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을 돌이켜보면 주변 어른들은 항상 인간관계에 힘들어했다. 직장이 힘든 것도, 삶이 어려운 것도 늘 누군가와의 관계 때문이었다. 어린 나는 그런 어른들의 고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물론 친구들과 싸워 울면서 집에 들어간 적도 많았고 부모님에게 친구 때문에 힘들다고 토로한 적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다는 말은 납득할 수 없었다.
싸웠으면 화해하면 되는 것이고 같이 놀다 보면 다시금 즐거워졌으니까. 그러나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어가고 성인이 되면서 그때 그 어른들의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어려움은 보편적이다. 이제훈, 박정민 배우를 발굴한 윤성현 감독의 영화 파수꾼(2010)은 그러한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을 사실적이고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포맷변환][크기변환]222.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109/20210930210541_wvafatmg.jpg)
기태(이제훈)와 동윤(서준영), 희준(박정민)은 둘도 없는 친구 사이다. 여느 때처럼 기찻길에서 야구를 하던 중 기태는 보경을 좋아하는 희준을 위해서 여자애들과 여행을 가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기태, 동윤, 희준과 세 명의 소녀들은 함께 월미도로 여행을 간다. 기태는 여행에서 보경과 희준을 이어주려고 노력하지만 목적과는 다르게 보경은 기태를 좋아한다. 이를 눈치챈 희준은 기태와의 대화를 피한다.
이를 계기로 이들은 조금씩 멀어졌고 결국 기태는 자신을 외면하는 희준을 답답해하며 화를 내고 폭행한다. 그 누구보다 친했고 함께해서 행복했던 기태와 동윤, 희준은 그렇게 멀어진다. 기태는 마지막까지 의지하던 동윤에게조차 버려지자 자살하기에 이른다.
이 관계의 균열은 희준이 기태와의 대화를 거부한 것이 원인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균열의 발단일 뿐 언제라도 관계의 금이 갈 우려가 있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희준은 기태와 다른 친구들이 담배를 피울 때 망을 봐주는 존재였다. 기태는 희준의 머리를 자주 쓰담았는데 희준은 당연하게도 그런 행동을 좋아하지 않았다. 기태의 말과 행동들은 희준이 자신을 그의 친구가 아닌 ‘꼬붕(부하)’이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관계의 균열은 생각보다 쉽게 일어난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지속적인 충격과 실망이 쌓여있다. 일관되게 회피하며 관계를 개선하고자 노력하지 않은 희준도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다만 대화를 시도하다 답답함에 못 이겨 화를 내고 폭력을 사용하는 기태의 행동은 관계의 개선 여지를 없애버린 것이다.
기태에게 가족은 아버지만 있으나 그 둘이 함께 나온 신이 없다는 점에서 이들의 관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런 기태가 친구들 앞에서 으스대며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내면에는 깊은 상처가 있어 보였다. 그는 누군가로부터 상처받는 것이 그 무엇보다 싫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기태는 희준에게 옳은 방법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자신이 상처받지 않는 방법, 즉 욕을 하고 폭행을 했다.
하지만 “다시 사람들 사이에서 비참해져도 너만 나 알아주면 돼”라고 말할 정도로 깊게 의지하던 동윤에게 마저 자신이 부정당했을 때, 기태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포맷변환][크기변환]11.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109/20210930210555_epyzbbvl.jpg)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그 흔한 말처럼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한 누군가와 관계 맺음은 계속될 것이고 그 속에서 즐거움과 상처는 끊임없을 것이다. 영화 속 세 친구처럼 일반적으로 학생 때는 친구를 세상의 전부라고 느낄 만큼 의지한다. 같이 있으면 웃을 일이 가득하고 즐겁다. 하지만 서로의 파수꾼이 될 만큼 의지하던 친구가 나를 내치는 순간에는 세상이 무너질 듯 아프게 느껴진다. 그게 중고등학교 때의 성장기라면 더욱 아플 것이고 성인이 되어서도 관계의 아픔은 잘 무뎌지지 않는다.
삶이 그렇듯 관계라는 것도 끝이 있기에 별거 아닌 일들이 쌓여 별거가 되었을 때 관계는 퇴색된다. 다만 이제는 영원한 관계란 없다는 것을 잘 아는 나이가 되었기에 기태가 동윤에게 의지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내 전부를 기대지 않는다. 적어도 그 관계가 흐지부지되었을 때 혼자서 버틸 수 있을 만큼의 중심은 잡고 싶어서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처음 본 사람으로부터 위로받기도 하는 아이러니함 속에서 관계 맺음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아무 목적과 생각 없이 그저 같이 놀고 싶어서 누군가와 친해졌던 지난날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어떤 모양이든, 어떤 결말이든 인간관계에 자체에 연연하지 말자고 다시금 다짐한다. 영화 속 학생들처럼 관계에 상처받고 한숨 쉬고 울적이던 나와 당신을 위로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