에는 미국 측 직원들이 중국인들의 생산 공정을 배우기 위해 푸야오 본사에 찾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푸야오 직원들은 한 마디로 ‘기계’처럼 일했다. 책임자는 노동자들을 정렬시켜 ‘군대식’으로 대했고, 전형적인 탑-다운 방식의 체계가 잡혀있었다.
미국으로 돌아온 직원들은 본사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군대식’ 정렬을 그대로 시행해 보고자 했으나, 미국인 노동자들은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부분이 두 국가의 차이를 가장 크게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점차 심해지는 갈등과 씁쓸한 결말
두 국가의 마찰은 단순히 노동 방식에 따른 것이 아니다. 여유와 자유가 몸에 밴 미국인들과 상대적으로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익숙한 중국인들은 당연히 서로가 이해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중국인들은 미국인들을 ‘굼뜨다’고 생각했고, 미국인들은 중국인들의 고강도 노동 방식에 지쳐 노조를 결성하고자 했다.
그러나 푸야오에서는 노조 결성을 허용하지 않았고, 노조 결성에 찬성하는 노동자들을 해고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임명했던 미국인 부사장도 중국인으로 교체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갈등은 더욱 깊어만 갔고, 해결될 기미 또한 보이지 않았다.
다큐멘터리의 결말은 ‘갈등’이라는 키워드에만 집중하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으로 흘러간다. ‘자동화’의 등장이다. 단순 제조업이기 때문에 기계가 투입되었을 때 효율이 증대되었고, 그 결과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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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의 이야기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라고 해서 ‘미국과 중국은 무역전쟁 중이니까 저럴 수밖에’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푸야오에서 빚어진 마찰은 생각보다 어느 나라에서든 나타날 수 있는 ‘문화적 차이’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들이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어떤 다국적 기업에서든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자’라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나오기는 어려운 작품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저 숙제를 던져 줄 뿐이다. 생산량 확보를 위해 인간에게 주어지는 고강도의 노동, 그리고 그것을 대체하기 위한 기계의 등장으로부터 생겨나는 실업의 문제 등 참 어렵고도 막연하다. 결국 여러 사람들의 고민을 통해 최대한 다각적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밖에 남길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