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ART insight]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by 정윤지 에디터
2024.06.02 15:30

 

 

“이제 몇 살이야?”

 

열 손가락을 쉽게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며 내 나이를 어른들께 알려드렸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열 살이 되었을 때는 더 이상 손가락을 접을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나이를 말씀드리는 것과 동시에 쫙 핀 열 손가락을 보일 때는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열한 살이 될 무렵, 이제는 열 손가락을 쫙 펼치고 난 후에도 손가락 하나를 더 들며 ‘1’을 표현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이제는 열 손가락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됐네.’


문뜩 이런 생각을 했다. 그때 나이를 먹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한 것 같다. 이러한 생각 때문인지는 몰라도 종종 어른이 된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어떨 때는 너무 먼 미래를 생각해 보다 꽤나 아득해져서 다시 본래의 나이로 돌아와 지금의 나이에 만족하기도 했었다.


더는 손가락으로 나이를 말할 일이 없게 되고 시간이 흘러 십 대 후반에 왔을 때는 곧 이십 대의 나이가 실제가 되고 성인이 된다는 현실에 꽤 깊은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 특히나 앞 자릿수가 바뀐다는 것은 나이에 대한 크나큰 의미를 부여하게 했다. 하지만, 막상 이십 대가 되고 나니 달라짐은 감당 가능한 것들이었고 크게 별것은 없었다.


다만, 공부와 일을 통해 아이들을 마주할 일이 많아져서 그런지 ‘좋은 어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다.’라는 말처럼 아이들은 어른들의 사소한 행동조차 기억하고 모방하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나이가 차서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을 지도하는 입장에 선 것이 아니라 올바른 생각을 가진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바르게 지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과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그때 느꼈다. 그래서, 좋은 어른이라는 정의를 두고 이런저런 생각을 했고 생각 끝에 도달한 것은 내가 그려왔던 좋은 어른의 기준을 따라보자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나를 나로서 봐주었던 어른들처럼 나 또한 아이마다의 고유성을 인정해 주고 스스로 생각해 보고 표현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에 대한 조화를 꿈이자 목표라 놓고 적어 보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아이들조차도 평소 유심히 생각하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는 경우가 많고 생각만 하고 적어보진 않은 채로 지나가는 경우도 많아서 애써 시간을 써서라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작업이었다. 특히, 아이마다 관심사나 개성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대체로 아이들은 두 항목을 합친 직업을 썼는데 간혹 아이 중에는 분명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적고도 생판 다른 직업 즉, 소위 ‘~사’로 끝나는 직업을 적을 때가 있었다.


특정 직업에 대한 감정이 있다거나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왠지 아이들이 적은 내용은 주변 어른들의 생각을 고스란히 옮겨온 듯했다. 그러한 직업들을 적은 이유를 물은 후에 아이의 입에서 “돈도 잘 벌고 부모님이 좋은 직업이라고 했어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짐작했던 생각들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사실 아이 부모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다. 과거에 비해 직업에 대한 인식이 꽤 변화했지만, 여전히 기존의 사고는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이 또한 진정으로 원하는 직업이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아이에게 물었을 때 간혹 처음에 적은 직업과 달리 다른 직업에 더 관심이 있음을 알게 됐다. 실제 원했던 직업들은 비교적 자유롭다 말할 수 있는 직업군이었고 아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직업이었다.

 

한편, 아이들에게 직업을 적으라고 지도한 적은 없지만 대개 꿈이자 목표를 직업이라는 명사로 적는 것을 자주 봤다. 명사가 아닌 동사나 형용사로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관해 물어봤을 때 그제야 좀 더 유연한 생각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어릴 때 가지는 특권 중 하나는 어떠한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른들이 간혹 아이들에게 이러한 기회조차 쥐여주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사실 꿈과 목표는 성인이 되어서도 청년기를 지나 중년, 노년으로 접어들더라도 끊임없이 들 생각이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도 그렇다. 이십 대에서 조만간 삼십 대로 한 번 더 앞 자릿수가 변할 시기에 와있다. 삼십 대로 넘어갈 무렵에 가까워져 있는지라 ‘어떻게 나이 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어김없이 그리고 요즘 들어 자주 찾아오는 듯하다.

 

어떻게 나이 들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과적으로 ‘후회 없는 삶을 살자’는 것으로 도달했다. 후회 없는 삶에는 원하는 바를 하나씩 이뤄보는 것과 하나의 틀에 갇히지 말고 다양한 분야에 대한 배움을 끊임없이 늘려가자는 것이 있다. 특히나 청춘의 시기에는 시간의 효율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보내면서 경험의 폭을 늘려갈 것인가에 앞으로도 집중하고 싶다. 좀 더 나이가 들어 이 시기를 되짚어보았을 때 ‘정말 그때 열심히 살았지!’라며 회상할 수 있도록 말이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 속에서 적어도 지금과 다가오는 시간만큼은 알차게 살아가면서 차곡차곡 나이 들고 싶은 마음이다.


얼마 전, 여행을 하다 한 박물관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나이가 지긋한 학예사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오래간만에 부모님을 제외하고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 한 분이셨다. 이야기는 현재 내 관심사를 알려드리면서 음악과 미술에 관한 책 추천을 받는 것으로 시작했고 생각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또한, 나와 같이 박물관에 오시는 분마다 관심사에 맞는 책을 추천해 주신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예술, 건축, 역사, 종교, 자연과학, 외국어 등 짧은 만남이었지만 여러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학예사분의 생각과 지식의 깊이를 경험했고, 어떠한 분야에도 막힘없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시는 모습에 대단함을 느꼈다. 그리고, 여전히 연구를 이어가시고 다음 전시를 위해 공부하신다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실제로 이야기가 끝나고 전시된 책들을 살펴보는데 우연히 창문 너머로 돋보기 안경을 쓰시고 책자를 넘기시며 연구하시는 모습을 봤다. 그 모습을 보며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또 한 번 느꼈다. 그리고, 나 또한 어느 분야더라도 자유롭게 누군가와 얘기할 수 있을 만큼의 소양을 쌓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따금씩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노인들을 바라보며 노인이 된 내 모습과 내가 원하는 노년기의 모습을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지금의 순간도 영원하지는 않다는 생각에 좀 더 마음을 다잡고 살게 된다. 또,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흔히 나이가 들어 느끼는 제약과 서글픔 등 부정적인 감정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이해하며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time-change-3256536_640.jpg

 

 

마지막 끝맺음을 어떠한 말로 할까 생각하다 이번 공통 주제와 어울리는 책, 『어떻게 나이 들 것인가?』(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필립 프리먼 엮음(2021), 아날로그 출판사)에서 인상 깊은 부분이 있어 인용해본다.


 

“늙음은 짐이 아니라 즐거움일 수 있네. 현명한 노인들은 품성이 좋은 젊은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으면서 조금이라도 젊어진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네. 마찬가지로 젊은이들도 자신들을 유덕한 삶으로 이끌어주는 노인들의 가르침을 좋아하네. (중략) 이제 늙었다는 것이 결코 허약하고 활력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해왔던 일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일을 한 만큼 매우 활동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리라 생각하네.


그러니 자네들은 결코 배우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되네. (중략) 나는 새로운 것을 배웠네. 늙은 나이에 혼자 그리스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지. 오랜 갈증에 시달렸던 사람처럼 나는 그리스어 공부에 매진했네. 소크라테스가 당시 사람들이 좋아하던 악기인 수금의 연주법을 배운 것도 늦은 나이였다고 하더군. 수금 연주도 배우면 좋겠지만, 그대신에 나는 열심히 문학공부를 한 것이지.”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