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이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만약 있다면 소개시켜 주시길.) 우리에게는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2010년 팀 버튼 감독의 애니메이션으로 아주 익숙하고, 그 외에도 수많은 서브컬처와 굿즈 등으로 생산되며 여전히 큰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크기변환]KakaoTalk_20210109_233740978.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101/20210109233918_kuavfxfp.jpg)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디즈니 애니메이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951년작)
코바야시 야스미 <앨리스 죽이기>
일본 디즈니 스토어 상품
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 명성에 비해 정작 원작 소설을 끝까지 다 읽어본 사람은 (필자 주변에는) 거의 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이 작품을 시도해 봤다가 몇 챕터 만에 그만두었던 기억이 있다. 제목대로, 이 작품 속 인물들의 대화나 스토리 전체가 너무나도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매번 새로운 디자인과 번역으로 계속해서 출간되는 고전이고 사람들은 여전히 이 작품에 매료된다. 스토리를 끝까지 다 읽고 이해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면서 왜 이 소설은 계속해서 새로 출간되는 걸까? 이 작품의 어떤 힘이 독자들을 열광케 하는 걸까?

약 10년 만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윌북 출판사의 신간 버전으로 읽어 보았다.
이전에 윌북 출판사가 내놓은 ‘애나 본드’ 일러스트레이터의 <조의 아이들> 디자인에 이미 한번 몹시 끌렸던 나는, 동일 삽화가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미뤄왔던 숙제를 마칠 좋은 기회가 왔다는 생각을 했다.
애나 본드만의 컬러풀한 색감과 고유의 그림체는 나를 매력적인 원더랜드(wonderland)로 별 무리 없이 이끌었다. 이 익숙하지만 낯선, 이상한 세계로 오랜만에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1. 작가 '루이스 캐럴'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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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캐럴(1832-1898)
1862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수학과 교수로 지내던 작가 ‘루이스 캐럴’은 학장인 리델의 어린 세 딸들과 함께 뱃놀이를 나간다. 꼬마 숙녀들은 캐럴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댔고 캐럴은 둘째 딸 앨리스를 실제 주인공으로 삼아 환상적인 모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때 탄생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이후 책으로 출간된다.
사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른한 오후, 책만 읽는 언니를 바라보며 지겨워하던 소녀 앨리스는 회중시계를 들고 뛰어가는 말 하는 토끼를 발견하고는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로 들어간다. 이상한 나라에서 앨리스는 물약이나 음식을 먹고 몸이 커졌다 작아지거나, 동물들을 만나 황당한 대화를 하게 되는 등 온갖 이상한 일들을 겪게 된다. 한 마디로 이상한 동물과 사람들을 만나 이상한 일들을 겪다 꿈에서 깨어나는 이상한 이야기다.
게다가 이 이상한 나라에서 나누는 대화들은 그냥 읽어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내용이 대다수다. 심오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 모든 대화들이 영어 원문으로 치밀하게 짜인 언어유희와 농담이기 때문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전략)...and the twinkling of the tea-'
...그리고 찬란한 차-'
'The twinkling of what?' said the King.
'찬란한이 뭐?' 왕이 말했다.'
'It began with the tea.' the hatter replied.
'차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모자장수가 대답했다.
'Of course twinkling begins with T!' said the King sharply.
'물론 '찬란한'은 'T'로 시작하지!' 왕이 날카롭게 말했다.
그 외에도 체셔 고양이를 보고 앨리스가 하는 말인 “Was it a cat I saw?”(내가 본 게 고양이었던가?)는 거꾸로 읽어도 같은 문장이 되는 회문으로 유명하다.
또한 이 소설은 당시 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풍자가 넘쳐난다. 미친 다과 모임은 귀족들끼리 즐기는 ‘그들만의’ 티타임 문화를, 독선적인 하트 퀸은 빅토리아 여왕을, 시계 토끼는 시간에 쫓겨 사는 현대인을 상징한다.
작품 전체가 이러한 말장난과 언어유희, 당시 시대에 대한 풍자로 넘쳐나니 이를 현재의 시점에서 번역본으로 읽고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난해한 대화 속에서 어떠한 상징이나 교훈을 찾으려 했던 이들은 당황하게 될 것이다.
2. 길을 잃는 숙명의 원더랜드(wonder land)
나 역시 교훈을 찾고자 단단히 각오를 하고 토끼 굴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결국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한 채 모험이 끝나고 말았다. 그때 교훈을 찾아대던 공작부인과 앨리스의 대화가 생각났다.
“쯧쯧, 이 세상에 교훈이 없는 건 없어! 네가 찾지 못할 뿐이지.” 공작부인이 말했다. (...) 공작이 뾰족한 턱으로 앨리스의 어깨를 깊이 찌르면서 덧붙였다. “그리고 그 교훈은 ‘쥐뿔 모아 재산’이라는 거지.”
‘이 분은 말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교훈을 찾으시네!’ 앨리스는 생각했다.
저자인 캐럴도 교훈을 주기 위해 책을 쓰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애초에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 쓴 책이기 때문이다. 토끼를 쫓다 길을 잃은 앨리스처럼 책에서 자유롭게 길을 잃고 이곳에서 벌어지는 환상적이고 황당무계한 상상들을 마음껏 즐기면 되는 일이다.
시종일관 던지는 농담은 그곳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지 않는 아이들의 순수함처럼 오로지 ‘재미’로만 가득하다. 길을 잃는 숙명의 원더랜드에서, 이 독자는 익숙한 어른의 방식으로 이상한 나라를 해석하려 든 것이다.
“그래서 언니는 눈을 감고 자신이 이상한 나라에 있다고 생각해 보았다. 물론 눈은 곧 다시 떠야 하고, 그러면 모든 것이 지루한 현실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 여왕의 날카로운 고함은 목동의 목소리가 되고, 아기의 재채기와 그리핀의 비명과 다른 기이한 소리는 모두 바쁜 농장의 혼란스런 소음으로 바뀔 것이다.” (182p)
“마지막으로 언니는 어린 동생 앨리스가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내내 어린 시절처럼 소박하고 다정한 마음을 간직한 모습. (...) 자신의 어린 시절과 행복했던 여름날을 기억하며 아이들의 소박한 슬픔을 함께 느끼고 소박한 기쁨을 함께 즐거워하는 모습을.” (182p)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때 아이의 마음을 갖고 있던 우리가, 시간이 지나면 교훈을 찾으려 드는 공작부인이나 형식적인 골무 수여식을 하는 도도새처럼 앨리스의 시선으로 볼 때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 어른의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에. 또, 어른의 생각에서 조금 벗어나 한때 우리 것이었던 티 없이 맑은 아이의 마음을 가진다면 다시 원더랜드에 갈 수 있음을 넌지시 알려주기 때문에.
그 마음 그대로 간직한 채 어른이 되어 낯설고 이상한 세계를 여행한다. 우리는 매일 일상의 여행을 떠나며 사는 존재이기에, 이 ‘이상한 나라’로의 모험은 매번 새로울 것이며 이 매력적인 고전은 계속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독자들 앞에 설 것이 분명하다.

