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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예술에 대한 단상 [문화 전반]

나로부터 멀어져 다시 나에게로 돌아가기

by 박하은 에디터
2023.04.28 13:53


 

글을 시작하며



예술이란 무엇일까? 예술을 향유하고 즐기는 사람이라면 한 번씩은 떠올려 봤을 질문일 것이다. 예술을 공부하고 있지만, 아직도 예술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참 막막하다. “도를 아십니까?” 묻는 사람들은 도에 대해 어느 정도 자기 확신이 있으니까 묻는 것일 텐데 그 사람들보다 못하게도 내 안 예술의 모습은 참 희끄무레하다.


 

“향유하는 사람보다 참여하는 사람이 그것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온몸으로 참여할 수 없다. 혹은 온몸으로 참여하면 더 사랑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것을 속속들이 싫어하고 낱낱이 사랑하게 된다.”

 

(김겨울, 『아무튼 피아노』, p.13)



사랑이 넘치다 보면 어느 순간 그에 참여하고 싶어진다. 하나가 되고 싶은 마음인 걸까? 나는 이야기를 참 좋아했다. 사랑하다 보니 쓰고 싶었고 들려주고 싶었고 나누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글을 쓰고 있었다.


나는 예술이 뭔지도 모르고 사랑하고 있다. 사랑이 넘쳐서, 표현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다. 그래서 몸으로 참여하며 내가 느낀 예술에 대한 짧은 생각들을 나누고 정리해 보고자 한다.

 

 

 

가능성과 한계



어느 날 이런 얘기를 들었다. “아도르노가 말하길, 예술의 숙명은 페넬로페의 실타래와 같아요.”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의 아내로 스파르타의 공주였다. 오디세우스는 결혼한 지 1년 남짓이 지나, 트로이전쟁에 참전해야 했다. 오랜 세월 오디세우스가 페넬로페의 곁을 떠난다.

 

그로 인해 수많은 구혼자가 페넬로페에게 청혼한다. 청혼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부닥치자,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가 돌아올 거라 믿으며 계책을 떠올린다. 바로 시아버지의 수의를 다 짜면 구혼자 중 한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것이다. 페넬로페는 낮에는 베를 짜고, 밤이 되면 자신이 짠 베를 풀었다.


예술가는 자기 시대에 맞는 미를 만들어 낸다. 시간이 지나면 그 미는 과거의 것이 된다. 그것은 예술가가 사는 현대와 맞지 않아 그는 그것을 다시 풀고 새로운 미를 만든다. 현대 예술의 숙명은 페넬로페의 실타래와 같다. 자신이 자기 시대에 맞는 미를 만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그걸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 자기가 만들고 자기가 부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그런 예술이 가진 한계와 가능성을 좋아한다. 언어를 수단으로 삼는 예술의 경우, 필연적으로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한계에 부딪힌다. 공연 예술의 경우 시공간적인 한계가 있다. 그러나 공연 예술은 그 시공간적 한계가 예술적 특성이 된다. 이처럼 예술 안에서 불가능은 가능이 된다.

 

문학 작품에서 모순 형용을 보자. “소리 없는 아우성”(유치환, 「깃발」)처럼, 아우성은 소리가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시의 맥락에서 그것은 문제가 없다. 때때로 예술은 가능 세계이자 어떤 실험장과 같다. 그리고 삶과 같다. 예술은 어쩌면 삶을 모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삶이란 타오르면서 차가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타오르면서 식어가고, 살아가면서 죽어간다. 살아간다는 건 다시 말해 죽어간다는 뜻이다.

 

그런 모순이 가능한 곳이 삶이고, 예술이 삶을 모방한다면, 예술 역시도 그러한 모순이 가능한 곳일 테다. 유한하고 한정된 작품 속에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 있다.

 

 

 

예술을 향유한다는 것은



예술을 향유한다는 것은 곧 나에 갇혀 나를 뛰어넘는 일이다. 세상과 나를 더 깊이 이해하고 용인하는 일이다. 초월하면서 동시에 한낱 나로 돌아가는 길이다. 수많은 삶을 입고 벗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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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헨젤과 그레텔> 속, 남매는 집을 떠나오면서 바닥에 조약돌을 떨어트린다. 남매는 어두운 밤, 달빛을 받아 환히 빛나는 조약돌을 보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예술이란 그런 것이다. 내가 몸 담은 나와 세계라는 집으로부터 멀어져, 그 너머를 여행하고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일이다.

 

모험을 떠난 뒤 돌아온 집은 결코 이전과 같지 않다. 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술작품을 향유한 순간 그 이전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다. 나는 나의 맥락에서 예술작품을 향유하고 감각할 수밖에 없어 나에게로 돌아오지만, 예술 작품을 통해 다른 세계를 체험하기 때문에 향유하고 돌아온 ‘나’는 끝없이 확장되어 있다.


또한 예술작품을 통해 감상자와 창작자는 연결될 수 있다. 작품에 대한 공통된 견해를 통해 옆 사람과 연결될 수 있고, 생각의 차이를 통해 우리 각자가 고유한 자신의 세계를 가진 개개인임을 알게 된다. 예술을 통해 우리는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고 용인할 수 있다.


예술은 일상에서 눈을 돌려 멀어질 수 있게 해주고 동시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힘을 주며, 일상을 다채롭게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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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콤달콤한 냄새 속에

부푼 저녁달이

흰 밤으로 들어간다

세상의 악몽들을 모아서

마리골드

마리골드

그림자들이 외친다


우린 단지 죽지 않으려고

사랑했던 거란다

 

(박시하, 「마리골드」)

 


처음 이 시를 접했을 때, 나는 서글퍼하면서도, 첨예한 펜촉으로 계속 마지막 문장을 필사했다.

 

 

우린 단지 죽지 않으려고 사랑했던 거란다.

 

 

한때 그랬던 적이 있다.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어했던 때. 계속 물건을, 기억을, 나를 잃어버리던 때. 끝없이 무언가를 사고, 약속을 잡고, 어기고 미루다 겨우 들어간 공연장에서, 작품에 기대 토해내지 못한 감정의 응어리를 뱉어냈다.

 

그 뒤로는 계속 이야기를 읽었고 보았다. 미워하던 나로부터 눈을 돌리고 현실로부터 도피하려 했다. 인물의 감정에 기대 울면서 나로 생각하고 나로 느꼈다. 결국 나는 나로부터 도망가면서 다시 나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돌아온 나는 이전의 나와는 달랐다. 허무하게만, 죽음으로만 느껴졌던 「마리골드」의 마지막 문장이 어느새 삶으로 와닿았다. 아, 살아가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구나. 죽지 않으려고 사랑하든, 살기 위해 사랑하든, 사는 것은 결국 사랑하는 일이라는 뜻이었구나. 나는 느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있으며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삶이라는 예술, 예술이라는 삶



나에게 예술이란 삶이기도 하다. 그것은 아주 고유하고 특별한 예술일 것이다. 살아간다는 건 사랑하는 일이고, 그래서 예술도 결국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랑하기 때문에 포착하는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쓰고 그리고 말하고, 표현하는 것일 테다. 그래서 예술은 누군가를 소외해서는 안 된다. 무언가를 소외하고 배제하는 순간 예술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니게 되리라.


내가 쓰는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의미라도 될 수 있을까. 나는 소망하며 생각하고 쓰고 읽고 사랑한다. 그리하여, 나는 살아있다.


문득 묻고 싶다. 당신에게 예술이란 무엇인지. 살아있는 당신이, 나에게 들려줬으면 한다. 당신이 몸으로 느낀 예술은 어떠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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